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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ori s resume

EP5. 보리작가를 만든 컨셉진 에디터스쿨

작가라면 사진작가 밖엔 답이 없을 줄 알았는데…

by 보리 Bori


지금껏 살아오면서 글 쓰는 것은 내 영역이 아니라 확신하며 죽어라 피해 다녔다. 어렸을 때부터 활자를 좋아하지 않았고, 책도 너무 안 읽어서 부모님이 오죽하면 영화로 책의 콘텐츠를 접하게 하셨다.

상대적으로 디자인이나 시각적인 것에는 관심이 많았고 사진 찍는 것도 좋아했다. 10년 전쯤 사진을 테마로 블로그를 시작했는데, 초등학생 일기 같은 내 글이 부끄러워 블로그도 점점 글이 없는 사진집이 되어갔다. 글쓰기는 피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피하고 싶었다.


이런 내가 좋아한 유일한 책이 있는데 바로 매거진이다. 특히 하나의 주제로 엮이는 bear 나 매거진B 같은 류.. 언젠가 이사를 하면서 중고 책방에 책들을 잔뜩 팔고 남긴 책들을 보니 대부분이 매거진이더라. 사진집으로 혹은 나의 취향을 드러내기 좋아서 모은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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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좋은 것을 골라내는 사람


매거진B에서 새롭게 발간한 직업에 관한 이야기 시리즈 JOBS의 첫 번째 주인공은 에디터였다. 워낙 글을 안 좋아했으니, 글 쓰는 것을 업으로 하는 직업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었는데, 문득 이 직업이 내가 하는 일인 기획과 아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애정 하는 것을 만드는 업이기도 하고..


빠르게 변하는 흐름과 함께 매거진을 만드는 에디터의 자질도 변화하고 있었다. “에디터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편집하고 큐레이팅 하는 사람이다.” 는 내용은 내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었다. 나는 창조는 못해도 편집은 곧잘 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논리적으로 잘 정리하는 나의 강점을 잘 활용해 보면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만만한 생각이 들었다.


독립출판으로 사진집을 만들어볼까 하고 수업을 알아보다가 본 적 있었던, 컨셉진의 에디터스쿨이 불현듯 떠올랐다. 일단 강좌 이름이 에디터스쿨이니 에디터와 관련된 스킬을 뭐든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의 일상이 아름다워 지기를 바라는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을 담아, 담백한 이미지의 매거진으로 만들어내는 편집장님은 아마도 내 취향 일 것 같았다. 5번의 토요일 오전 강의라면 내가 좋아하는 취향이라야 끝까지 지속될 수 있지 않을까

겨우살이에 참여했던 여행 작가님과의 대화중에 이 내용을 공유하게 되었고 그날 바로 우리 둘은 얼리버드로 수업을 신청했다.


내가 글쓰기 수업을 내 손으로 신청하다니…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1월에 얼리버드로 신청해서 4월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꽤나 길게 느껴졌다. 게다가 코로나라는 변수가 생기면서 수업이 연기되었고, 이 사이 나에게도 몇 가지 변화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첫 번째 변화.

이직한 브랜드마케팅팀에서의 업무 중에는 텍스트를 쓰고, 남의 텍스트를 교정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았다. 맞춤법 검사기와 사전을 가까이하고 글쓰기와 관련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스마트한 큐레이션 기능 덕에 접하게 된 책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제목도 공감되었지만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이라는 부제가 나를 사로잡았다.

교정 교열 일을 하는 작가님의 책으로 ~적, ~의, ~것, ~들 등 한국인들이 불필요하게 반복해서 쓰는 표현을 예시를 통해 보여주고 대체하는 표현까지 비교하면서 교정하는 업무 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자세한 내용은 BOOK REVIEW로 따로 포스팅)


두 번째 변화.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다 보니 글에서 색다른 단어와 표현법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와 이 사람은 이럴 때 이런 문장을 쓰는구나!’ 글쓰기의 기본은 글을 많이 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과거의 나는 책을 정보를 얻기 위한 방법으로 단어 위주로 빠르게 읽어 해치우는 경향이 있었는데,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 찬찬히 단어 하나하나 보게 된다.



