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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 Bori Dec 12. 2021

커리어 프로그램 기획과 상품페이지 작성하기

잘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

운영담당자라는 포지션에 지원했을 때 (운영이라는 단어 덕분에) 엄청나게 재미있는 일이 기다리고 있겠다 기대하지 않았다. 운영이라는 직무는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가깝지는 않지만 잘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 스스로가 선택한 일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래도 이제 6개월쯤 된 회사에서 열심히 내 일을 하다 보면 새로운 기회도 주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있었던 게 오히려 솔직한 마음이었다.


6월 R&R을 논의하는 자리.

운영이라는 업무 옆에 쓰여있는 내 이름을 보는데 뭔가 마뜩잖고, 기대감보다 의무와 압박감이 몰려왔다. 이걸 또 언제 다하지?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내가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찝찝하게 했다.

큰 그림이 그려진 상태에서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해왔던 두 달을 보내면서, 정해진 일을 해야 하는 업무 외에 신규로 기획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저 지금 하고 있는 일 외에 추가로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어요. 정확히 지금 우리가 하는 업무 중에 이거다! 싶은 건 없지만 나중에라도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기거나 하면 한 번 고려해주세요”

라고 말했다. 그리고 대화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저는 이왕이면 본인이 관심 있고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보리는 어떤 것에 관심이 있어요?”

“음.. 저는 일이나 커리어? 그 분야에서의 성장? 이런 것에 관심이 많은 편인 것 같아요.”

“오! 신기하다. 그럼 지금 나이님과 커리어 프로그램 개편에 대해서 최근에 이야기했었는데, 이거 보리가 리딩 해보실래요?”


그렇게 조금은 갑작스럽게 커리어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다. 찝찝하고 우울했던 구름이 걷히는 듯했다.


과거 진행된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


4주간 나-환경-변화-도전이라는 테마로 매일 질문에 답하며 스스로를 회고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온라인으로 나이님과 미팅을 진행하는 ‘일잼 프로그램’은 나를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 같았다. 타깃이 나 같은 사람이니 누구보다 내가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기존에 이 프로그램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후기를 보니, 경력 위주로 정리해보던 관점을 벗어나 내가 일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떤 것에서 재미를 느끼는지 일하는 나를 중심으로 회고해보니 지금 필요한 게 무언지 알게 되었다는 내용이 많았다. 누구에게나 천편일률적으로 답을 주입시키는 것도 아니고 질문을 던져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과정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 보였다. 질문을 던지는 형태는 유지해야 할 포인트!


다음으로 커리어 액셀러레이터인 나이님과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꾸준하게 4주 차까지 열심히 하는 분들은 본인에게 필요한 변화가 무엇인지 스스로 답을 찾아내더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대부분 자신에게 맞는 환경을 찾아 일터나 직무에 변화를 주고 싶다는 바람이 많은데, 그 뒤로 실행이 잘 안된다며 이런 목적의 프로그램이 추가로 있었으면 좋겠다는 요청도 꾸준히 받았다고 하셨다.



신규 프로그램 기획


기존 프로그램은 조금 더 자기 발견을 도울 수 있는 질문으로 포커싱하고 질문을 수정 보완하여 새로운 커리어 질문카드를 만들기로! 그리고 추가로 이직이나 독립을 꿈꾸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하다 느끼는 사람들에게 가이드가 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해 보기로 했다.


일에서 재미를 발견하고 싶은 사람, 이직을 하고 싶은 사람, 독립(나의 일)을 하고 싶은 사람으로 타깃을 나누었고, 바로 3개 프로그램의 주차별 커리큘럼을 정리했다. 그리고 나이님께서 카테고리별로 선별한 질문들을 각 프로그램별로 그리고 주차별로 나누고 어떤 흐름으로 어떻게 진행하는 게 최적 일지 순서도 고민했다.

프로그램 각각에 집중해서 만족스럽게 질문을 완성했지만 프로그램 3개를 함께 비교해보니 질문도 겹치고 처음 목적이나 타깃 구분과 달리 각 프로그램의 차이가 무엇인지 애매해졌다.

프로그램 간의 구조정리가 필요하다!


일잼이 커리어 전반에 대한 질문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나를 스스로를 관찰하고 러프하게 자신의 관심사와 성장 가능성 등을 발견하고 필요한 변화를 깨닫는 것이라면 이직과 독립은 말 그대로의 뚜렷한 목적이 있는 사람인만큼 액션을 수행할 수 있는 가이드를 주어야 한다.

