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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 Bori Nov 13. 2021

밑미홈 기획 초기단계

재미도 자신도 있었던 공간 기획, 베이비 스타트업이라서 달랐던 점

첫 출근 전, 지금까지 기획된 밑미홈 파악하기


지원서를 쓸 때까지만 해도 몰랐던 밑미홈의 존재. 채용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밑미팀의 설명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서울숲 근처에 밑미의 아이덴티티를 담은 집처럼 편안한 공간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입사를 하기 전까지 인터뷰 중 전해 들었던 내용과 밑미홈이라는 공간을 오픈하게 되는 스토리가 담긴 영상을 통해 이 공간을 기획한 목적을 이해하고 역할을 상상해 보며 시간을 보냈다. 


마음에 되뇌게 되는 밑미홈의 지향점은 심리적 안전기지

따뜻한 음식이 있는 곳, 문지방이 낮은 곳 등등 심리적 안전기지의 특징을 공간에 반영하려 한다는 이야기에 그 내용을 구글링해보았다.


<제3의 장소>라는 책을 쓴 레이 올든버그가 소개한 개념이었다. 제1의 공간인 가정과 제2의 공간인 회사 그 중간 어디쯤에 위치할 느슨한 커뮤니티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 이러한 공간이 가져야 하는 특징으로 다음 다섯 가지 특징을 소개한다. 


 1. 누구나 원하는 때 드나들 수 있는 문지방이 낮은 곳

 2. 격식과 서열이 없이 모두에게 열린 곳

 3.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는 수수하고 소박한 곳

 4. 따뜻한 음식으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곳

 5. 대화가 있는 곳


내가 합류하기 전 밑미홈을 기획한 팀의 의도를 이해하고, 구현될 공간의 모습을 상상하며 추정해보고 기대와 우려 등 나의 생각도 정리해 떠오르는 대로 메모했다. 

3월 초의 메모 : 내가 지향하는 밑미홈



밑미홈 첫인상


첫 출근 후 일주일쯤 되었을 때, 직원 사진 촬영을 위해 공사가 마무리된 밑미홈을 처음 만났다. 

한 달 전쯤 방문했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상상하던 모습보다 소박했다. '소박'이라는 단어를 조금 구체적이고 그때의 느낌대로 솔직히 표현해 보자면... 

칠이 벗겨진 갈색 바닥과 문, 그냥 화장실, 초록 창틀, 반짝거리는 금빛의 문고리 등은 그동안 내가 새로 오픈하던 공간에서 주로 보아온 최신식의 감각적인 세련된 공간과는 차이가 있었다. 문이 열리지 않는 곳도 있었고 컨디션이 열악해 보이는 곳들, 추가 공사가 필요한 곳들도 벌써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이미 제작된 장이나 가구 등의 모습이 기획 시의 의도대로 잘 활용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공간은 따뜻하고 편안해서 문지방이 낮아야 한다고 되뇌면서도, 너무 멋진 공간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사람들의 기대치가 많이 높을 텐데 괜찮을까 생각하며 나의 경험에 갇혀 많은 걱정을 했었더랬다.  

일단 부정적인 마음은 깊숙이 넣어두고, 지금 와서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아쉬워하기보다 잘 활용하자 스스로를 설득했다. 예쁜 소품들을 채워 넣고 초록한 생명들도 불어넣어 주면 괜찮아질 거라 최면을 걸었다. 


조금은 심란해진 마음을 추스르며 시간이 될 때마다 그동안 작성된 밑미홈의 콘셉트와 콘텐츠, 계획에 대한 자료들을 읽으며 파악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간을 준비하기에 아주 많이 부족한 찐 스타트업의 열악한 여건 (예산이라던지 인력이라던지)을 알게 되었고, 며칠 전 본 밑미홈이 이러한 여건에서 그 정도의 모습을 갖춘 건 어쩌면 기적에 가깝구나 생각했다. 


대기업에서 일하며 0이 8개~10개쯤 붙은 규모의 예산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익숙했으니 어쩌면 이런 차이가 너무 당연한 건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막연하게 '예산이 적겠지, 쉽지 않겠지'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도 공간을 오픈할 정도면 어느 정도는 투자금이 있겠지' 기대했었던 듯하다. 

내 머릿속에 자리 잡은 밑미라는 브랜드는 이미 최고 레벨이었기에, 내가 상상한 공간도 내 경험 속에서 최고 수준으로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구현 가능한 여건은 그렇지 않았다. 어쩌면 바로 이 부분이 충분히 고려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랐던, 내가 선택한 밑미에 대한 나의 이상과 현실의 갭이 아니었을까





각자가 그리는 상상 속의 밑미홈 씽크 맞추기

 

밑미홈의 기획안들을 살펴보고, 내 나름으로 그 공간을 파악하여 밑미홈에 대해 논의할 때마다  우려되는 점들이 많이 떠올랐다. (밑미팀 합류 초반 나의 프라임 세포는 설렘과 걱정이었다.)

온라인 서비스도 아직 보강해야 할게 많은데 공간까지 운영하기에 버겁지 않을까?


그동안 오프라인 공간 없이 여기저기 공간을 빌려 카운슬링 프로그램을 진행해오면서 공간에 대한 필요성을 몸으로 느낀 기존 멤버들에게는 공간의 목적과 역할이 분명했다. 밑미홈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방향성도 합의된 상태였고. 

