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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사진집 '오늘을 살다' 비하인드 스토리

NOT JUST PHOTOGRACHERS. vol.1

by 보리 Bori

작년 9월 겨우살이를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과정을 그림으로 남겨줄 작가님을 섭외하기 위해 퍼블리셔스 테이블에 방문했었다. 가끔 독립서점에는 들렀었지만, 목적을 가지고 독립출판물들을 한 번에 많이, 그리고 꼼꼼하게 본 것은 처음이었다. 한 시간쯤 지나서 본분을 잠시 잃고 작품 감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사진집 앞에서는 여지없이 멈춰 서서 책장을 넘기면서, 하나의 주제로 사진과 글을 책으로 엮어낸 분들을 너무 부러워하고 있었다.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어려 보였는데, 나는 그동안 뭐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진 찍기 위해 여행도 다녔으면서... 가끔 포토북을 만들었지만 대부분 인물 사진 중심이었고, 마음에 드는 사진은 현상해서 벽에 몇 장 붙여 놓는 정도?

사진을 찍으면서 느꼈던 감정이나 생각을 글로 함께 책으로 만들고 싶었다.


어쩌면 이때부터 글을 써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봐도 사진만 모아놓은 책들보다는 짧더라도 자신만의 생각과 가치관이 담긴 글이 함께 있을 때 사진을 다르게 보였다.

그 어느 때보다 사진집을 내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솟구쳤고, 글을 잘 쓸 수 있도록 글쓰기를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직 후 생업이 글과 더 가까워지면서 글쓰기와 관련한 책과도 가까워지고 글쓰기 수업에도 참여하며 그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다 보니, 나를 글로 드러내는 일에 빠져서 잠시 사진집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잊고 지내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정말이지 딱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던 어느 날, 내일 아침 일어나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던 어느 밤, 인스타그램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는 피드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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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님이 온라인 마케팅 전문가이자 독립출판 작가라는 것도, 추후 개인 출판을 할 경우 도움이 될 만한 입고 및 마케팅 팁을 알려주신다는 것도, 정원이 3~5명이라는 것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바로 결재를 하고, 순간 당장 내일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순간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게 이런 걸까?


또 그러다 문득 정확히 어느 포인트가 날 이렇게 만든 건지 궁금하다.

오랜만에 뭔가 목적을 가진 사진을 찍는다는 것 때문이었을까?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사진작가로서 독립출판을 한다는 성취감? 이번에 독립출판을 해보고 다음에는 나 혼자 사진집을 내보겠다는 꿈을 꿀 수 있어서?

뭐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니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내 삶을 살아가다 보면, 곧 그 해답을 찾을 수 있겠지..


어쨌건 그날 나는 우울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다며 이른 저녁부터 불 끄고 이불을 덮고 까맣게 누워있다가 스마트폰을 통한 세상에서 한줄기 빛을 만난 느낌이었다. 최소 3명이 되어야 워크숍이 오픈되는데, 내가 두 번째로 신청하고 매일매일 잠자기 전 신청자 수가 3명이 되었는지 확인했었다.


수업 첫날

"낫저스트 포토그래퍼만 입장 가능합니다."라는 종이가 붙은 문을 열고 입장했다.

어색한 첫날 우리는 각자의 관심사와 자주 찍는 사진을 공유하며 인디진의 주제와 사진의 톤을 결정했고, 나는 우리가 정한 사진의 테마가 마음에 들었다.


도시의 차가운 회색빛 콘크리트 느낌


FBE67DE4-A001-466A-A95B-5D8128B0B782_1_105_c.jpeg 어색한 워크숍 첫날이지만 주제를 정하는데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모두가 찍고 싶은 사진이 해질녘, 저녁, 밤과 가까워 저녁시간에 촬영을 진행하기로 했다. 주말 동안 본인이 성수동에서 찍고 싶은 샘플 사진을 찾아 내가 찍을 사진의 방향을 정하고, 나는 옵션으로 주어진 글도 써보기로 했다.



그렇게 워크숍 두 번째 모임, 촬영 날이다.

사진은 정말 수도 없이 많이 찍었지만, 제목을 생각하고 촬영을 시작하자니 약간의 압박감과 함께 내가 원하는 사진을 과연 얻어 낼 수 있을지 긴장이 되었다. 사진을 찍으며 처음 느끼는 기분이었다.

