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를 추구하며 성장하는 주말 3시간 사이드 프로젝트
두잉레터에 연재한 <회사를 떠난 지금,> 네 번째 글입니다.
<회사를 떠난 지금,>은 회사를 떠나 자신에게 맞는 일의 방식을 찾아가는 여섯 분의 커리어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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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를 추구하며 성장하는 주말 3시간 사이드 프로젝트
안녕하세요. 김상아입니다.
회사를 떠나야 하나 고민하는 수많은 순간, 퇴사를 결심하기보다 지금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게 되죠.
오늘은 회사에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온 서준원님의 터널을 들여다보려고 해요. 사이드 프로젝트는 준원 님 스스로 설 수 있는 다양한 무대가 되어줬다고 하는데요. 퇴사의 대안으로 지금 바로 무엇을 실행할 수 있을지 힌트를 얻고,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을 고민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어요.
Q. 본업과 함께 다양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오셨어요.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브랜드 콘텐츠를 기획하면서 주말에는 레이지버드커피클럽 LBCC이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서준원 입니다. 많은 이들이 재밌게 놀 수 있는 판을 벌이는 걸 좋아해요. 일에서 갈증이 생길 때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판을 벌이면서 결핍을 해소해왔고 더 주도적으로 일하고 싶어 작년에 이직했어요. 8년 동안 다니던 첫 회사를 떠나 새로운 회사에서 오리지널 콘텐츠를 기획하며, 사이드 프로젝트로 만든 여러 판을 통해 본업을 탄탄하게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Q. 첫 회사에서 8년이나 계셨던 걸 보면 아마도 본인에게 맞는 일을 찾아 만족하며 일하셨던 것 같아요. 본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사범대에서 국어와 불어 교육을 전공하고 교직 이수를 해서 정교사 자격증을 갖고 있어요. 교생실습 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만족스러웠고 주변에서도 교사를 해보라고 추천을 많이 해주셨는데, 언어의 역사나 문법을 공부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다고 느꼈어요. 예를 들면 중세의 ‘짐지’라는 단어가 어떻게 현재의 ‘김치’가 되었는지 상세하게 배우는데, 저에겐 과거의 이야기가 고리타분하게만 여겨졌어요. 이런 내용을 가르칠 제 모습을 상상해보니 이 길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당시 페이스북이 뜨기 시작했는데 전 새로운 플랫폼을 사용하고 콘텐츠를 올리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많은 사람이 반응하는 걸 보면서 소셜미디어가 기존 레거시 미디어보다 더 큰 시장이 되고 더 많은 플레이어가 여기로 모이겠구나 확신했어요.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대학내일’이라는 회사에 들어가게 됐죠. 저에게 일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재미'였어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건 너무 불행하잖아요.
Q. 업무 경험을 담아 최근 『훅 끌어당기는 콘텐츠 마케팅』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는데요, 회사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
대학내일은 자체의 브랜드와 콘텐츠도 있지만, 타기업의 콘텐츠를 만드는 에이전시의 역할도 해요. 저는 기업이나 제품을 매력적으로 보여줄 소셜미디어 콘텐츠를 기획하고, 톤앤매너를 고려하여 카피나 이미지, 영상 등을 전반적으로 디렉팅했어요.
소셜미디어가 뉴미디어로 불리던 당시,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해 브랜드 채널을 구축하려는 회사가 많았어요. 그런 고민을 안고 20대 타깃의 대학내일을 찾아오는 경우도 많았고요. 제가 입사했을 때 대학내일은 이 분야를 키우려고 많은 인재를 채용하던 중이었죠. 저 같은 친구들이 많이 입사해서 가벼워져야 한다고 이야기했고 그런 의견들이 잘 반영되었어요. 피식거릴 수 있는 콘텐츠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본인의 관심사를 콘텐츠로 만드니 얼마나 신났겠어요?
젊은 감각과 위트있는 콘텐츠가 점점 대학내일만의 강점으로 자리잡으면서 찾는 고객사도 많아졌어요. 한창때는 3~4개 브랜드를 담당하며 하루에 콘텐츠를 10개 이상 발행하기도 했어요. 주니어 때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힘들게 일하면서도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쾌감을 느꼈어요. 그만큼 회사에서 보상도 잘 해줬고, 무엇보다 일이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제가 입사했을 때 50명이었는데, 퇴사할 때 500명이었으니 엄청난 속도로 함께 성장한 셈이죠.
Q. 내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지했기에 만족스러운 회사에서 성장하는 재미까지 느끼며 일할 수 있었구나 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을 것 같아요.