이직과 독립은 실행편으로 분류하고, 각각의 실행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한 달간 빡세게 준비하는 과정으로 하자. 이직을 위해서는 이력서가 필요하고 독립을 위해서는 사업계획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산업과 회사, 그리고 직무를 서치하고 나에게 맞는 걸 골라내고 나와 내가 해온 일을 나의 언어로 정리하도록 매 주차별로 미션을 주자.

이렇게 3개의 프로그램을 정리하고 추후에 커리어에 대한 관심이 높은 사람들을 위한 리추얼도 추가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함께 정리했다.


프로그램별로 구조화하기




질문카드 & 상품페이지 작성하기


전체를 한 판에 정리하고 구조화하는 건 나름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매일의 질문을 작성하고, 각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하는 글을 작성하는 건 너무 하고 싶고 잘하고 싶은 일이었지만 뜻대로 안 되어 괴로운 시간이었다.

내가 원해서 손들어 시작한 일이었던 만큼 동기도 충만했고 그래서 더  잘 해내 보이고 싶다는 생각에 관련된 책들도 꺼내어 다시 읽어보면서 좋은 카피들도 수집하고, 주말 내내 모니터 앞에서 열심히 키보드를 두둘겼다.

왜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는지, 어떤 사람들에게 추천하는지 나의 개인적인 고민과 생각들을 떠올려보고, 나이님과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담아 이리저리 열심히 써 내려갔다. 의욕에 비해 글로 정리하는 건 만만치가 않았다.

이 질문은 너무 어렵게 느껴지려나? 이 예시가 적절할까? 이 문구는 저 프로그램에 더 어울리려나? 비슷한 문구를 여기 넣었다 저기 넣었다 편집하고 고치고 다시 보고 또 고치고를 반복하며 질려버릴 정도가 되었는데, 피드백은 처참했다.

사람들이 궁금해할 것 중심으로 골라 몇 가지만 집중해서 설명하자.
단어나 설명이 추상적이고 어렵다.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쉽고 친절하게 쓰자.
모든 프로그램이 다 비슷해 보인다. 각 프로그램이 어떤 특장점이 있는지, 무엇을 위해 뭘 하겠다는 건지 뾰족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등등

대부분이 이전에 마케터로 일하며 들었던 피드백과 비슷하여 '역시 난 안 되는 건가'하며 의기소침해져 쪼그라들기도 했다. 이전에도 비슷한 생각으로 회피하고 포기했는데 내가 하고 싶고 잘 해내고 싶은 일인 만큼 시간을 들이고 노력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피드백을 보며 전과 후를 비교하고 정리하고 되새긴다. 다음에는 더 나아지길 바라며.


어찌 되었건 고통스러운 시간을 거쳐 커리어 질문카드도 완성하고, 노션에 포맷도 만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3개의 커리어 프로그램 페이지도 완성되어 오픈했다.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며 배운 것


글로 쓰자면 두세 줄로 압축되어 버리지만, 이 시기의 일기장에는 자존감이 떨어져 힘들어하는 내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나는 왜 내가 못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걸까 하는 자책도 함께.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묵묵해 해내는 시간이 필요한데 지레 겁먹고 일찍 포기하려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일단 나의 부족한 부분을 지적받는 것에 익숙지 않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힘들었으니까. 그래서 이전에도 하고 싶지만 '이 일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보다', '다시 도전하기에 난 이미 너무 늦었다'며 합리화하고 회피해 왔었던 듯하다.


커리어 프로그램 독립편을 준비하면서 <인디펜던트 워커>를 읽었고 여기서 혜윤 님의 인터뷰가 여러 가지로 인상적이어서 <퇴사는 여행>도 다시 펼쳤다. 지금은 너무 완벽해 보이는 누군가에게도 좌절의 시간은 있었고 그 시간을 성실하고 건강하게 거쳐 성장한 것이라는 게 참 힘이 되었다.


밑미에 조인하기 전 내 갭이어 후 목표가 “밑미에 콘텐츠 에디터가 된다.”였다. 팬으로 밑미의 상품페이지들을 보며 이런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하고 싶은 일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게 참 감사했다. 그리고 일을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그 과정이 다 내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것들이라서, 덕업일치가 이리 좋구나 느낄 수 있었던 것도.


시간이 지나고 이제야 보이는 건,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 스스로가 대견하다는 것.

경험치가 쌓였으니 앞으로 또 이런 시기가 찾아오면 스스로를 칭찬하고 위로하면서 너무 힘들지 않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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