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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기획자 출신 마케터의 성수라이프 - 사적인 카페2

오르에르 라운지 + 포인트오브뷰

by 보리 Bori

이직을 결심했을 당시 나는 꽤나 자신감에 차있었다. 공간기획과 운영을 담당한 독립호텔의 마케팅의 전략을 제안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일을 내가 해야 하는 일로 만들었고 재밌게 일했다.

그렇게 1년 여, 더 전문적으로 마케팅을 수행해보고자 이직을 결심했고, 마음먹은 대로 원하는 회사에 원하는 포지션으로 이직에 성공했다.

계획한 대로 착착 진행되던 이 과정의 시간을 통해 뭐든 하면 되는구나~ 싶었고, 새 회사에서도 아주 잘 적응하고 금방 적응해 인정받는 직원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라는 명분 아래 진행된 희망퇴직을 지켜보면서(나는 입사 3개월이 채 안된 시점이라 대상이 아니었다) 난 더 이상 나와 회사를 동일시하지 않게 되었고, 언제든 끊길 수 있는 밥줄 대신 나의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중간에 잠시 마음이 떠버렸다.

복잡한 환경이 정리되면서 본격적으로 일하며 달려 나가야 할 때, 내 능력의 한계에 발목 잡혔고, 직원들과 일을 대하는 가치관의 차이도 경험했다.


이렇게 일과 회사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하고, 사람에게도 의지할 수 없던 시간 점심시간마다 혼자 노트북을 들고 자주 찾아갔던 곳이 있다.

나의 성수라이프 사적인 카페 두 번째 공간은 바로 오르에르다.


오르에르

2014년 성수를 대표하던 카페 자그마치를 만든 스튜디오에서 오픈한 두 번째 공간 or.er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영어 접미사 -or와 -er 이 합쳐진 이 곳은 서로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두루 모일 수 있는 공간을 표방한다.




입구가 있는 도로변의 전면부와 집 앞마당 같은 후면부의 느낌이 대조적이다. 이는 전면부의 상가건물과 후면부의 가정집을 터서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보기 드물게 사람이 없었던 날 찍을 수 있었던 1층

중간에 두 개 층의 계단이 있는데 앞에서 언급한 두 개 건물이 연결되는 지점이다.

상가였을 건물 전면부의 바닥은 90년대 관공서나 병원 등에서 볼 수 있었던 추억의 테라조 (일명 도끼다시)이고, 가정집이었을 뒷부분은 나무 바닥이다. 최대한 기존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려고 노력한 흔적이 아닐는지...




study, class &event라고 적힌 2층은 오르에르 라운지이고 고급 문구점 느낌의 포인트오브뷰가 함께 있다. 3층은 오르에르 아카이브로 갤러리이자 편집샵 같은 구성이었는데. 어렸을 적 할머니 집의 느낌과 세련되게 정돈된 고풍스러운 살롱 같은 느낌으로 기억한다.




다시 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곳을 주로 찾았던 때의 나는 사람들이 웃으며 수다 떠는 시끄러운 곳도 싫었고, 햇살이 눈부신 창가도 싫었다. 조각 케이크 하나를 사들고 2층 라운지로 올라가 조용한 구석에 자리하고 노트북에 ‘보리작가 글감’ page를 띄워놓는다.

묵직한 조명과 쫀득한 음악소리에 마음이 진정되는 듯했다. 달달한 케이크를 먹으며 심호흡을 하고 글을 썼다. 그리고 매번 새삼스런 이런 모습이 웃기다는 생각도 했다.

괴롭고 힘들 때마다 글로 토해내면서 견딜 수 있었다는 은유 작가님의 모습을 따라 하고 있는 (=인고의 시간을 글로 승화하는 작가라도 된 마냥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습기도 하면서 불쌍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대견하기도하고...





그렇게 잠시 당 충전을 마치고 1시가 되면, 창틀이 액자가 된 사이니지에 불이 들어오고 포인트오브뷰의 문이 열린다. 동화책에 나오는 어린 주인공이 애지중지하는 물건들을 숨겨놓은 다락방의 문을 열듯 입장한다.






꼭 필요한 게 아니면 좀처럼 무엇인가를 사들이지 않으려 매우 애쓰는 편이지만, 이 즈음 이곳에서 충동적인 소비를 제법 했더랬다. 검은색 수첩, 검은 종이에 쓸 흰색 마커와 은색 펜 등등 왜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소비로 푸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서두에 언급했던 나의 힘들었던 시간을 브런치에서 새벽을 지나는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었다. 어느 정도 그 시간을 지나왔다고 생각되는 요즘 그 시간이 너무 감사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많이 배우거나 성장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을 지내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2020년의 오르에르와 2017년의 오르에르

날씨가 좋았던 2020년의 어느 날 문득 마당으로 나가보았는데, 커먼그라운드 관련 미팅을 하러 이곳에 왔다가 매거진 B의 팝업스토어에서 신나게 책을 구경했던 예전의 내가 떠올랐다. 핸드폰에 사진이 남아있어 찾아보니 2017년이었다.


솔직히 말하기 너무 부끄럽지만 그때의 나는 '능력 있으면 희망퇴직을 걱정할 필요가 있나?' '경력으로 입사했으면 한 달 정도 지나면 퍼포먼스를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스트레스를 먹는 것이나 소비로 푸는 사람들은 생각이 있는 건가?' 등등 아주 건방지고 또 무서운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내가 바라보기에 지금의 나는 과연 예전보다 더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 되었나?

글쎄..

그래도 다음 질문에는 자신 있게 그렇다 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좀 더 넓은 이해심과 따뜻한 시선으로 인간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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