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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phim May 18. 2020

'타자의 벤치'

삶은 벤치마킹이다.

 



인생은 벤치마킹이다. 뛰어난 기업들은 그들의 경쟁사나 선두주자들을 서로 참조하여, 끊임없이 갱신과 변화와 혁신을 도모하면서, 무한 경쟁 속에서 생존과 발전을 지속해나간다. 과거에 기업들은 동종 업체들 간에 참조를 했지만 이제 그 벤치마킹은 영역에 제한 없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매우 상이한 분야들을 참고하며, 다른 동종 경쟁사가 발견하지 못한 색다르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시장을 주도하기도 한다.


한국의 사회 분위기와 문화 속에는 타인과 다름에 대한 두려움과 부정적 이미지가 매우 강하게 집단적으로 내재되어 있어. 타인과의 비교, 참고는 자주 경쟁적인 순위 매김의 의미에 머물러 있다. 학교 교육 구조와 시대마다의 위기와 전쟁과 군사 독재 등의 정치 사회적 배경 속에서 생성된 개성의 억압과 획일적 잣대는 사회의 단일한 합의와 일치를 쉽게 이룰 수 있는 강점으로 작용한 반면, 그 일괄적인 동일한 척도는 각 개인의 다양한 개성을 질식시키며, 동시에 사회와 문화를 풍성하게 채울 수 있는 다양한 원동력을  성장시키지 못하는 폐해가 되고 있다.


정체되지 않고 꾸준히 발전하는 기업들은 그들의 기업 체질과 구조와 운영 방식과 제품의 경쟁력에 대해, 필요한다면 변혁을 주저하지 않는다. 변화와 갱신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선택적 요인이 아니라 필수적인 요인이다. 생명체 자체도 생존하는 동안 환경과의 상호적 관계 속에서 계속적으로 변화를 거듭하며 진보를 속하고 있다.


주위에 참조할 수 있는 좋은 참고서 같은 존재가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환경을 경쟁력 있게 만든 것이다. 친구이든 선후배이든, 주변에 자신이 필요한 순간에 조언을 구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그 상대의 삶과 사고의 방식 등을 참고할 만한 인물이 있다면, 일상의 삶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 늘 할 수 있는 좋은 교사를 갖고 있는 것이다.


친구는 나보다 나은 친구, 나와 비슷한 친구, 나보다 못한 친구 세 가지 형으로 사귀라는 말이 예전엔 회자되었는데, 요즘엔 이 말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 같다. 아파트 평수로, 사는 동네로, 스펙에 따라, 직업군에 따라... 등등 다양하게 분화되어 형성되는 소집단들은 그 특성이 매우 동질적이다. 일상적으로 안정적인 친교와 사회적 관계 형성에는 마땅히 동질적인 집단이 유리하다.


그러나 동질적 특성이 강한 집단은 질서 정연하고 안정적으로 생존을 보장해주지만, 그 동질성으로 확보된 굳건한 유대감이 예측이 어려운 변화하는 환경에서는 큰 장애가 될 수도 있다.


이번 코비드 상황에서 초기 일본에 관련된 한 기사에 의하면 어느 의사가 정직하게 자신의 병원에서 감염 확인 사실을 공지하자 동네 주민들이 그 의사와 병원을 비난하고 집단 따돌림하기에 이르렀다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싸워야 할 진짜 상대는 정작 방치하고, 그들의 견고한 울타리에 구멍이 생겨 안전에 위험이 왔다고 알리며 공동체를 위해 정직하게 개인의 의무에 충실한, 자신들의 진짜 아군을 적으로 만들어 버리고 괴롭힌 것이다.  


상황이 이웃 나라만의 어처구니없고 당황스러운 에피소드로 끝나면 좋겠지만, 이와 비슷한 현상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회사 내에서도 정치에서도 가정에서도 친구 사이에도 단체와 그 조직들 안에서도 많은 불의한 일들이 조용히 은밀히 다루어지며, 뚫린 구멍으로 새어 들어오는 물과 그 구멍은 무시한다,  작은 구멍과  그 새어 들어오는 물이 곧 거대한 댐을 파괴할 수도 있지만 현재의 안정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위험을 경고하고 대비하자고 소리 내는 사람들을 오히려 자신들이 쌓아온 명예와 권력과 이익을 훼손한다며 적으로 돌려놓는다. 일본의 그 일화와 다르지 않은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도 익숙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현재 사회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에 대해 우리 자신들도 너무 무감각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정직한 목소리는 실제로는 현재의 안정성을 전혀 해치지 않는다. 우리들은 일상의 편안함과 안일한 무위가 습관이 되어, 그 일상적인 안일함이 자극받아 뭔가를 갱신해야 한다는 그것이 무의식적으로 두려운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세상은 경제와 사회, 문화 등의 많은 영역에서 기존에 명백해 보이던 구별, 구분들이 사라지고 있다. 풍부한 아이디어만큼 다채로운 이종 협업과 이질적인 공조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영역 간의 확연한 장벽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시대의 모습이며, 우리 일상의 삶에도 그 변화의 맥락은 동일하게  적용되 있다.


우리의 삶이 항상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없음은 늘 증명되어 왔지만, 한편 위기는 성실한 개인과 민족에게는 더 나은 성장의 발판이 된다. 우리 사회에서도 뿌리 깊은 동질적 관계의 고착화와 획일적 잣대의 개선을 위한 인식의 업데이트, 사고와 생활 방식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의식적 노력과 그 실천 방법들이 곳에서 탐구되고, 실생활 속에서 바람직한 결과물들이 편견과 아집의 껍질을 벗고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되고 있다.


이번 팬데믹 사태를 지나며, 우리는 반면교사로 해야 하거나 타산지석할 수 있는 또 다른 다양하고 풍부한 데이터들을 얻게 되었다. 개인이든 공동체이든 위기는 언제든지 순식간에 몰려올 수 있지만, 평소에 쌓아온 자신에 대한 삶의 관리가 결국 위기관리의 기반이 될 수밖에 없다.


개인이나 공동체에게도 그 역량의 요소는 동일하다. 무수히 섭취하고 저장되어 있는 두뇌 속의 방대한 지식들을 우리는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의미로 해석해서 자신의 삶에, 공동체의 삶에 반영하고 적용할 것인가개인과 사회의 삶의 가치관과 태도에 의해서 달라질 것이며, 그렇게 우리의 개별적 사회적 역량은 성장하고 성숙되어 갈 것이다.


성장과 성숙은 모든 생명체의 본질이며 숙명이다. 그렇지 않고는 계속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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