나는 목적에 대한 공감 없이 그들에게 이야기를 통해 나름대로 밑미홈을 상상하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우리가 그리고 있는 공간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자료가 부족한 부분, 궁금한 점들, 나의 의견 등을 팀과 함께 짬짬이 정리하면서 이야기하고 논의했다.

이미 밑미의 서비스를 5개월 이상 경험하면서 잘 알고 있다 생각했지만 물리적으로 필요한 시간이 있었다. 

내가 상상하던 밑미홈과 팀이 기획한 밑미홈의 갭을 줄여나가는 시간, 나와 기존 멤버들의 밑미홈에 대한 생각의 씽크를 맞춰나가는 시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건 밑미홈 프로젝트에만 적용되는 이슈가 아니었다. 아무리 잘 알고 있는 회사이고, 나와 잘 맞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해도 우리는 서로 알아가고 맞춰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밑미홈 론칭 기획안 작성


논의를 통해 어느 정도 합의된 큰 그림이 그려졌다 확신이 들었을 때쯤 방향성을 잡아보기 위해 정리를 시작한다. 기획의 시작은 목적과 방향성 설정이기에, 내가 파악하고 그리고 있는 밑미홈이 서로가 머리속에 있는 그것과 같은 모습이 같은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생각을 시각화하기 위해 주로 내가 사용하는 방법은 기획안을 작성하는 거다.  


‘진짜 나’를 찾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리추얼, 심리 치유 프로그램과 제품, 그리고 나다운 사람들의 건강한 커뮤니티를 만들고자 하는 밑미의 공간을 만든다는 기획의도 아래 밑미홈을 준비하는 우리의 목적, 그리고 그 목적에 따른 공간별 역할 등을 가장 먼저 정리한다. 

그리고 공간의 컨셉과 분위기, 서비스 톤앤매너 등을 작성한다. 모두가 다 이렇게 생각하는지 구체적인 수준까지 합의하기 위해서.


이 기획안은 나중에 밑미홈에 합류해 서비스를 제공할 밑미팀원들이 보아야 할 매뉴얼의 초안이기도 하기에, 누가 보더라도 이해하고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쉽고 구체적으로 디벨롭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꼼꼼하게 정리했다. 그동안 공간기획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공간을 실제로 만들어내기 위한 실행 전에 항상 그래 왔듯이.


이 기획안을 작성하면서 또! 두통을 유발하는 무거운 걱정거리가 있었다. 사실상 층별 4개의 공간을 동시에 잘 오픈하고 운영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기능적으로 보자면 2층은 음식점, 3층은 쇼룸과 리테일샵과 심리상담실, 4층은 요가 스튜디오, 5층은 카페(는 아니지만 편의상)로 각기 다른 기능을 수행하는 4개의 공간을 준비해야 한다. 운영은 둘째 치더라도 과연 나 혼자 이걸 다 오픈할 수 있을까 막막했다. 


팀 미팅을 통해 이 기획안을 바탕으로 공유하며 의견을 나누는 날, 다행히도 굵직한 방향성에 대해 모두 동의했다. 그리고 나를 괴롭히던 두통의 원인도 해결되었다. 각층은 모두 층별 담당자가 메인으로 진행하며 나는 전체적으로 타임라인을 관리하며 밑미홈 전체의 론칭과 운영을 위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결정.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게 층별 기획안을 디테일하게 작성하려던 나는 바로 타임라인 설정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밑미홈 론칭 타임라인 (Time Line)


일정관리를 위해 공사, 설비, 신고, 계약, 채용, 구매, 프로그램 기획, 운영시스템 등등 업무별/공간별로 구별하여 바(BAR) 형태로 표기하는 간트 차트를 활용한다. 


몇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해봤지만, 온전히 내 손에 오픈 일자가 달린 공간 론칭은 나에게도 처음이었다. 공사와 설비 등의 완료 예상일자, 그리고 신고/허가 등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 업무들을 기준으로 오픈 가능한 일정을 산정했다. 그리고 공식 오픈 전, 오픈하우스를 통해 그동안 사랑과 의견을 적극적으로 보내주신 밑미의 찐팬을 초대하기로 했다. 


타임라인을 관리하며 오픈 일정이 일주일 밀리는 일도 있었고, 많은 작업들을 서류로 정리하지 못하고 닥치는 대로 해치우면서 이렇게 일해도 되나 하는 생각에 찝찝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밑미홈 론칭 후 프로젝트를 회고하며 깨달은 나의 L&L(Lesson & Learned). 

'기획안, 타임라인 등 문서를 구체적으로 작성하는데 굳이 많은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구나.' 

짧은 시간 내에도 비즈니스의 방향이 얼마든지 크게 뒤바뀔 수 있는 스타트업 (그중에서도 1년도 채 안된 찐 스타트업)에서는 서류로 정리해서 공유해야 할 만큼 인원이 많지도 않고, 무언가를 정리하기보다 정리할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이 우선이다. 

어떤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지, 무엇이 우리에게 맞는지 등을 파악하기 위해 빠르게 다양한 시도를 더 많이 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 이제는 서류로 정리하는 작업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차라리 그 시간에 실행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걸 이렇게 배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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