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아 moi Oct 18. 2023

탐험가, 힝구

금묘구역


 나와 힝구가 살고 있는 이 집에서 이제 힝구가 정복하지 못한 곳은 없다. 깜빡하고 닫지 못한 냉장고를 한 번에 뛰어오르는 힝구를 보며, 우리 집에서 안전지대는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급하게 힝구를 냉장고에서 꺼내려 하지만, 쪼매난 녀석이 네발에 어찌나 힘을 주며 버티는지, 나도 제법 팔에 힘을 줘야만 했다. 힝구, 오늘 탐험은 이 냉장고로 정한 것이냐.


 냉장고 옆, 상단 수납장을 한 번의 점프로 오르던 때에는 힝구의 놀라운 점프력에 감탄했지만, 냉장고는 금묘의 구역이니, 입장 불가라고 확실하게 주의를 줬다. 하지만, 내 경고는 먹히지 않은 듯하다. 냉장고 문단속을 깜빡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금방이라도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갈 듯, 힝구의 온몸이 움찔움찔하는 모습이 어이없다. 냉장고 안을 맘껏 헤집어 놓아야만 그 호기심이 풀릴 텐데,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힝구가 또 냉장고 앞에서 리듬을 탄다. 힝구 안돼! 내가 엄하게 주의를 주자, 힝구는 내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 흥미 없다는 듯, 딴짓하기 시작한다.



 싱크대 밑에는 정수기 본체와 음식물 쓰레기 냉장고가 들어있다. 그러다 보니, 그 안은 열기로 후덥지근하고 온갖 연결선으로 정신이 없다. 거기에 날카로운 요리도구도 보관하고 있어, 이곳 역시 금묘구역이다.

 그러나 하지 못하게 막을수록 그 안을 탐험하고 싶어 하는 모습이 마치 청개구리 같다. 싱크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아주 작은 틈이라도 열려있다면, 그 탐험가의 본능이 깨어난다. 공간이 복잡한 만큼 탐험가의 흥미를 끄는 것일까. 정수기 뒤쪽으로 몸을 숨기기 전에 힝구를 밖으로 꺼내려 했지만, 힝구의 버티는 힘이 엄청나다. 그렇게 내 손에서 쉽게 벗어난 힝구의 모습이 사라졌다. 간절하게 힝구를 부르는 나를 향해 얄밉지만, 귀여운 표정을 한 채, 힝구가 고개만 쓱 내민다. 저 재미난 공간보다도 더 흥미로운 무언가가 필요하다. 싱크대 위쪽에 올려둔 과자봉지로 부스럭 소리를 내보지만, 오늘은 이 소리가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가 보다. 아니면 내 반응이 더 재밌는 것인지, 머리만 살짝 내민 힝구가 이 숨바꼭질을 즐기는 듯하다.


나 잡아봐라옹


 힝구는 왠지 이제 내 머리 꼭대기에서 나를 다룰 수 있는 것 같다. 꽤 자주 탐험했던 싱크대 밑이야 거기서 거기일 텐데, 아마도 힝구가 그 안으로 들어갔을 때, 기겁하는 내 반응은 청개구리 심보를 자극하나 보다. 타고나길, 리액션 하나는 제대로 장착한 집사의 반응은 힝구마저도 흡족하게 한다.



 내가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 때면, 종종 힝구는 문밖 복도로 뛰쳐나가려 한다. 그때마다 나는 다급하게 힝구를 제지하지만, 막아서는 나를 교묘하게 피하며 탈출에 성공한다. 그때마다 힝구를 잡기 위해, 나는 다급하게 힝구를 따라간다. 세상 밖이 그렇게도 궁금한 것인지, 가끔 힝구를 내 품에 안아 들고 복도를 한 번씩 구경시켜 주곤 하는데, 집사가 순순히 바깥 구경을 시켜주는 것보다도 탈출이라는 성취가 주는 기쁨이 좋은가 보다.


 한 번은 손에 짐이 많아, 짐을 집안에 넣어두고, 힝구를 급하게 잡으려고 몸을 돌리는데, 힝구가 고개만 살짝 빼고 서서, 나를 빤히 보고 있는 것이다. 마치 빨리 나를 잡으라는 듯, 이 녀석 내 반응이 재밌어서 자꾸 밖으로 나가려고 했구나. 나는 힝구의 본심을 파악하고 묘하게 자존심이 상했다. 아, 힝구 녀석의 장난에 제대로 걸리다니. 그때, 얄밉게 내 반응을 살피고 있던, 힝구의 표정을 공유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이제 힝구와 나는, 서로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렇게 자꾸 집사를 가지고 노는 것 같은 힝구의 의기양양한 모습을 볼 때면, 진심으로 귀엽다. 힝구 이번만 봐주마. 귀여우니까.


오늘은 여기로 정했어(탐험가 힝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