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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 Bori Apr 12. 2024

"이게 내 길이 맞을까?" 끊임없이 묻고 있다면

어떻게 살고 싶은지 자신을 탐구하는 시간 

두잉레터에 연재한 <회사를 떠난 지금,> 다섯 번째 글입니다. 

<회사를 떠난 지금,>은 회사를 떠나 자신에게 맞는 일의 방식을 찾아가는 여섯 분의 커리어 인터뷰입니다. 

하단에서 두잉레터를 발행하는 '리드앤두' 정보와 뉴스레터 구독링크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리드앤두의 뉴스레터 <회사를 떠난 지금,> vol.5



"이게 내 길이 맞을까?" 끊임없이 묻고 있다면

: 자신을 얼마나 잘 알고 있나요?



안녕하세요. 김상아입니다. 
우리는 지금껏 입시나 취업을 목표로, 무언가 성취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사는 법을 배워왔어요. 어떨 때 흥미를 느끼는지 어디에 소질이 있는지 충분한 시간을 들여 나를 탐색할 기회는 드물었어요. 그러다보니 막상 시작한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죠. 다 그런 거라며, 이미 늦었다는 합리화를 하기도 합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동안 쌓은 경력과 안락함을 과감하게 내려놓고 나를 연구 중인 정연주 님을 만났습니다. 삶의 방향을 설정해가는 탐구의 터널을 한 걸음씩 따라가볼까요?




Part 1. 치열했던 투자회사에서의 7년



Q. 투자회사에서 일하셨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고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투자회사에서 일했다고 하면 다들 투자심사역을 많이 떠올리시더라고요. 전 투자금을 모으고 집행하는 데 필요한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일을 하는 투자 관리직이었어요. 자금을 투자, 운용할 때 법과 규정에 따라 검토하는 등, 서류를 만들고 정리하는 일이에요. 7년간 일에서 자아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매다가 2년 전, 나부터 제대로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에 탐구의 터널에 들어섰어요.



정연주 님의 커리어 패스



Q. 증권회사를 시작으로 스타트업과 공기업까지 다양한 회사에서 일했어요. 이직하게 된 배경이 궁금해요.


일을 시작하게 된 배경부터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심리학을 전공했는데, 공부를 이어가는 주변의 친구들과 다르게 저는 졸업하면 빨리 사회에 나가고 싶었어요. 목표가 생기면 추진력 있게 달려가는 성격이라 취업을 위해 마구 서류를 넣었고, 가장 빨리 출근할 수 있는 회사를 선택했어요. 나에게 맞는 일인지, 파견직의 한계는 없을지 깊이 고민하지 않고 학교를 떠났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신나게 일을 시작했죠.


그로부터 1년 후, 이직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반복되는 업무에서 한계를 느끼고, 더 깊이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갈증이 커져 신생 투자회사로 이직했어요. 작은 스타트업이었지만 일의 영역이 넓어졌고 주도권도 생겼죠.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쑥쑥 성장했어요. 이때 배운 업무 지식과 스킬을 그 뒤로도 잘 활용했고요. 하지만 생존이 목표인 환경에서 늘 불안하더라고요. 2년을 채운 뒤 규모가 있는 공기업으로 옮겼습니다. 처음엔 안정적인 분위기에 만족했지만 점점 정체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후엔 스타트업과 공기업의 접점이라고 생각되는 중견기업에서 근무하다 퇴사했어요.





Q.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을 채워줄 환경을 찾아 이직하고 그 과정에서 성장을 해오신 거네요. 마지막 회사에서 퇴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매 순간 갈증을 채워주는 환경을 찾아서 끊임없이 움직였어요. 양극단도 경험하고, 절충점을 찾은 선택까지도 했는데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대안을 찾기 힘들었어요. ‘업무나 회사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 걸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됐죠.


사서인 친구가 ‘한 달 후에 죽는다면 뭐가 아쉽냐’는 질문에 내일 죽어도 후회가 없다는 거예요. 그가 살아온 삶과 태도를 되짚어보니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오래 고민했던 것이 생각나더라고요. 마구잡이로 지원서를 넣어 나를 받아준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저와는 확실히 달랐어요. 연봉도 높고 괜찮은 환경에서 일한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살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어요. 앞으로 남은 시간의 대부분을 일하며 보낼 테니까요. 직업을 선택할 때 적성이나 흥미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으니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 싶었어요. 내 관심사와 장점은 무엇이고, 어떤 것을 추구하는지 등등 자아 탐구를 시작했죠. 뭐부터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언젠가 적어둔 버킷리스트를 보고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났어요.



