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나를 돌아보는 글쓰기 - 7월 5주 업무일지
생각도 많고 마음이 복잡했던 7월의 마지막 날 저녁
나만의 월말결산 방법은 뭐 없을까 고민하다가, 친구와 나는 감정카드를 놓고 7월의 감정을 결산해 보기로 했다.
일기장을 들고 와서 7월 초부터 감정일기를 펼쳐보며 감정카드에서 그때의 감정을 카드로 한 장 한 장 꺼내어봤다. 이렇게 다채로운 감정이 존재할 수 있는가 싶을 정도로 많은 감정카드가 책상 위에 펼쳐졌다.
쭉 나열한 나의 7월 감정카드를 보더니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조울증 환자 수준인데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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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산뜻한 오렌지로 시작한 7월이었다. 내가 해보고 싶다! 손들어서 시작한 커리어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설렘과 기대감에 가득 찬 모습이 일기장에서 통통거린다. 그러다 며칠 바빠서인지 듬성듬성 일기에 이빨이 빠지더니 자책의 감정으로 일기장이 퍼렇게 멍들어가고 있었다.
7월 초는 새로 오픈하려는 두 개의 프로그램의 커리큘럼과 주차별 질문, 그리고 노션 템플릿 구성 등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가고,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상품페이지를 작성하던 시기였다.
먼저 이직편 프로그램 소개 페이지를 작성하고 피드백을 받아 수정하면서 나에게 부족한 부분과 다음번에 개선할 포인트들이 명확해서 성장하고 있다는 만족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문제는 독립편을 작성하면서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일잼편도, 이직편도, 독립편도 모두 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프로그램이 맞춰져 있고 그 메시지가 우리 브랜드만의 차별화 포인트라고 생각하다 보니 모든 프로그램의 소개 내용이 다 비슷비슷해져 버렸다. 기존의 프로그램과 새로 준비하는 프로그램이 서로 부딪히는 부분도 발견되면서, 다시 세 개의 프로그램의 구조를 정리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요했다.
마음은 조급한데 새로 오픈하는 두 프로그램의 차별화 요소를 글로 표현해 내지 못하면서 '뾰족한 언어'가 부족하다는 피드백을 반복해서 받게 된다.
커리어 프로그램에서만 발견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새로운 이벤트를 기획하면서도, 밑미레터를 작성하면서도 계속 '어렵다',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표현되면 좋겠다', '뾰족하지 않다'는 동일한 문제를 마주하니 막막해지면서 자책의 판도라 상자가 열려버렸다.
나는 마케팅에 맞지 않다고 판단했던 과거까지 소환되었다. 마케팅에 소질이 없었던 게 아니라 이건 무슨 일을 하든 필수요소인데 내가 회피한 걸까? 하는 생각까지 몰려오면서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미움의 골이 깊어졌다.
내가 실망스러운 건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래도 정해진 날짜에 프로그램은 오픈해야 하니 일단 덮어두고 계속 보완해서 프로그램을 오픈했다. 완벽하게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처음'이었다는 관용을 스스로에게 베풀어주기로 했고, 나름 오픈하는 날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아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고치려 끝까지 최선을 다한 모습에 박수를 보내주기로 했다.
7월 셋째 주 나는 두려움의 방 안에 갇혀버렸다.
시퍼렇게 멍들었던 묵은 감정을 해결하지 못하고 덮어둔 게 문제였다. 새로 시작할 프로젝트, 해야 할 일들이 몰려오는데 용기가 나질 않고, 걱정되고, 주저하게 되고, 하기 싫고, 무기력해졌다. 두려움의 모든 감정들이 거의 다 쏟아져 나왔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 해야 할 많은 일들이 너무나도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한동안 희망으로 가득 찼던 일기장에 부정의 기운과 감정을 쏟아내던 어느 늦은 밤, 야근에 지친 친구가 "우리 시골에 가서 살까?" 하는 멘트를 장난스럽게 던졌을 때, 흔들리는 내 마음을 깨닫고는 너무 놀랐다. 마음을 다잡아 보려 무진장 애를 썼지만 6개월 전 갭이어를 결심하던 때의 고민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자 두려움은 공포로 변해갔다.
월요일에 출근하는 길이 행복하지 않다는 걸 발견했을 때, 안 되겠다는 생각에 SOS 신호를 보냈다.
"지금 너무 힘들어요."
한마디 말을 뱉어놓는 것으로도 일단 마음이 가벼워졌다. 공감과 해결방안 두 가지를 모두 받았기에 믿고 의지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을까?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이 나의 부족함을 절대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실수해도 되고, 약점을 드러내도 된다고 그렇게 많이 반복해서 들었는데, 절대 내 약점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나 보다.
진솔한 대화로 이제 터닝포인트를 맞았다고 생각했는데, 두려움의 바닥 다지기가 쉽지 않았던지 이 대화는 이틀 후 한번 더 반복되었다.
이번 주말 하반기에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보고 있는 걸 보면,
이렇게 다시 상큼한 오렌지의 기대로 한 달을 마무리할 수 있는 걸 보면,
힘들었던 시간의 솔직한 마음을 글로 오픈할 수 있는 걸 보면,
어느 정도 두려움에서 벗어난 것이 맞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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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월말결산의 글을 작성하는 중에 5년 전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내가 스타트업을 가고 싶다고 친한 선배에게 이야기했었는데, 그가 나에게 했던 말
"너는 일을 딱. 딱. 딱. 해야 하는 사람이라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스타트업에서 일하다 보면, 분명히 알을 깨야하는 순간이 올 거야~ 그 순간이 정말 미치게 힘들 텐데, 그걸 한번 깨고 나면 너는 제대로 점프업할꺼야!"
그때는 이 말이 단순히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는 조직에서 일하기 힘들다는 뜻인 줄 알았는데, 포인트는 나는 일을 딱. 딱. 딱. 하는 사람이라는 것에 있었다. 그리고 왠지 지금 이 순간이 열심히 알을 쪼고 있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 여름... 열심히 무르익어 가는 중이다.
(일기장처럼 적고 있는 이 글의 정체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