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프리랜서 간접 경험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한발 더 다가가는 경험

by 보리 Bori

아빠는 20여 년쯤의 회사생활 동안 두 번의 특진과 최연소 팀장 등의 타이틀을 달고 누구나 임원의 길을 가는 줄 알았지만 과감하게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업했다. 주말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한참 일할 때는 내 연봉을 월급으로 벌기도 하셨다.

밥 먹듯한 야근과 주말 근무가 이어질 때면, 이렇게 개처럼 일할 거면 나도 아빠처럼 프리랜서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리고 회사 업무로 만나는 수많은 프리랜서들 중 커뮤니케이션조차 잘 안 되는 사람을 볼 때면 ‘저런 사람도 밥벌이를 하며 사는데,, 내가 못할까?’ 이런 건방진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프리랜서도 기술이 있어야 출발이 쉽지, 매번 사이드 프로젝트나 기웃거리며 기회를 엿볼 뿐이었다. 호시탐탐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 기회를 엿보던 나는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2년 내 책을 출판하자는 제안을 받는 것을 목표로 하며 회사 다니면서 글 쓰는 프리랜서로 무게중심을 옮겨가기를 바랐다. 그리고 예상보다 무척이나 빠르게 프리랜서를 간접 경험해보는 기회가 생겼다.


[brunch] 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도착하였습니다.


어느 날 스마트폰 메일에 달린 빨간 숫자를 없애려 클릭했는데 많은 구독 메일들 중에 익숙지 않은 제목의 메일이 들어와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뭔가 하고 봤더니 내가 썼던 글의 브랜드에서 작업을 같이 하고 싶다는 메일이었다. 갑자기 심장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말없이 공간에 녹여낸 의도를 이해하는 통찰력과 글솜씨에 놀랐다. 프로필을 통해 브랜드 마케터로 일한다는 것을 알았는데 브랜드의 이미지를 글로 표현하는 작업을 함께 하고 싶다. 꼭 글이 아니어도 좋을 것 같다. 어떤 형태로도 좋으니 친구와 논의해보고 연락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얼른 친구에게 메일을 공유하고, 퇴근하면서 남겨진 전화번호로 연락을 하기로 했다. 퇴근 때까지 회사에서 얼마나 설레던지… 너무 내 취향이라 생각했던 브랜드의 제안이라 더 그랬던 듯하다.


그날 저녁 30분의 통화.. 연락을 주신 배경과 본인 소개 후 질문이 이어졌다. 흡사 전화면접 같은 분위기? 아마도 채용을 염두하고 제안을 주시듯 했다. 일단은 프로젝트로 서로 함께 작업을 해보며 맞춰보는 시간을 우선적으로 가졌으면 좋겠다 말씀드리고 주말에 미팅을 하기로 했다. 친구와 함께 보자 하셨다.


보리작가의 첫 번째 미팅


미팅 전까지 또 설레는 마음으로 이틀을 보내며 나는 여러 가지 김칫국 시나리오를 써 내려갔다. 친구에게 빨리 우리 브랜드명을 정하고 명함도 만들어야 한다고 재촉하고, 정식 제안을 받은 것도 아닌데 이직도 고민했다. (나란 인간 참 ^^;;)

친구는 계속 제안 자체를 의심하여 미팅을 함께 참석하고 싶지 않지만, 위험할까 봐 따라가겠노라 했다.


토요일 너무나 좋았던 공간에 소비자가 아닌 관계자로 다시 입장하는 기분이 묘했다. 지난번 방문했을 때 ‘여기서 업무 관계자들과 미팅을 하겠구나’ 생각했던 곳에 차와 다과를 대접받으며 자리했다.


프로젝트의 배경, 함께하는 사람들, 지향하는 바,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것들 등을 먼저 소개받았다. 한 시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서로의 소개와 가능성이 열린 제안들이 오고 갔다. 꽤 긴 시간 많은 양의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막상 숫자나 팩트 기반의 정보가 부족해 일부분은 나의 추측을 더해 짐작해야 했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내가 먼저, 나에 대해 궁금해하는 부분을 팩트 위주로 전달했다. 소속이나 커리어 패스, 연봉까지도.. 하지만 상대 쪽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 오픈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채용에 대한 제안은 이 부분 때문에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단 시급한 홈페이지 내 텍스트 작업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두루뭉술한 대화로는 한계가 있을 듯하여, 정확한 업무에 대한 범위나 조건은 서류로 체크하기를 제안했다.

그리고 나의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포트폴리오가 충분치 않은 작가와의 업무 계약 시, 그들의 결과물을 예상하기 어려워 고민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그래서 일요일 하루 동안 홈페이지 소개글의 초안을 작업하여 샘플로 제공하겠노라 했다. 서류로 작업물을 전달하고 말이 아닌 글로 피드백이 어떻게 오는지도 참고하고 싶었다.


그렇게 주말 하루, 나의 첫 프리랜서 경험이 시작되었다.


홈페이지 카피라이팅


클라이언트가 바랐던 메시지와 표현방식에 대한 희망사항을 정리한다.

메시지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필수적인 것과 부가적인 것을 구분하여 글 양에 다른 범위를 계산해 개요를 짠다.

상업적인 어체로도 써보고, 자기 철학이 확고한 작가처럼도 써본다. 친절하게도 써보고 무심하게도 써본다. 길게도 써보고 짧게도 함축해본다.


