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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라이프를 찾아'(4)

삶은 축제가 아니다.

by Seraphim

<리옹, 루미에르 축제의 고대 로마극장 by s>




리옹의 역사는 기원전 43년에 시작된다. 당시 로마 제국은 속주가 된 갈리아 (또는 골, Gaulia, Gaul, 프랑스 옛 지명) 지방의 세 나라를 관리하기 위해, 현재 노트르담 대성당이 위치한 푸흐비에흐 언덕에 루그두눔(lugdunum)이라는 도시를 세웠다. 이후 기원전 27년, 갈리아 지방이 행정적으로 재편성되면서 갈리아 루그두넨시스의 수도이면서 로마제국의 본부가 되었고, 도로가 발달한 로마제국의 영향을 받아 일찍부터 활발한 교역으로 경제적인 기반이 마련되었으며, 로마 제국 당시 매년 갈리아 의회가 이곳에서 개최되면서 정치적으로도 도시의 위상이 발전하게 된다.


기원후 초기, 소아시아에서 전파된 가톨릭은 로마시대의 박해로 리옹 크흐와후스(Croix-rousse) 원형 경기장에서 48명이 순교를 당했으나, 313년 로마 콘스탄티누스 1세의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종식되면서, 프랑스 가톨릭의 역사가 리옹에서 시작된다. 종교 박해 당시 순교한 리옹의 2대 주교 이레네오(추정, 130-202년)는 초기 그리스도교 신학사상의 기반을 다진 신학자로, 가톨릭, 동방 정교, 성공회의 성인으로 존경받고 있다.


로마 제국이 395년 동, 서로마 제국으로 분열되고, 476년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뒤, 동로마 비잔티움 제국이 1453년 멸망할 때까지, 리옹은 지리적 여건에 힘입어 로마 제국 내에서도 도시로서의 면모를 계속 지켜갔다. 1312년 필립 4세에 의해 프랑스에 합병되면서, 고대와 중세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리옹은 프랑스의 주요 도시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고대로마 원형극장, 구글 이미지

고대, 중세, 근대와 현대의 문명이 모두 모여 있는 리옹은 시 전체가 1998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세기 초에 건설된 고대로마 원형극장(Musée Gallo-roman de Lyon 'Fourvière)은 1회에 1만 명 정도 관람이 가능하고, 현재도 여름 6월부터 8월까지 주말 저녁에는 영화, 연극,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들이 진행되며, 12월 8일 뤼미에흐 축제 때는 화려한 빛의 잔치가 펼쳐지는 또 다른 핫스팟이기도 하다. 항상 무료입장이며, 아무 행사가 없는 휴일이나 평일에는, 고대 시간으로 거슬러 들어가 현대의 정신없는 문명의 흐름을 잠시 잊고 시원한 바람과 시대의 무상을 느끼며 1시간 정도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프랑스의 중소도시에는 고대로마 원형극장이 많이 있는데, 리옹의 이 극장이 프랑스에서는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비위 리옹에서 푸흐비에흐 언덕까지 운행하는 후니퀼레흐 (푸니쿨라,funiculaire)트램을 타면 중간역 Minime에서 내려 바로 앞에 도착할 수도 있고, 비위 리옹에서 뒤편 골목들을 지나서 10분 정도 걸어갈 수도 있다. (푸니쿨라는 비위 리옹, 미님느, 푸흐비에흐, 운행요금은 1,7유로, 1회 버스 티켓은 1시간 이내로, 지하철, 전철 트램, 버스 모두 환승됨) 1구에 있는 또 다른 원형극장 크흐와후스는 1세기 중반에 건설되었으며, 1회 약 3천 명 정도 관람이 가능하고, 옛날 갈로아 의회 회의가 이곳에서 개최되었다고 한다.


서유럽에서 지리적으로 중앙에 위치하고, 육로와 수로의 교통수단 발달로 리옹은 교역, 상업, 금융, 견직물 제조업 등의 분야가 발전하면서 무역과 금융의 도시로 명성을 쌓았다. 은행의 영어 단어 bank의 어원인 벤치 bench는 이곳에서 상인들이 벤치에 앉아 서로 거래에 대한 지불을 정리하던 것에서 연유했다고 한다. 도시의 상업적 지리적 특성으로 프랑스에서는 다른 도시에 비해 외국인에게 우호적인 편이며, 타 도시보다 영어 사용자가 많았고, 영어 교육도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루미에르 축제의 가흐 생폴 전경 by s.


다시 공부하는 것은 즐거움 40퍼센트, 고생 30퍼센트, 과제 30퍼센트의 즐겁기도 하고 고생스럽기도 하고 과제하랴, 시험 보랴, 좀 놀아도 좋은 나이에 다시 하는 고생은 자주 갈등을 부추겼다. 다행히 프랑스에서도 학비 저렴하고 서유럽 국가 도시들 중에서도 가장 저렴한 물가를 유지하는 리옹은 유럽 생활에서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바람직한 선택이었다.


서유럽 다른 도시를 여행해보면, 리옹의 물가 수준과 사람을 위해 차가 항상 양보하는 교통 문화는 단연 최고였다. 리옹에서 습관이 되어 다른 도시 여행지에서 무심히 경계 없이 길을 건너거나, 엇갈리는 신호등 앞에서 차의 양보를 예상했다가 몇 번씩 흠찟 놀라는 일들을 겪곤 했다. 리옹도 번화가 다운타운의 상황은 좀 다르지만 우리가 거주하던 동네와 일반 주거지역에서는 항상 행인이 먼저여서 횡단보도를 건너갈 듯 분위기만 풍겨도, 달리던 차가 먼저 멈추고 천천히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준다. 열명에 9명은 그렇게 하지만 물론 이곳도 한두 명의 무척 자유로운 영혼들은 항상 있다.


우리도 길 건널까 말까 하는 행인에게 리오네들처럼 건너가라고 친절하게 손짓하며 얌전한 운전 습관을 차츰 익혀갔다. 여기 포르토는 아쉽게도 서울과 리옹 스타일이 섞여 있다. 한없이 양보해주는 선량들과 제갈길 급히 휙 가느라 행인은 전혀 염두에 없는 레이스 운전자들을 한 동네에서 동시에 만난다. 고마웠다가 놀랐다가 왔다 갔다 해서 그냥 서울 스타일로 인식하기로 했다. 주로 우버 차량 운전자들이 선량에 속하는 것 같다.


프랑스의 교육이 자유롭고 창의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대와 다르게 획일적이었다. 체계가 잘 짜여 있어 수업 목표와 과정은 분명하고, 수업의 가시적인 성과는 확실히 측정될 수 있으며, 강사들의 수업관리는 한결 쉬워 보였지만, 학생들은 딱 정해진 그 틀 안에서 생각해야 하고, 질문해야 하고, 대답해야 하고, 강사와 다른 학생들을 절대 피곤하게 해서는 안된다.


프랑스의 집단적 사회주의적 성격은 생활 곳곳에 배어 있어서 타인에 대한 인내와 관용이 중시되고 이 미덕의 함양을 요구받지만, 그로 인해 깊이 내재되는 개인적 욕구불만과 그 분노는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그 틀을 벗어난 개인의 기대나 욕구는 어떻게 관리하도록 가르치는지 그것에 대해서는 궁금했다.


이러한 교육적 방향과 시스템에 의해 사회 질서가 일률적으로 유지되는 점은 안정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장점인데 반해, 개인들의 각 고유하고 활발한 생기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최근의 데모들이 폭력적으로 변질된 부분은 일상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지만, 한편, 내재된 개인들의 분노가 이런 일탈적 상황 속에서 격하게 표출되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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