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된 딩크족의 결혼생활에 만족하는 이유 - 친구 시점
우리 부부간의 대화가 가장 심도 있게 이루어지는 순간은 둘이서 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할 때이다. 평일에 퇴근하고 가끔 만나는 자리에서는 아무래도 눈 앞의 저녁 식사와 회사 업무로 미뤄둔 개인 숙제(그때마다 다르지만 요즘은 집중하고 있는 “시노앨리스”라는 모바일 게임)로 신경이 분산되고, 주말에 집에서는 각자의 공간에서 본인 라이프스타일에 충실하다 보니 부부간 대화는 생존과 관련된 이슈(뭐 먹지? 등)가 아니면 딱히 오갈일이 없는 것 같다.
어느 날인가 차 안에서 이런 뜬금포가 오갔던 적이 있다. 우리가 결혼한 지 7년이 다 되었다고, 오래 같이 살았다고, 그동안 어땠냐고 등등 결혼생활의 대한 서로의 소회를 묻는…
다행스럽게도 보리작가는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같이 살면서 나의 생활방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받기도 했고… 뭐 크게 불만은 없노라고 했다.
물론, 나도 그랬다.
오늘은 결혼 7년이 지난 시점에서 보리작가와의 생활에 대한 나의 감정을 기록해 보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리작가와는 좀 다른 측면이긴 하나 나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고, 결혼 전에 생각했던 이상적인 결혼생활을 영위해 오고 있는 점에서 우리의 지난 7년은 “매우 만족” 스러운 시간이었다.
보리작가는 내가 30년 넘게 만나고 커뮤니케이션 해 본 여러 사람들(몇 안되지만) 중에 가장 똑똑한 사람이다. 똑똑하다는 건 여러 가지 판단 기준이 있겠으나, 그녀는 뭐랄까… 인생에서 맞게 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그 자리에서 논리적으로 척척 해결해 주는 믿음직스러운 존재이다. (내일 무슨 주식이 오를까 이런 류의 문제는 아니다.) 이는 흡사 내가 수업 시간에 무척 궁금한 것이 있는데 수업이 끝나갈 무렵이라 쭈글이처럼 질문을 망설이고 있을 때, 옆에서 손들고 내가 말하려던 바로 그것을 시원하게 질문해 주는 짝꿍과 함께 살고 있는 느낌이다. 부끄러움도 많고 말주변도 없는 나에게 보리 작가의 이런 점은, 삶의 질 향상 및 스트레스 감소에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다.
또한 보리작가는 이해심이 무척 많은 친구이다. 사실 이 점은 확실치는 않다. 온라인 MM ORPG게임의 교과서와도 같은 와우라는 게임에는 이런 말이 있다. “우리에게 최대의 적은 보스 몬스터가 아닌 여자친구이다.” 교실 맨 앞에 걸어 놓는 급훈처럼 간결하고도 명확한 그 슬로건에 길들여진 나는, 아직도 앞뒤 구분 못하고 종종 게임에 몰두할 때가 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등짝 세게 맞을 상황임에도 보리 작가는 가벼운 잔소리 정도로 넘어간다. (가끔 화를 참고 있구나 하는 게 감지될 때가 있는데, 그때는 본능적으로 게임 종료 버튼을 누르는 게 맞다.) 내가 진성 겜돌이임을 이미 알고 이해하자는 심산으로 결혼을 했겠지만 실제로 경험했을 때 체감하는 정도는 훨씬 심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게임라이프를 지키고 존중해 주고자 하는 보리작가의 자비로움이 내가 현재 결혼생활에 만족하는 두 번째 큰 이유이다.
이외에도 기타 등등 수없이 많은 이유가 있지만, 한정된 지면상 두 가지만 제시하게 되어 무척 아쉽다…
가끔 부산에 들르면 서른 중반에 접어든 내 친동생이 결혼하면 좋냐고, 꼭 해야 하는 거냐고 물어보곤 한다.
“안 해도 상관없지. 근데 느그 형수님 같은 여자 만나면 결혼 강추함.”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니 10년, 20년 뒤의 우리 결혼생활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무척 궁금해졌다. 개인적으로 지금과 기록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면 하지만, 역시 모를 일이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지금 쓴 글을 보고 피식 웃음을 지을 것 같긴 하다.
보리작가는 지금 밖에서 배달 온 족발을 세팅하고 있다. 다음 주부터 바빠질 회사일 생각하면 몹시 우울해지는 일요일 저녁이지만, 오늘은 다 잊고 맛있게 족발을 뜯으련다.
설령 내가 내일 회사에서 잘리더라도 나에겐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마누라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