대체로 만족스러운 회사 생활이었지만 지속해서 느껴지는 갈증이 있었어요. 4년 차 쯤에 제가 2년간 담당하던 ‘처음처럼’이라는 브랜드가 소셜미디어 대상을 받았어요. 브랜드 팬덤도 생겨서 무척 뿌듯한데 상을 받는 주체는 회사이지 제가 아니더라고요. 고객사와 회사 내에서는 인정받고 있지만 대중에게는 내가 만든 결과물을 ‘내 것’이라고 말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신나게 일을 하다가도 공허함이 찾아오는 빈도가 점점 잦아졌어요. 나는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죠. 하지만 이직을 하고 싶진 않았어요. 자유로운 기업문화도, 동료들의 가치관이나 태도도 좋았거든요. 회사를 다니며 인정욕구를 채울 방법을 고민하다가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Q. 시작이 제일 어렵잖아요. 사이드 프로젝트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저에겐 당연한 일이라고만 여겼는데, 많은 사람이 ‘브랜드 콘텐츠 기획’에 대해 궁금해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동안 일해온 전문 분야를 아티클로 정리해서 퍼블리에 제안하게 되었죠. 나의 분신들을 만들어 욕구를 해소해보자는 마음으로 ‘소셜미디어에서 브랜드 팬덤 만들기, 세계관 만들기, 카피라이팅 법칙’ 등 저만의 업무 노하우를 정리했어요. 아티클 쓸 때 정말 힘들었어요. 퇴근 후에 잠을 줄여가며 글을 쓰면서 ‘이걸 왜 한다고 했나’ 후회했던 적도 있어요. 하지만 운 좋게도 반응이 좋았고 덕분에 강의나 컨설팅 기회를 얻었어요. 강의를 위해서 열심히 자료를 만들고, 그 자료를 책으로 엮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출판사에 투고 메일을 보냈어요. 그렇게 책도 세상에 나오게 되었죠. 하나를 시작하니 계속 새로운 기회로 연결되고 그게 동기부여가 되었어요.
Q. LBCC라는 커뮤니티도 운영하신다고 들었어요. 사이드 프로젝트로 커뮤니티를 운영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LBCC는 다른 사이드 프로젝트와 출발이 조금 달랐어요. 지금까지의 사이드 프로젝트가 본업에서 파생되었다면 이건 순수하게 재미로 시작했어요. 나만 알고 있는 사람들을 서로 연결해주고 싶더라고요. 서로 다른 일을 하며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친구 7명을 모았어요. 주말 아침에 모여 리프레시하는 마음으로 각자의 일상과 고민을 나눴어요. 저 빼고는 접점이 없는 친구들이라 어떤 케미가 나올지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어울려 많은 이야기를 나누더라고요. 다들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사람들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을 계속 만들고 키워보고 싶더라고요. 일상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이 모일 수 있게 주제를 정하고 정기화했어요. LBCC, 레이지버드커피클럽이라는 이름도 만들고 본격적으로 시작했죠. 매주 주제를 미리 공지하고 참여 신청을 받아요. 일요일 아침에 약 15명이 모여 관심사나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요. 진짜 필요한 이야기는 사람에게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기회를 내가 만든다는 것에 보람을 느껴요.
Q.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건 업무 노하우를 정리하던 사이드 프로젝트와는 차원이 다를 것 같아요. 부담이 되지는 않나요?
LBCC는 처음부터 뜻이 맞는 동료와 함께하고 있어요. 저는 호스트를 섭외하거나 콘텐츠를 기획하고 정리합니다. 모임 날에는 모더레이팅을 하고요. 친구는 운영 프로세스를 담당하고 있어요.
무리하지 않기 위해 두 가지 기준을 세우고 시작했어요.
주말 3시간만 투자하기.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이 커뮤니티에서 함께하기.
예를 들면 제가 책을 쓰는 기간에는 ‘책 쓰기 클럽’을 진행하면서 매일 1시간씩 시간을 확보하고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과 동기부여를 나누는 식이죠. 거창하게 판을 키우기보다 ‘내가 만든 커뮤니티 안에서 느슨하지만 따듯하게 연대하고, 기여하는 마음을 나누자’ 딱 이 정도만 생각해요. 그래야 지속할 수 있거든요. 지금은 모임이 많아진 만큼 조금 더 시간을 투자하고 있지만 부담 없이 즐기는 저만의 주말 루틴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즐거움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활동에서도 본업에 도움이 되는 점들이 생겨요. 커뮤니티를 통해 업계의 네트워크나 최신의 정보들을 얻게 되고, 다양한 기획을 시도해보고 피드백 받을 수 있어요. 본업에서는 신경 써야 할 게 많고 아무래도 리스크도 크잖아요. 하지만 사이드 프로젝트에서는 부담이 없죠. 본업을 단련시키면서 시너지 나는 구조가 여기서도 가능하더라고요.