Part 2. 이직이 아닌 갭이어

* 갭이어: 학업을 병행하거나 잠시 중단하고 봉사, 여행, 진로 탐색, 교육, 인턴, 창업 등의 다양한 활동을 직접 체험하며 이를 통해 향후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시간



Q. 순례길에서 어떤 걸 보고 느끼셨나요?


출발하자마자 여기서 나를 발견하긴 틀렸구나 싶었어요(웃음). 계획대로 안 되고 소통도 힘드니 매일 현타가 왔어요. 일 그만두고 돈 쓰고 고생하면서 뭐 하나 싶었죠.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포기했을 거예요. 모두가 시골 할머니처럼 스스럼없이 자기가 가진 걸 내어주고 토닥거리며 저를 이끌어줬고, 하던 일을 그만두고 아무 계획 없이 왔다는 말에 걱정은커녕 응원을 해줬어요. 그런 시간이 꼭 필요하다면서요. 


은퇴하고 왔다는 할아버지가 ‘아직 베이비니까 괜찮아. 충분히 고민하고 다시 시작해도 충분해’라고 해주신 말에 눈물이 핑 돌았어요. 내심 불안했거든요. 너무 늦은 건 아닐지, 이제 와서 새 직업을 찾는다는 게 가능할지 걱정됐는데 용기를 많이 얻었어요. 그때 힘이 된 말들이 일기장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요. 대가 없이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류애가 차올랐죠. ‘나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구나. 이렇게 함께 걸어가는 거구나’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마음이 열렸던 것 같아요.  


다양한 삶의 방식도 발견할 수 있었어요. 빠르게 걷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하게도 대부분 한국 사람이었어요. 숙소에 일찍 도착해 가장 좋은 침대에 자리하고 해와 바람이 좋은 빨랫줄에 일찍부터 빨래를 널고 쉬고 있었죠. 효율적이긴 하지만 여행 자체도 퀘스트를 수행하는 것 같더라고요.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산 저를 보는 것 같았어요.


피곤하면 씻지도 않고 아무데서나 널브러져서 쉬고, 늦잠 자고, 속옷 바람으로 자유롭게 걷고 쉬는 이들을 보며 ‘맞아. 정답은 없지’ 하고 깨달았어요. 학업과 직장생활을 거치면서 정형화된 삶,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생활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았는데 각자의 모습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본질적인 고민을 할 수 있었죠. 조급하지 않게 이 시기를 잘 즐겨보자는 마인드도 갖게 되었고요.


순례길에서 쓴 일기장




Q. 조급한 마음이 든 적은 없으셨나요?

순례길을 걸은 후, 뉴욕 여행을 다녀왔어요. 뉴욕에 다녀온 후론 미국에서 머무를 방법을 궁리했어요. 넓은 세상에서 살면서 그들의 사고방식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거든요. 하지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갭이어의 기간을 미국에서 알차고 보내고 싶다는 욕심도 작용했던 듯해요. 거기에 매몰되어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상태가 되고 나도 모르게 지금의 처지를 남과 비교하게 되더라고요.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친구, 승진한 친구들을 보니 ‘괜히 퇴사했나’부터 시작해서 ‘여행하면서 돈도 많이 썼는데 어쩌지’, ‘다시 회사를 갈까’ 이런 생각도 들었죠. 비교와 자책으로 우울한 겨울을 보내다가 정신 차리고 다시 한번 순례길을 다녀왔어요. 쉼표를 찍고 다시 나아가기 위해서 마음을 다졌죠.



Q. 긴 여행과 순례가 끝난 후 어떤 경험과 배움이 있었는지 들려주세요.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일은 고민하지 않고 다 해본 것 같아요. 뉴욕에 있는 친구 덕에 길게 여행도 다녀왔고, 그곳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사는 삶을 접하고는 한국어 교육 자격증을 준비했어요. 언젠가 쓸모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요. 예상보다 쉽지 않았지만 시험과 면접까지 거쳐 결국 취득했죠. 마무리를 못하는 성격인데 ‘나도 마음먹고 하면 되는구나’ 하는 자신감과 효능감을 얻은 귀한 경험이었어요. 


친구의 이사를 도와주다가 흥미를 느껴서 6개월짜리 인테리어 자격증 수업도 들었는데요. 교육 방향이 기대한 것과 달라서 4개월간 참고 꾸역꾸역하다가 결국 그만두었어요. 내 의지로 선택했고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는데 중도에 포기한다는 게 처음엔 용납이 안 됐는데요. 끝까지 해내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우울해하면서 붙잡고 있는 모습을 깨닫고는 딱 내려놓았죠. 포기하는 용기도 얻었습니다.