일단 노을을 배경으로 철거촌을 찍으러 첫 번째 목적지로 부지런히 움직였다. 가는 길에 교각과 철교로 지하철이 지나면 놓칠세라 열심히 셔터를 누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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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뷰로 미리 찾아둔 덕분에 사장님이 알려주신 철거촌을 찾을 수 있었다. 낮에 가도 무섭다는 사장님의 말에 사장님을 소녀감성이라 생각했었는데, 도착하자마자 혼자 온 것을 후회했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골목에서 안쪽으로 길하나 더 들어왔을 뿐인데, 처음 느껴보는 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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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을 배경으로 찍기 철거촌의 주변을 크게 돌며 골목을 헤매다가 누아르 영화에서 나올법한 풍경을 드디어 만났다. 무서우면서 기쁘면서 멋진 작품사진을 찍어야겠다는 희망과 압박이 섞인 묘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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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어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부스러진 콘크리트 건물과 포클레인을 이리저리 구도를 잡아가며 열심히 촬영했다. 그러나 어디서 파리라도 날아들면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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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시간의 횡단보도를 촬영하기 위해 다시 철거촌을 빠져나와 이동한다. 성수스러운 모습이 나오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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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파 샌드위치를 하나 사 먹고.. 마지막 사진을 촬영하러 나섰다. 이날 쪽빛의 하늘색이 너무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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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성수동에서 어떤 사진을 찍을지 고민하던 즈음, 너무나 우연하게도 디에디트의 까탈로그에서 성수동 교각 아래 별자리 사진을 발견했다. 이 별자리 사진을 보며 들었던 생각이 있어 글로 남겨보고자 이곳의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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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의 목적을 달성하고 집에 돌아와 늦은 시간까지 a컷과 b컷을 분류하고 글도 써서 선생님께 메일도 발송했다. 이렇게 2차시 워크숍 과제까지 완료!


우리가 다시 모이는 세 번째 수업 날

서로의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분명 스마트폰으로 찍고 보정하는 초보자도 참여할 수 있는 워크숍이었는데 다들 감각이 남달랐다. 취향도 비슷하여 참 신기하게도 하나의 느낌으로 인디진이 엮이게 될 것 같았다.

각자가 선정한 사진과 우리가 추천한 사진을 바탕으로 3장씩 고르고 모바일 라이트룸으로 보정하는 법을 배웠다. 주말 동안 보정한 사진과 함께 게재할 글을 완성했다.


여기까지 오고 보니..

한 달 동안 빠른 호흡으로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세 장의 사진과 몇 줄의 글을 만들어내는 것뿐이었는데도 예상한 것 이상의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했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사진집 독립출판을 염두에 두고 매주 수업을 따라갔는데, 역시나 세장의 사진과 글을 30개 이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 만만치가 않겠구나 싶었다. 역시 엉덩이의 힘이 제일 중요하다.

또한 주제와 목차를 정해놓고서도 두세 편 글을 써가는 과정에서 자꾸 생각도 바뀌고, 내가 처음 전하고자 마음먹은 메시지와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도 부족해 보였다.


그제야 처음 퍼블리셔스 테이블에서 마주한 수많은 사진작가님들이 달리 보였다.

글을 시작할 때 언급한 퍼블리셔스 테이블에서 그날의 감정을 아주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독립출판을 한 작가님들이 부러웠다기보다는 시기/질투에 가까웠다. '별것도 아닌데 이렇게 책으로 묶어서 출판했기에 그냥 있어 보이는 거 아닌가'라는 건방진 생각과 '마음만 먹으면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만만함이 있었다.

이게 부끄럽게도 진짜 내 머릿속의 생각이었다.

나란 인간 참...



우리의 사진집 '오늘을 살다'를 손에 쥐는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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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조금 편해진 우리는 각자가 여기저기서 사온 빵과 떡과 샌드위치와 멜론 슬러쉬를 들고 한 달 동안의 소회를 공유했다. 마지막 모임에 어울릴법한 대화를 예상했지만, 이날 나는 또 의외의 깨달음을 얻었다.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 마음대로 표현해보고자 독립출판이라는 것을 시작했는데, 이 길의 끝에도 결국은 사람들이 관심 있어하는 소재, 사람들의 눈을 끌만한 제목을 고민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막연하게 나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 있지 않을까 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시작할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아서 하겠다며 맞서 싸워보기도 하고 도망가기도 하다가 막다른 길에 도착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지난번 간접 프리랜서의 경험을 했었던 때의 실망스러움과는 분명 달랐다. 도전하고 성취해 보고 싶다!


많은 사람에게 쓸모 있는 책, 동시에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책을 출판해 보기로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뭐 죽기 전까지 계속 이런 원대한 꿈을 가지며 열심히 살면 그게 내 인생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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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JUST PHOTOGRAPHERS. 오늘을 살다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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