매거진 글감노트

내 마음을 위한 한 잔

마음 chilling

by 김힝구


유리컵에 차가운 음료를 따르면, 유리컵 표면이 뿌옇게 흐려지다가 물방울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공기 중에는 수증기가 떠다닌다. 뜨거운 여름 차가운 음료를 유리컵에 따르면 유리컵은 점점 차가워진다. 이때 응결 현상(결로 현상)이 발생하는데, 응결 현상은 주변 온도가 낮아지면 수증기가 차가운 유리에 닿으면서 물로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나는 이 응결 현상으로 컵에 발생하는 김 서림을 좋아한다. 유리잔 속에 따른 음료가 차갑다 못해 시릴 듯 보이기 때문일까. 오늘처럼 후덥지근하다 못해, 방금 땀구멍에서 생선 된 땀마저도 뜨거운 열기에 휘발되어 버릴 정도의 타들어 갈 뜨거운 하루를 보낸 후의 저녁, 차갑게 냉장고에서 칠링 되어 레몬 빛 투명함을 지닌, 화이트 와인을 와인잔에 따르고 나면, 방 안의 온도로 인해, 와인잔의 표면은 이내, 김이 서리다 곧 물방이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면 얼마나 이 화이트 와인이 상큼하다 못해 새콤하고, 청량하며, 더위를 식혀줄 정도로 시원할지 상상할 수 있게 된다.


레드 와인보다는 왠지 무겁지 않아 좋고, 좀 더 편하게 마실 수 화이트와인이 좋다. 겨울에는 눈 오는 날이라 좋고, 여름에는 더위를 식혀줄 청량함을 주기에 좋다. 일상에 지쳐 혼자만의 휴식을 원할 때면, 맥주 한 캔 보다도, 어느 순간, 이 화이트 와인 한잔을 먼저 떠올릴 정도로 좋아졌다. 레드와인의 타닌 감이 때론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그런데 화이트 와인은 대체로 담백하고 부담스럽지 않다. 특히나 소비뇽 블랑의 싱그러움 그 자체가 가장 좋다. 화이트 와인이 미학적으로도, 미각적으로도 좋다.


오늘도 혼자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져 지쳐 녹아버리기 직전의 나는 화이트 와인을 찾는다. 뜨거운 내 마음을 차갑고 정신이 바짝 들 정도의 싱그럽고 새콤한 화이트 와인을 마시며, 차갑게 식혀야 할 것 같다. 오늘따라 더욱 쉴 새 없이 수신되어 오는 알림음에 지치고, 그 사이로 어김없이 들려오는 유쾌하지 않은 소식들과 그 사람들과의 대화로 지친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휴식으로 달궈질 대로 달궈진 내 머리가 점점 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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