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하 한남 - 보리작가 시점
친구와 살면서 바뀐 감사한 변화는 심플하게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좀처럼 상대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결혼 초기부터 꾸준하게 나에게 요구해온 것이 있는데, 그것은 비우자는 것이다. 옷, 신발, 그릇 심지어는 책까지도 … 가끔은 내가 출장을 다녀올 때를 틈타 몰래 안 쓰는 물건들을 버리기도 했단다. 시어머님께서 주신 물건을 오랜만에 찾는데 없어서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 사실을 알았다. 없어진지도 모르는 것이면 필요한 것이 아니라며...
우리는 자금 관리를 각자 하기에 서로의 니즈가 일치해야만 공동출자가 가능했고, 그렇게 둘 다 꼭 필요한 것만 자연스럽게 구매하게 되었다. (물론, 또 각자의 소비는 충실하게 하지만서도...)
내가 또 옷을 사려고 하면 꼭 필요한지에 대해 묻고, 비슷한 것이 있지 않느냐며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사지 말라고 하는 건 아닌데도 그렇게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절반 이상은 구매를 안 하게 되는 듯하다. 이 과정을 거쳐 구매를 하면 그것이 대체한 예전의 옷은 버리는 게 어떤지 재촉한다.
그렇다. 친구는 일찍이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고 계셨다.
나는 옷 욕심이 많고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결혼 초기 우리 옷장의 8할은 나의 옷들로 넘쳐났고 친구는 조용히 책 한 권을 추천한다.
마침 그 당시 우리의 신혼가구와 생활용품들은 모두 무인양품에서 하나씩 채워져가고 있었던 때였다. 버리는 것부터 시작하라. 옷장/책장 어디든 40%의 여백을 두라. 잘 관리해 오래 쓰라. 충동적인 두근거림보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택하는 소비를 하라. 등등 친구가 반복해서 내게 했던 이야기들을 정돈된 글로 읽으면서 친구의 습관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었다. (심지어 가격에 구애받지 말고 소비하는 내용도 이 책에 있었다.) 우리가 사용 중인 무인양품의 제품을 활용해 미니멀한 라이프를 소개받고 있자니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 졌다.
책에서 설득당한 대로 조금씩 비움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2년 이상 입지 않은 옷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버렸고, 책장이든 옷장이든 여백을 점점 늘려갔다. 이사를 갈 때마다 짐의 가짓수는 점점 줄어갔고, 나의 패션도 기본 아이템과 모노톤으로 바뀌어 갔다. 책도 전자책으로 구매하기 시작했으며 한번 읽고 읽지 않은 책들도 모두 지니의 주인에게 가져다주었다.
이렇게 나는 또 한걸음 더 친구에게 동화되었다.
아직도 진행 중인 비움의 과정은 집에 여백을 만들어 주었고, 공간의 여백이 주는 풍요로움을 실감하고 있다.
하얀 테이블웨어가 가지런히 올려져 있고 높은 층고, 넓은 창에 햇빛이 쏟아지던 정갈한 일본의 어느 편집샵 같은 분위기. 지난 주말 다녀온 모노하 한남이 나의 미니멀 라이프의 시작을 새삼 떠올려주게 했다.
“옆문을 이용해 주세요” 누가 봐도 입구처럼 생긴 문에 쓰여있었다. 공간기획 좀 해봤다는 선무당은 친구에게 한껏 유식한 척 말한다. “동선을 유도하는 거야~”
기대감을 조성하는 입구의 철문을 지나고 통로를 지나 야외정원을 맞았다. 가지런한 돌을 하나씩 총총히 밟으며 들어가는 입구, 그리고 돌담과 건물 사이의 정원. 하늘거리는 섬세한 나무가 너무 잘 어울리는 정원이었다. 주말의 정원은 사진작가와 모델들이 너무 많았던 관계로 못 찍었다.
인파를 피해 3층에서부터 내려왔다.
김동준 작가의 달항아리를 마주했다. 퇴사 전 기획하던 공간의 컨셉이었던 korean contemporary의 표현방식에 대해 고민했었는데, 그 답을 보는 듯했다. 그때 오브젝트의 브랜드로는 'mohm'을 참고하고 있었는데 2층에서 'mohm'의 버선과 베개를 마주하는 순간 또 한 번 놀랐다.
'ㄱ'자의 공간은 네 면의 창을 품고 있는데 모두 다른 느낌의 뷰를 담고 있다. 한 곳은 까뭇까뭇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만 장식도 색도 빠진 군더더기 없는 심플한 건물을, 다른 한 곳은 가로수의 초록잎을, 가장 넓은 창은 1층의 정원 담 뒤로 멋스럽게 녹이 슨 창고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각 층에서 사진을 찍을 때마다 걸리는 창밖의 풍경도 마음에 들었다. 층마다 달라지는 뷰도 좋았고..