컨셉진 에디터스쿨 : 편집장님의 긍정 에너지를 받는 시간


3달을 기다려 드디어 수업이 시작되었다.

목표 세우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엔 목표를 가지고 시작하고 싶었다. ‘브런치 시작하기’


첫 번째 수업 날 기억에 남는 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달려온 편집장님의 스토리. 패션이 좋아서 오랜 시간 준비해 패션잡지 에디터가 되었지만, 막상 꿈꾸던 것이 실현되고 보니 본인이 좋아했다고 느꼈던 부분은 패션 에디터로서 하는 일과는 거리가 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현실의 나는 꿈꾸기도 힘든 명품을 소개하며 느꼈던 감정은, 럭셔리 호텔을 기획하며 느낀 나의 경험과 비슷한 맥락 같아 아주 공감되었다.


결국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컨셉진을 만들었다 했다. 컨셉진을 지금까지 키워온 과정에서도 수업시간에 전달되는 편집장님의 열정과 긍정 에너지가 철철 넘쳐흘렀다. 에디터고 뭐고 일단 나도 누군가에 저렇게 긍정 에너지를 전파할 수 있는 사람이 꼭 되고 싶었다.



5주의 기간 동안 기사 기획, 글쓰기, 사진 촬영, 인터뷰 등 강의와 과제 그리고 과제 리뷰로 수업은 진행되었다. 매주 주말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글을 써보는 습관을 기르는데도 도움이 되었고, 함께 하는 수강생들의 글을 함께 리뷰하는 시간도 의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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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의 메모 모음집


삶을 대하는 기본기


에디터라는 직업의 이해와 글 쓰는 스킬에 대한 것을 기대했는데, 예상외로 일을 대하는 태도와 더 나아가 삶을 살아가는 기본 태도와 자세를 배웠다.

글을 잘 쓰는 것은 글빨이 아닌, 남들과 차별화되는 나만의 관점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나만의 관점을 갖기 위해서는 나를 들어다 봐야 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깊게 고민해야 한다.


컨셉진 에디터스쿨은 나에게 이런 것들을 가르쳐 주었고, 수료증과 함께 브런치 작가의 시작을 열어주었다.

이제 나의 꾸준함 만이 숙제로 남았다.



삶은 글을 낳고 글은 삶을 돌본다


“이 책을 보면 글이 막 쓰고 싶어 져요” 책을 읽고 싶게 만든 한 마디.

에디터스쿨에서 느낀 것들이 희미해져 가는 듯해 안타까워하던 어느 날, 우연한 인연이 ‘글쓰기의 최전선’을 빌려주었다.


퇴근하고 녹초가 된 저녁 일찍 잠을 청하려 책을 펼쳤는데, 이 데자뷔 같은 느낌은 뭐지?

“쥐며느리와 며느리의 차이와 같다” 는 문장에서 예전에 읽다 말았던 책 임을 확신했다. 따뜻하면서도 힘이 실린 글에 감탄하며 포스트잇을 잔뜩 붙여가면서 읽고 있는 이 책을 왜 그때 끝까지 읽지 않았고 제목도 기억 못 했을까


은유 작가님의 이 책은 나를 들여다보라, 자기 언어를 가지라, 나만 쓸 수 있는 글을 쓰라 등 에디터스쿨에서의 수업내용과 메시지가 비슷해 수업을 다시 한번 정리하는 느낌이었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좋은 글은 무엇인지, 긍정적인 영향력을 위해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남겨주고, 글을 많이 써봐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든다. 아 이 책을 보면 글이 쓰고 싶어 진다고 했었지!


예전에 인상 깊지 않았던 이 책을 통해 변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또 변해갈 내 모습을 기대하며 두고두고 읽으려 내 책을 샀다. 나도 다음에 글 쓰고 싶어 하는 누군가에게 빌려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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