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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내 인생의 아티스트가 되어보겠다

일하는 나를 돌아보는 글쓰기 - 7월 2주 업무일지

by 보리 Bori

“보리 day off 잘 보내세요!”

불편했던 마음이 입가에 촤르르 퍼지는 미소처럼 사르르 녹아내렸다.

‘휴가 내지 말고 그냥 재택 할까?’ 다들 바쁜데 나 혼자 쉬려니 마음이 불편해서 고민하던 순간이었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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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서 쉬었던 날 말고, 나를 위해 휴가를 낸 건 이직하고 처음이었다.

요시고 사진전이 너무 보고 싶었고, 2년 전까지 매년 도쿄 골목길에서 보내던 여름휴가처럼 뙤약볕 아래 습습한 공기를 마시며 서촌의 골목길을 혼자 배회하고 싶었다. 딱 하루의 꿀 같은 휴가가 그리웠다.

너무 바쁘지만, 휴가를 냈다. 그리고 상쾌하게 휴가를 맞고 싶었던 그날 새벽, 문득 해야 하는데 놓치고 있던 일이 떠올라 6시부터 일어나 일을 시작했다. 빨리 끝내 놓고 출발하려 했지만 역시나 계획한 만큼 해내지 못했다.

휴가를 취소하고 그냥 재택을 할까 하다가.. 그렇게 일하고 나면 ‘나는 왜 이렇게 까지 일해야 하나’ 하는 회의가 오고 일에 대한 만족도가 확 떨어질 것 같았다.

쉬자! 모니터를 끄고,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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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불편하던 차에 역시나 일 때문에 톡이 왔고, ‘아씨 그냥 일할걸 그랬나’ 싶은 생각을 하던 그때

“보리 day off 잘 보내세요!”

그 문자가 얼마나 고맙던지…

출근하는 사람들이 잔뜩 끼인 지하철에서 그제야 한강 너머로 깨끗하게 탁 트인 남산타워와 몽글거리는 구름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경복궁역에 내렸다.


너도나도 1~2시간은 기본으로 대기하는 도떼기시장 같은 핫한 전시는 되려 피해온 나이지만서도, 이상하게 이번 전시는 너무너무 가고 싶었다. 18년 여름 이후 가지 않던 도쿄가 자주 떠오르던 요즘이었는데, 서촌 투어와 요시고 전시면 마음이 헬륨가스를 품은 풍선처럼 상코롬하게 두둥실 떠오를 것만 같았다. 그리고 가끔 들락거리던 통의동의 옛 추억이 그립기도 했고…


요시고의 사진과 함께한 3시간 - 새로 시작한 리추얼의 효과


요즘 저녁 밤 잠들기 전에 나는 왜 일하는가, 내 꼴값은 무엇인가(=나는 누구인가) 하는 추상적인 질문에 매일 답하고 있다. 나의 히스토리를 기록으로 남기다 보면 시간이 힌트를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집-회사만 반복하던 일상에 쓸거리가 점점 줄어들던 차였는데 오늘은 뭔가 글감이 생기겠군...'



나도 사진 찍으러 돌아다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이런 사진집을 내보고 싶다 생각했었는데,
이 사진 속 창문 너머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편집하고 싶다,
이런 구성으로 변해가는 한 사람의 시간을 한 장에 담아보고 싶다,
나 왜 지금 설레지?
오늘처럼 설레었던 순간이 또 언제였지?
도전하고 싶다는 설렘과 용기를 전시를 보면서 얻는 건가?
이런 팔딱거리는 생각을 엮어보고 싶다.


여행은 생경한 곳으로 나를 던져 스스로를 발견하기 좋은 행위라 했다.

내가 좋아했던 것,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일들, 그리고 지금 또 하고 싶은 게 마구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고 오늘 저녁 질문에 답할 소재를 발견해 잊을까 봐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여댔다.

작품을 보다가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한참을 구석에 서서 메모장에 썼다. 그렇게 3시간을 보내고 집에 와서 내가 써놓은 메모장의 글들을 정리하다가 마음먹게 되었다. 지금 바로 독립출판을 준비해야겠다. 지금이 그 때다.


인트로 밖에 없으면 인트로만 쓰면 되지


한 달 전쯤엔가 가장 가까이서 자극을 주는 동료이자 친구가 마음에 품고만 있는 독립출판을 한번 해보라며 11월에 열릴 언리미티드 에디션 링크를 보내왔다. 잠시지만 진지하게 고민했는데, 아직은 콘텐츠가 부족하다 생각했었다. 지금의 내 상태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intro 정도만 완성된 상태라 책으로 엮기에 콘텐츠가 너무 빈약하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때만 해도 평일이건 주말이건 하루에 눈감는 시간만 빼고는 다 일만 생각하던 때라 '이런 때에 독립출판은 무리지..'라는 생각이 사실 더 컸었다.

근데 그 한 달 사이 진심으로 서로가 meet me 하도록 자극이 되어주는 밑미팀과 시간을 보내며, 나도 더 장기적으로 이곳에서 행복하게 일하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고, 그렇게 바쁜 와중에 아침저녁으로 글을 쓰며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게 되었고, 그렇게 day off를 갖게 되었고, 그렇게 독립출판을 마음먹게 되었다.


이번 주 일상 여행을 통해 발견한 나의 꼴값


그동안 내가 전시를 보러 다녔던 이유는 전시를 보면서 꿈틀거리는 그 무언가를 하고 싶은 욕망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좋아서였던 것 같다.

누구보다 나는 내 작품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 것 같다.

내가 원한 건 아주 시간이 오래 걸려도 결국 하고야 마는 사람이다.

나는 내 나름의 방법으로 나만의 아티스트가 되어 보겠다.

일도 나에게 한 카테고리의 작품이 될 거고~

생각보다 내 삶에서 일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 계속 on-going 일 것만 같아 더 채워 나가야 한다는 핑계로 미루던 나의 <일에서 꼴값 찾기>의 마무리 시점을 찾았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전부인 줄만 알았던 '일'에서 나를 발견한 과정.


일에서 쉼을 가지니 이런 자아발견이 가능하구나.

일하는 나의 day off 기록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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