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책에서 찾은 매일의 질문
아침에 책을 읽고 나에게 와닿은 문장을 메모하여 주머니에 쏙 넣기
생각날 때마다 메모를 꺼내보며 왜 이 문장이 끌렸을지 생각해 보기
장마와 무더위가 시작되던 6월 말, 출판 편집자 김보희님의 <아침독서&문장메모> 리추얼이 오픈되었다. 아기자기함과는 거리가 먼데다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기에 메모장에 문장을 적고 가지고 다니는 리추얼이 평소 같았다면 관심이 없었어야 정상인데, 처음부터 이상하게도 그냥! 땡겼다. 그렇게 홀린 듯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빠져들었다. 낭만 가득했던 한 달을 보내고 남겨보는 오랜만의 리추얼 후기.
첫 미팅에서 내가 선언한 작은 목표는 올해 상반기에 읽고 밑줄만 그어둔 책에서 좋았던 문장을 찾아보겠다는 거였다. 처음 리추얼을 시작하려는 주말 아침, 어떤 책을 읽어볼까 고민하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날 때마다 자주 보게 될 텐데.. 이왕이면 그 문장이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면 좋겠네!'
그러고는 책장 앞에 쪼그려 앉아 요리조리 눈을 굴리며 스캔하다가 책 한 권을 포착했다. 비닐도 벗기지 않은 채 먼지가 소복하게 앉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였다. 전혀 친하지 않은 장르인 철학책이라는 것도 모르고 일단 사둔 책이었다.
철학은 쉽지 않다. 철학은 멋지지 않고, 일시적이지 않다. 철학은 스파보다는 헬스장에 더 가깝다.
우리를 붙들고 놔주지 않는 것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처럼 어떻게를 묻는 질문이다.
서문을 보고 홀린 듯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지식보다는 종일 생각해 보고 싶은 질문이나 마음에 새기고 싶은 문장을 찾았다.
철학책에는 생각하게 하는 문장, 질문을 던지는 문장이 많아서 문장메모와 궁합이 잘 맞았다. 우선 책을 읽으며 끌리는 문장, 좋은 문장, 한 번 더 보고 싶은 문장에는 밑줄을 긋고 그중에 오늘의 문장을 찾았다. 한 챕터를 다 읽은 날에는 내가 그은 밑줄들을 메모장에 옮겨 적었다. 그렇게 밑줄을 적어보면 그 챕터의 내용이 요약된 듯 구조가 한눈에 보이며 애매모호했던 내용이 이해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여전히 잘 모르겠기도 했다. 나중에 또 보면 언젠가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겠지...
이거다! 싶은 문장이 단번에 눈에 들어오는 날도 있었지만, 없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다른 책을 펼쳐 밑줄 친 문장에서 오늘의 문장을 찾기도 했다. 끌리는 문장이 없는 날은 다른 메이트가 올린 문장메모를 다시 메모하기도 했다.
많은 밑줄 사이에서 딱 한 문장을 선택하려니 (물론 메모를 두 장 한 날도 있었지만..) 나에게 제일 중요한 것. 나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이슈가 무언지 더 잘 보였다. 넘쳐나는 것들 사이에서 매일 하나를 선택하는 것. 그 시간 자체가 하나의 훈련이 되는 듯했다.
출근하며 모니터 아래 메모장을 붙여두지만 한 번도 눈길을 주지 못하고 퇴근하며 그대로 수거하는 날도 많았지만, 마음의 여유가 있는 퇴근길에는 주머니에서 메모장을 꺼내 보면서 오늘 아침 내가 이 문장이 왜 끌렸을지 생각하기도 했다. 매일 결론 내릴 수 있는 쉬운 질문들은 아니었지만 며칠 뒤에 다른 문장에서 그 답을 발견할 때도 있었고, 내 글에 함께하는 메이드 분들이 남겨준 댓글에서 힌트를 찾는 날도 있었다.
가능하면 잠들기 전에 고민의 흔적을 기록해두었다. 덕분에 오래 멈추었던 일기를 이어갈 수 있었고 4주를 회고하려 보니 짧게나마 남겨놓은 생각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에세이, 소설, 인터뷰, 철학, 음식과 미각에 관한 책까지 각자의 취향껏 읽으면서도 몇 권의 책은 파도타기처럼 돌려 읽었다. 아마도 이 파도는 다음 달에도 계속될 것 같다는 추측. 아! 구름을 나누는 것도.
4주간의 리추얼이 어땠는지 회고하는 마지막 미팅 날, 서로의 감상도 문장메모.
- 내 안의 낙관성을 찾는 시간이었어요.
- 살아있는 것 자체가 로또라는 걸 깨달았어요.
- 내 무의식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 각자의 세계에서 각자의 단어가 모여 확장되는 게 좋았어요.
- 메모장이 내 몸에 착붙어있는 것처럼 문장메모 리추얼은 착붙이에요.
- 퇴사와 번아웃의 외줄타기에서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어요.
- 댓글이 문장만큼이다 다정하고, 다정한 에너지가 가득한 리추얼이었어요.
- 그냥 이 리추얼에는 낭만이 있는 것 같아요!
리추얼도 책도 평상시와 다르게 계획없이 마음 흘러가는 대로 따라간 것뿐이었는데, 내 몸에 필요한 음식이 당기듯 본능적인 일이었나 싶다. 또 마음이 가는 대로 끌리는 책을 읽고 하루하루를 살아보겠다 다짐하며 마치는 리추얼 후기.
7월 밑미팀 플레이데이를 주최하는 차례가 되어 뭘 해볼까 고민하다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마니또를 정해 각자의 고민에 힘이 될 만한 문장을 찾아 선물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들 열정적으로 문장을 찾고 나눠주어 너무 감동이었는데, 뒤늦게 깨달았다. 이날의 문장나눔은 문장메모 리추얼에서 영감 받았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