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추얼 메이커를 하며 시작된 또 하나의 리추얼
글쓰기 리추얼이 3개월에 접어든 일상에서 난 일기와 에세이보다 댓글을 더 열심히 쓰고 있었다. 의외의 포인트는 의무감에 하는 ‘열심히’가 아니가 내 일상 속 또 하나의 리추얼처럼 ‘즐기고’ 있다는 것.
리추얼을 시작할 때 일기를 꾸준히 쓰는 것보다 매일 댓글을 잘 남길 수 있을지를 제일 걱정했는데 모닝커피와 함께 하루를 여는 시작이 되다니. 메이트의 글에 댓글을 남기고 있는 나에게 던져진 “뭐 하는데 그렇게 므흣한 미소를 짓고 있어?”라는 질문 덕분에 새삼 내 마음의 표정을 알게 되었고 나에게 댓글 리추얼의 동력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흐뭇함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묶어버리기엔 아쉬운 복잡 미묘한 감정이 있었는데, ‘경청’에 대한 이야기가 트리거가 되고 12월 회고미팅에서 한 달을 회고하며 자연스럽게 그 답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나라는 사람은 조용히 타인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입으로, 손으로, 머리로 시끄럽게 떠드는 쪽이다. 가끔 책만 읽을 뿐 누군가의 글과 생각을 다정하게 들여다본 적이 별로 없었다. 리추얼 메이커라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어쩌면 의무감으로 다른 이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내용이 어떤지, 글을 잘 쓰는지 같은 것보다 가장 먼저 마음에 와닿은 건 쓰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쓰고 싶다는 간절함, 지친 몸을 달래며 세 줄이라도 써보겠다는 최선, 쓰고 싶은 마음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의 속상함, 오늘도 못썼다는 자책 등을 볼 때면 몸이 베베 꼬이고 마음이 뒤틀리는 듯한 그 모든 감정들이 남일 같지 않다.
하루를 살아내는 것도 힘겨운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고 있나 싶은 마음, 그렇지만 그렇게 괴로워도 쓰고 싶은 마음 또한 누구보다 잘 알기에, 결국 써냈을 때의 희열도 느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 댓글을 쓰게 했다. 하루아침에 멋진 글을 쓰려고 욕심내지 말라고, 세 줄만 가볍게 써보라고, 하루쯤 쉬어가도 괜찮다고...... 내가 글 쓸 때 도움받았던 책의 내용을 소개하기도 하고, 글쓰기 수업이나 독립출판 수업에서 배운 걸 나누기도 했다. 좋은 글을 읽으면 공유하고 싶었고, 글쓰기나 일하는 태도 등 살아가는데 뭔가 도움이 되는 걸 공유하고 싶어서, 책을 읽거나 강연에서 공감이 되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열심히 받아 적어 두었다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 댓글로 남기곤 했다. 포기하지 않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다 보니 어렵거나 힘들지 않았고 자연스러웠다.
리추얼을 시작하는 선언미팅에서 각자가 쓰고 싶은 글을 나누지만 당연하게도 마음처럼 처음부터 각자가 쓰고 싶은 글을 쓰기란 쉽지 않다. 그런 순간에 '역시 난 틀렸어'가 아니라 욕심을 내려놓고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아도 지금 쓸 수 있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각자 도달하는 시간은 다 다르지만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쓰는 사람들에게는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 예고 없이 갑자기 탁! 하고 변화가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줌미팅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글감의 힌트를 얻어 자신의 서사를 마치 신내림 받은 듯 술술 쏟아내기도 하고, 잔뜩 긴장하던 힘이 촤르륵 빠져 편안하고 솔직하게 속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고, 처음 본인이 쓰고 싶다고 말한 이야기를 두 달 만에 드디어 써 내려가기도 한다.
마법 같은 변화가 눈에 보이는 순간에 난 잠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피가 거꾸로 도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순간에는 '와 그때 쓰고 싶다고 말했던 그 글이 나왔어! 이렇게 나와버렸어' 감동의 눈물을 쏟아내는 이모지와 감탄사를 남발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부터 어려움 없이 물 흐르듯 쉽게 썼다면 결코 느낄 수 없었을 거다. 고난과 괴로움이 있었고 그 시간을 그 고민을 함께 통과했기에 함께 느끼는 벅찬 감동. 봄이 되면 피어나는 꽃처럼 자연에서 느낄만한 경이로운 순간이랄까.
그런 순간이 반복되면서 확신하게 된 사실도 있다. 역시 꾸준한 시간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 노력하는 만큼 점점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서 글쓰기는 매력이 있다는 것.
꾸준히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그걸 해내는 이들이 너무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워서 그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정말 대단하다고, 여기서 또 갑자기 조급해하지 말고 욕심내지 말라고, 그리고 동기부여가 될 수 있게 공동의 목표를 만들어 보자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댓글로 편지 쓰듯 남겼다. 나 역시 꾸준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과거에 리추얼을 하며 들었던 생각이 있다. ‘나는 어쩜 이렇게 이기적일까. 글도 내 글만 쓰는데 급급하지 남의 글을 잘 읽지도 않아. 나도 '기버'가 되고 싶은데, 난 틀렸어. 이기적이게 태어났나 봐.’
그랬던 내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꾸준히 들으며 그들이 쓴 글의 독자가 되어 응답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스스로를 뿌듯하게 만들었다. '타인의 이야기에 경청하는 나 대견해. 자랑스러워.' 아마 김지수 기자님의 이야기에 반응했던 이유는 이런 내 만족감과 경청이 중요하다는 말이 자석처럼 만나 스파크를 일으켰기 때문이 아닐지.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이 압축된 글을 접하다 보니 갇혀있던 나만의 세계에 끊임없이 다양한 배경이 펼쳐지는 느낌이다. 나만 이런 걸 느끼는 게 아니구나, 이런 상황에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겠구나, 소설을 읽으면서 다양한 입장의 사람에 감정이입하고 공감하듯 스무 명의 주인공이 각자의 무대에서 느끼는 생각을 들어다 보며 생각이 폭이 넓어지고 깊어진다. 함께 쓰고 나누며 확장한다던 글쓰기가 이런 건가 보구나.
매일 글을 쓴다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그 힘든 걸 해내는 이들. 그리고 이들의 간절함에 감동받고 노력과 애씀에 위로받는 시간이 결국 나의 댓글 리추얼을 만든 듯하다. 글을 쓰고 댓글을 쓰며 손잡고 함께 또박또박 걸어보아요, 멋진 우리!
가장 두근거리고, 두렵게 만드는 사람은 미쳐 있는 자다. 시키지 않았는데 몇 편씩 써오는 사람, 합평 때 나눈 이야기를 자기 방식으로 소화해 다시 써오는 사람, 고친 것을 또 고쳐 오는 사람. 이건 정말 못 당한다. 좋아서 하는 일. 가끔이지만 이런 수강생을 보면 티 내지 않으려 해도 심장이 뛴다. 태어나려나 봐, 저 사람, 태어나려는 것 같아. 어쩌지, 태어나면 저 사람 빛날 텐데, 빛나다 어두워지기도 할 텐데, 괴로운 텐데, 행복에 겨울 텐데, 도망치고도 싶을 텐데, 어쩌려고 저러나…… 걱정 반 기대반.
- 박연준 시인의 산문집 <모월모일> 54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