집중하는 메시지에 따라, 그리고 표현방식에 따라 3개의 안을 작성했다.


글을 쓰는 내내 가장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 철학적이고 이상적인 개념을 함축하여 일상의 언어로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는 부분이었다. 어렴풋이 [화려하면서도 심플한] 혹은 [fancy 하고 powerful 하게] 같은 답 없는 답을 찾고 있는 건가 하는 순간도 있었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그래고 내 능력의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고민했다.


아침 8시부터 시작해 밤 10시까지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한 12시간의 노동 결과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하물며 브런치의 글을 쓸 때도 하루는 글감을 고민하고, 하루는 글을 쓰고, 또 다른 하루에 쓴 글을 새 기분으로 보며 수정하는데, 그저 하루에 한 공간에서 한 번 생각한 글로 글을 끝낸다는 것은 역시 무리였다. 내가 약속한 시간 내 결과물을 보내야 한다는 책임감에 날이 어두워질수록 압박도 심해졌다.


하지만 샘플이니 만큼 퀄리티보다 속도에 더 중점을 두고 아쉽지만 메일을 발송했다. 그렇게 아주 빡센 나의 황금 같은 주말이 지나갔다.

‘휴 이거… 만만치 않네… ‘


이제 칼자루는 넘어갔다.


공간사업기획을 하면서 소위 ‘업체’라는 단어로 불리는 회사나 프리랜서들과 협업이 많았다. 특히 나는 보편적인 것보다 독특하고 새로운 시도의 프로젝트들을 주로 진행해왔기에 독특한 경력의 프리랜서들과 일해 볼 기회가 많았다. 수많은 업체를 경험하면서 만족스러운 결과물은 그들의 뛰어난 능력과 별개로 케미에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고 이 케미는 규모와 상관없이 첫 미팅과 작업물로 충분히 판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반대로 을에서 갑을 바라보게 되었다. 나의 첫 케미는 과연 어떨 것인가



화요일에 회신을 받았다.

세 가지 안의 톤&매너가 모두 좋고 함께 남은 작업을 진행하자는 말과 함께 그동안 대화로 전달받았던 공간에 대한 정의, 브랜드의 기원, 방향성이 글로 정리되어 왔다. 그리고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게 쉽게 표현을 바란다고 적혀있었다.


전화통화를 포함하여 두 번에 거쳐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소개를 받았고, 충분히 고민한 결과물이 표현방식은 좋으나 메시지가 부족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브랜드의 취지와 소개를 세 번째 반복하여 받은 셈이었다.

충분한 설명과 충분한 고민이 담겼으므로, 완벽한 케미였다면 좀 더 구체적인 수정사항이 담긴 피드백이 돌아와야 했다.

‘흠… 이거 쉽지 않겠는데?'


그래도 어쨌건 작업은 진행하겠다 했으니 홈페이지 카피라이팅에 대한 앞으로 진행방향을 고민할 차례였다. 일주일 중 이틀뿐인 시간을 알차게 써야 한다. 지난주의 작업시간을 기준으로 과업과 예상 소요시간 등을 적어보았다.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고, 지루한 수정도 아주 여러 번 오고 가게 될 것 같았다.


과업표를 바탕으로 제안서를 작성했다. 나라면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까? 싶은 생각이 스쳤다. 친구에게 보여주니 씩 웃었다. 하지만, 본업이 있는 나의 한정된 시간을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온전히 쏟으려면 이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했다.

제안서를 발송했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주고받은 메일 중에 가장 기대가 되고, 설레는 시간이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회신이 기다려지지 않았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기력한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그 주 주말,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한동안 끊었던 TV 앞에서의 목적 없는 리모컨 채널 돌리기가 시작되었다. 글도 쓰기 싫고 책도 읽기 싫었다.

멍하니 시간을 죽이며 늘어져 있다가 친구에게 말 걸었다.


“친구야. 내가 지난 일요일 하루 프리랜서를 간접 경험해보니, 이 일이 쉬운 게 아닌 거 같아. 우리 회사 그만두고 프리랜서 하면서 밥 벌어먹고 살 수 있을까? 스트레스도 너무 많이 받을 것 같아. “

“사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 우리 그냥 회사를 열심히 다녀야 하는 거야? 그래서 이렇게 우울한가?”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아무리 나와 취향이 맞는 일이어도 갑이 원하는 대로 맞춰줘야 하는 을의 일은 회사건 프리랜서건 다 똑같은 거구나. 결국 결론은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 해야 하는 걸까, 취미를 즐길 시간이 없음을 슬퍼하면서? 희망이 없어진 우울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프리랜서의 간접 경험기는 우리를 회사에 더 충실하도록 했고 나의 희망사항 리스트에서 사이드 프로젝트와 프리랜서라는 두 가지를 동시에 삭제하게 했다.


며칠 후 제안에 대한 정중한 거절 의사를 받았고 예상대로 그리 아쉽지는 않았다. 이번 주말부터는 다시 책 읽고 우리의 추억을 기록으로 남겨야지 생각했다. 나는 그저 나의 경험과 이야기를 남기는 글을 쓰는 과정이 좋고, 그 과정 속에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좋다. 그리고 그 소중했던 프리랜서의 간접 경험도 나를 알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어 감사하다.


지금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작업하려던 업무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진행해야 했던 일이라서 그다지 당기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그래서 정중하게 거절받을 제안서를 작성했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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