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그림일기를 그리고 싶은 게 있어서 메모에 끄적끄적 적어놓고 어제 그리려고 했는데, 빈둥거리다 못했다. 메모만 해놓고 그리지 못한 일기들이 많은데, 내 게으름 때문에 그리지 않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항상 찝찝한 기분이 든다. 마치 숙제를 안 한 느낌이 든다 해야 하나.
혼자서 시도했던 나만의 리추얼
올해 3월부터 약 4개월 간 나름 혼자 시도한 리추얼이 있었다. 퇴근 후 집에 와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소화를 시킨 후 3 가지를 했다.
'30분 달리기를 하고, 유튜브를 보며 스트레칭을 따라한 뒤, 자기 전에 그림을 그리는 것.'
리추얼에 실패했던 이유
약간 욕심이 과했나 싶기도 하다.
지금 와서 보니 퇴근하고 하루에 너무 많은 것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처음 3개월 간은 즐거운 마음으로 이틀에 한번 정도 혼자 리추얼을 했는데, 보통은 달리기와 스트레칭을 하고 나면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일기에 내 감정과 생각을 깊게 담을수록 고민은 더 많아졌다.
그림을 매일 그리는 건 초보자가 하기에는 생각보다 꽤 품이 많이 들었다. 일기를 쓰는 영역도 초보인데, 그림일기에 내 깊은 감정과 생각을 담아 표현할수록 후유증이 있었다. 안 그래도 걱정과 불안이 많은 성향인데, 그림일기를 한편 그려내면 더 생각이 많아졌다.
‘내 가까운 사람들이 이걸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혹시 상처받지는 않을까?’
‘내가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반응의 댓글도 있네?’
‘내가 원하는 걸 그림일기에 써서 올렸다가 실패하면, 좀 창피할 것 같은데.’
생각이 많아질수록 그림일기를 그리는 건 계속 뒤로 미루기만 했다. 미루면 미룰수록 시험기간에 공부 안 하고 놀고 있을 때 딱 그때의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아, 몰라. 그냥 내일 그려야지.’
쉽게 남과 비교하는 내 성향도 한몫했다.
그림을 자주 업로드하지 않으니, 팔로워 수는 좀처럼 늘어나지 않았다. 매일 그림을 그려내는 다른 사람들이 부러웠다. 시작이 어렵지, 사실 시작하고 나면 어떻게든 어설프더라도 그려지는데 그걸 알면서도 매번 비슷한 감정의 패턴을 지나간다.
힘든 일이 닥치니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올해는 우울한 날들이 많았다. 일이 이제 좀 덜 힘든가 싶으니 친구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혼자 있는 게 편하겠다 싶어 집에만 있는 날들이 많았는데 우리 가족에게도 힘든 일이 생겼다. 살면서 겪어보지 못했던 일들이 생기니 내가 혼자 했던 리추얼은 당연히 지속할 수 없었다.
다시 시작한 리추얼, 이번엔 혼자가 아니야.
이번 달은 내 감정을 다시 마주하고 잘 표현하고 싶어 매일 일기를 쓰는 밑미 리추얼을 시작했다. 글쓰기를 싫어하던 내가 이 리추얼에 참여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고, 누군가 내 일기를 읽고 댓글을 달아주는 게 재미있었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는 이유가 이건가보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함께하고 응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인스타에 전체 공개하기는 어렵거나, 가까운 사람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내 생각들을 리추얼에 올리는 일기에는 어쩐지 쓰게 된다. 소규모의 온라인 모임이라 그런 것도 있었을까?
다음 리추얼은 좀 편하게 해 볼까?
오랜만에 ‘세줄일기’라는 어플이 생각나서 다운받아 봤다. 인스타에 올린 그림 중 한 두 컷을 골라서 사진으로 등록하고, 하루에 세줄 정도의 글을 남기는 방식으로 가끔 썼었다. 작년 6월부터 올해 4월까지 쓴 세줄 일기를 보니 인스타툰과는 색다른 느낌도 들었고, 아주 느린 속도이지만 나름 열심히 기록하며 살고 있었다는 기특한 마음도 들었다.
인스타툰 한 편을 그려내기는 좀 힘이 드니, 다음 달 리추얼은 세줄일기처럼 그림 한 컷을 그리고 짧은 일기를 쓰는 방식으로 진행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2022년 남은 한 달 동안에는 다른 사람 눈에 보기 좋은 일기가 아닌, 나를 위한 일기를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