Part 3. 적성을 찾다가 발견한 진짜 나


Q. 여행, 한국어 교육, 인테리어, 봉사활동까지 균형 잡힌 갭이어 프로그램처럼 다양한 시도를 했어요. 나에 대해서도 그만큼 많이 발견하는 기회가 되었겠어요.


맞아요. 회사의 프로세스 안에서 정해진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만 반복할 때는 몰랐는데, 하고 싶은 걸 직접 선택해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쓰린 결과도 마주하면서 나답게 일하는 방식, 잘 맞는 방식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었어요. 예를 들면, 인테리어 자격증 준비를 할 때 초기 단계부터 완성도에 지나치게 몰두해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회사 핑계를 대며 내 문제가 아니라 여겼는데, 원하는 일을 하면서도 이런 문제를 마주하니 해결해야겠다 싶더라고요. 이제는 뭐든 일단 빠르게 가볍게 시작하고 완벽은 마무리 단계에서 기하려고 노력합니다.  


이 기간의 일기장을 다시 보면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도 발견할 수 있었어요. 나에게 감동을 주고 나를 움직이게 하고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주는 건 좋은 소통과 관계였어요. 일기장이 사람 이야기로 한가득이더라고요.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더라도 사람들과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Q. 남은 탐구의 시간은 어떻게 마무리할 계획인가요? 


2년 동안 나를 탐색하는 시기로 정해두었는데 최근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해져서 이제 그 시간을 마무리짓고 새출발하려고 해요. 지난여름부터 입양소에서 3세 미만의 아이들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해왔는데요, 이 일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험한 다양한 일 중에 유일하게 꾸준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가치관과도 잘 맞고요. 게다가 제가 전공한 심리학을 기반으로 일에서 전문성도 키울 수 있겠다 싶어요. 발달심리학 공부도 하고 사회복지사나 보육교사로 일하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히 해보려고 합니다. 시도하고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으니, 앞으로는 우직하게 하나에 집중해 보려고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2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 퇴사를 고민하는 때로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할 건가요? 나답게 일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분들께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나를 탐구하며 얻은 가장 귀한 소득은 어떤 결정을 하든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거예요. 퇴사를 앞두고 ‘이직할 때 3개월 이상 쉬면 안 된다, 이상적인 커리어 패스를 위해 이래야 한다’ 등 남들의 말에 많이 불안했는데요, 이제는 휘둘리지 않아요. 혹시 다시 이전에 일하던 업계로 돌아간다고 해도 괜찮아요. 그곳에서 나답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자신이 있거든요.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나를 제대로 탐구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비효율적이지 않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진짜 배움은 머리가 아니라 숱한 시행착오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고요. 그리고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시간의 잠재력을 한 번만 경험해 보시라고요. 







이미 늦었다는 착각 
치열하게 쌓은 경력을 포기하기 아깝다며, 다시 시작하기에 이미 늦었다며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다면 지금의 연주 님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갈증과 불만족 때문에 답답한 2년 전과 같은 모습이지 않을까요? 나를 제대로 알아가겠다는 과감한 결정, 그리고 경험을 확장하는 걸음들이 ‘진짜 내게 필요한 것’을 알아차리게 하고 나아가 자기 신뢰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머리로 상상하고 판단해서는 알 수 없는 것이죠.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생활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았는데, 순례길에서 각자의 모습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본질적인 고민을 할 수 있었어요.”


- 정연주 님 인터뷰 내용 중


변화무쌍한 환경에서 우리는 앞으로 여러 번의 전환점을 맞게 될 거예요. 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그때마다 합리화해야 할 테지만 나를 알아가는 감각을 한 번 깨닫고 나면 나답게 일하는 데도 가속도가 붙을 거예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휩쓸리듯 1라운드를 보냈더라도 괜찮아요. 일할 수 있는 기간을 50년이라고 보면 우리는 아직도 베이비랍니다. 그대의 커리어 2라운드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요? 새로운 라운드를 시작할지 말지는 내게 달려 있어요.  



Editor. 김상아

Photo. 김상아

발행. @readndo.official

발행일. 2024. 3. 14. 



두잉레터에 연재한 <회사를 떠난 지금,> 다섯 번째 글입니다. 

<회사를 떠난 지금,>은 회사를 떠나 자신에게 맞는 일의 방식을 찾아가는 여섯 분의 커리어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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