Q. 회사를 다니며 사이드 프로젝트를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 있다고 들었어요.
처음에는 제게 주어진 기회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해서 다 시도했는데요,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준이 생기더라고요. 한창 ‘파이프라인'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지만 저는 돈보다는 지금 하는 일과 연결되어 나를 좀 더 강하게 만들어주면서, 정체성을 단단하게 정립해줄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본업을 잘 지킬 수 있는 일인가’를 기준으로 보면 본업과 부업이 한 방향을 향하게 되죠. 자연스럽게 한정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어요. 커리어를 정리한 아티클이 강의로 이어지고, 이 강의를 위해 만든 자료는 다시 책의 바탕이 되는 거죠. 본업이 부업이 되고 이 경험이 다시 본업에 도움을 줄 수밖에 없어요.
Q. 회사 일과 사이드 프로젝트를 병행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요. 준원 님만의 노하우가 있을까요?
사이드 프로젝트에서 제일 중요한 건 실행력이에요. 뭐든 하면 다 되거든요. 먼 미래를 보기보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목표를 만들고 일단 해보는 거죠. 제안부터 시작합니다. 저는 먼저 제안받은 게 별로 없어요. 모두 제가 먼저 두드렸죠. 퍼블리에도 제가 먼저 기획안을 보내서 기회가 생겼고 출판사에도 투고 메일을 보내서 출간하게 된 거예요.
거절이 두렵지 않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대행사에서 하는 일이 항상 고객사에 제안하는 일이거든요. 괜찮다면 바로 진행하고 별로라면 다시 하면 되니까 거절에 대한 방어력이 자연스럽게 생겼던 것 같아요. ‘난 제안했어. 거절도 괜찮아. 안 되면 다른 데서 하지 뭐' 이런 마인드로 우선은 제가 할 수 있는 걸 해보는 거예요.
제안이 받아들여지면 이제는 ‘완수하자’는 생각으로 임해요. 가볍게 시도하고 ‘완벽보다 완료’라는 생각으로 하고 있습니다. 장인정신도 중요하지만 사이드 프로젝트에서는 일단 완료하면서 보완해가는 ‘상인정신’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사이드 프로젝트가 가지는 장점이기도 하죠. 조금 부족해도 많은 이들이 응원해줍니다.
Q.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회사와 병행하며 만든 판들이 서준원 님의 터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준원 님에게 사이드 프로젝트란 어떤 의미인가요?
‘열심히 일하다 보면 30대에는 멋진 사람, 알찬 사람이 되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여전히 그냥 나더라고요. 회사에서 100% 만족할 수는 없잖아요. 자기 효능감이 낮아지거나 결핍이 느껴지는 순간마다 사이드 프로젝트가 돌파구가 되어주었어요. 주도권을 가지고 변화를 만들고 싶을 때는 이직을 선택했고요. 매순간 당장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뭐든 열심히 시도하면서 본업에서 채우지 못한 잠재력의 조각들을 하나씩 찾는 느낌이에요.
아직도 제 안에 숨겨진 보물이 많다고 생각하는데요, 사이드 프로젝트는 내가 가진 반짝거리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느껴요. 단순히 돈을 벌고, 유명해지는 외부적인 요소보다, ‘나’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는 기회인 셈이죠.
중요한 건 되는지 안 되는지도 해봐야 알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조금만 투자해도 싹이 보여요. 딱 3개월만 참고 회사에서 하는 ‘일처럼’ 해보세요.
LBCC에서 서준원 님의 주말 루틴을 함께 한 어느 일요일 아침, 모임이 끝나고 자신의 책을 들고 온 독자에게 사인을 해주는 모습을 보며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의 저자 강상중 교수의 말이 떠올랐어요.
“올인하지 말라. 여러 개의 스테이지에서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갖고 살라.”
결핍에서 비롯된 작은 대안은 언젠가 가장 나답게 설 수 있는 무대가 되어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마음속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계속된다면 작은 목표를 만들어 가볍게 실행해보면 어때요? 게으른 눈보다 부지런한 손이 더 빠른 법이랍니다.
Editor. 김상아
Photo. 김상아
발행일. 2024. 2. 29.
두잉레터에 연재한 <회사를 떠난 지금,> 네 번째 글입니다.
<회사를 떠난 지금,>은 회사를 떠나 자신에게 맞는 일의 방식을 찾아가는 여섯 분의 커리어 인터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