창밖의 뷰도 모두 계산된 것이겠지?
이 곳에 있을 때는 테이블 위의 그릇만이 눈에 뜨였었다. 끝을 말아올린 인위적이지 않은 비정형의 모양과 센스 있는 나뭇가지 하나가 생명을 넣었다고 생각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뒤의 아무것도 없는 흰 종이를 보면서 그저 하얀 자기와 잘 어울린다 정도 생각했었다. 친구는 옆에서 "와 설마 이것도 작품이가?" 라고 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검색하며 발견한 사실! 모노하는 이우환 작가가 이끈 일본의 모노하 운동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모노하는 자연을 도구로 인식하고 인위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것에 반기를 들어 시작된 운동이자 미술 사조였다. 모노는 물체/물건이라는 뜻으로 모노하 운동을 주도한 작가들은 돌, 나무, 흙, 철판 등 사물의 본질을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흰 종이는 모노하의 문을 연 곽인식 작가의 작품이었다. 종이의 물성을 나타내기 위해 물로 그리고, 힘을 가해 늘리고 다시 말린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한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표현하기 위한 엄청난 고민이 담겨있었구나!
샤프심이 만들어내는 직선으로 작품을 만들어온 윤상렬 작가. 다양한 굵기와 농담의 샤프심으로 직선을 수없이 그어 화면을 채우고, 사람 손으로 그을 수 없는 미세한 선은 디지털 프린팅으로 그려 넣었다 한다. 검정이 매우 마음에 든다며, 본인도 이 작품은 할 수 있겠다고...
사람이 많았는데도 찾아와 웰컴 티를 건네주셨는데, 찻잔이 예사롭지 않았더랬다. 김상인 작가님의 작품.
세상에! 예전에 멀리 공근혜 갤러리까지 가서 사진전을 보고 왔던 마이클 케냐의 사진집이 비닐옷을 벗고 있었다. 한 장 한 장 한참을 서서 보며 감탄했다.
이런 귀한 책을 누구나 볼 수 있게 내어 놓은 마음이 감사하네~ 더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모두가 조심스레 아껴 다뤄주면 좋겠다~ 나도 흑백사진집을 만들어야지~ 흑백사진은 라이카 M~ 뭐 이런 생각을 차례로 흘려보내면서...
그리고 투명한 것도 있었으나 사진을 찍지 않았더라.
알고 나서 보니 디스플레이에도 모노하의 철학이 담겨있었구나! 소재별로 모아서 디피가 되어있었다.
mohm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한국 부여 지역의 기반으로 활동하는 두 디자이너의 브랜드로 한국 전통에 근간을 두고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브랜드이다. 오랜만에 이곳에 글을 쓰려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또 놀란 것은 이들이 소개하는 홈페이지 about에 '손으로 만든 듯한 물성과 재료 자체가 지닌 솔직한 물성을 담아내고 합니다.'라는 글이 있었다. 공간과 공간을 채우는 것들의 소름 돋는 평행이론!
mohm 홈페이지 : http://studiomohm.com/about.html
1층에는 강석근 작가의 옻칠을 한 목공예 작품과 모노하의 편집 제품들이 함께 있었다.
나무 그릇에서 이렇게 얇고 섬세한 곡선이 표현됨이 신기했다. 피팅룸 안쪽에 걸린 빗자루는 픙성하게도 가닥마다 동글한 열매가 달려있는 모습이었는데 쓸다가 쌀알이 떨어지는 상상을 잠시 하게 만들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 했다. 대작의 그림이었건만 이렇게 우연히 찍힌 사진으로 마주한다. 지금은 알고, 그때는 몰랐다.
이 공간은 서교동 앤트러사이트와의 협업과 mmmg 라왕 선반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마키시 나미 작가와 함께 디자인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정원의 하늘거리는 나무가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대표님이 이 정원에서 잘 자랄 수 있는 나무로 너무 빽빽하지 않게 심어 달라 부탁했다 하셨단다. 왠지 초반에만 반짝하지 않는 시간과 함께 더 멋스러워질 공간 같았다.
처음엔 미니멀한 여백이 있는 편집샵의 느낌이었지만, 모노하라는 뜻을 알고 다시 보니 이곳은 전시관이었다. 아무것도 몰랐을 때도 그저 너무 좋았지만 알고 보는 관점을 비교하러 조만간 또 찾아갈 듯하다.
모노하가 추구하는 것이 그랬듯 나무, 돌, 자기, 스테인리스, 유리, 리넨 등의 소재와 색으로 디자인된 공간. 죽기 전에 이런 소재로만 지은 공간에서 살아보고 싶다.
흙, 나무, 스틸, 자기, 리넨... 저희도 그 소재 좋아하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