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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phim May 24. 2020

'33일간의 마라톤'

이제 열흘씩 걸어간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22일째 21개의 글을  올린 날엔 몹시 피로를 느꼈다. 코비드 상황에서 규칙적으로 크게 움직임이 없이 거의 30일을 무료하고 나태하게 보내다가, 갑자기 시작한 매일 글쓰기는 꽤 노동이 되었다. 허리가 아프고 자리가 배겨서 자주 자세를 고쳐 앉으며, 흘러가는 시간들을 브런치에 틈틈이 쌓아놓는 일은 즐거운 수고였지만, 마냥 쉽고 유쾌한 놀이는 절대 아니었다.


생각도 뒤져야 하고, 감정도 다시 확인해야 하고, 문법은 맞는지, 어휘가 적절한지, 쓰려는 내용이 맞는지, 그중에서 언제나 제일 어려운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이다. 문장 구성력이라고 할 수도 있고, 의미 전달력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이 능력은 글쓰기의 핵심 역량인지라 당연히 어렵다.


어딘가 묻혀 있던 먼지 묻은 단어들을 한 자 한 자 끌어내고, 문맥들을 다듬으며, 녹슬어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도 희미한 감성들을 불러 모으는 작업은 새롭고도 신선했지만, 열량 소모량도 만만치 않았다. 글을 쓸 때면, 허기가 느껴지는 속을 채우느 계속 뭔가를 먹고 있는 때가 글 쓰는 시간만큼 많다. 마트에 가면 스낵 종류도 규칙적으로 사 오고, 담백하게 먹던 크래커에 진한 크림치즈를 가득 덮어 우물우물 먹는데 크래커 4개 먹으면서 쓴 글자는  단어... 그래도 더 먹으면 글이 더 써진다. 고마운 크래커,



어제 마트에서 포장이 깔끔해 보여 처음 구입해본 크래커인데, 짜거나 달지 않아 좋고, 필라*피아 라이트 크림치즈를 듬뿍 얹어 인스턴트 한 스푼의 연하게 탄 커피와 먹으니 맛도 어울리고 부담 없이 한낮의 피로감도 좀 달래다.


간식으로 오후의 허기를 채우고, 여기까지 써오니 글 속에 스트레스가 녹아가고 있다. 괜찮다. 멋지다. 참 좋다. 다행이다. 글 쓰며 기분이 편해지고 마음이 안정되니 이보다 더 좋은 수고가 어디 있으리오. 크래커가 맛있었는지, 크림치즈 성분이 좋았는지 글 쓰기에 컨디션이 적당하다.


오늘은 33일 되었고 글은 32개 썼으며, 22일째에 21개 글을 올리고 그날부터 격일로 글을 쓰며 다시 예전의 한가로운 리듬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20여 일간의 수고들이 그 사이 조금씩 익숙해졌는지 차츰 편해지며 다행히 오늘까지 올 수 있었다. 그렇게 게으름 부리며 나태하고 싶던 유혹을 조금씩 이겨내며, 컨디션도 적당히 조절하고, 피로하지 않기 위해 무리한 욕심은 덜어내고, 건강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글 쓰기 하면서 차차 도를 닦아갈지도 모르겠다.!?.


루미에르 축제의 고대 로마극장, by s

에서 글을 쓰며 30여 일을 보내는 것은 내 계획에는 없었다. 막연히 글을 써보면 어떨까 가끔 생각은 했었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실행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매일 조금씩 써보고 읽어보고 다듬고 하면서 마음 어딘가에 쌓여 묵혀 있던 감정들이 선명하게 모습들을 드러내며 정화되고, 여기저기 떠다니며 흩어져 있던 생각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찾아, 의미 있는 관념의 집들을 짓는다. 그래서 마음도 몸도 개운해지고, 사색의 시간들이 열매를 맺어 그 달콤한 맛 다시 내게 선사한다.


결혼 이후, 국내 이사 몇 번과 해외이사 몇 번을 거치며 집안과 살림 정리하는 기술은 나날이 개선됐지만, 내 자아에 대한 경영 기술은 그만큼 발전하지 못했다, 최근 달간 매일 글을 쓰면서 자신에 대한 관리 능력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자신의 감정과 인식들을 자주 살피는 습관이 생겼고. 글을 는 동안, 놓치고 있는 생각들을 찾아다니면서, 자신을 삶의 미로에 더는 방치하지 않는, 친절한 자아도 재탄생되고 있다.


이제 나의 글쓰기는 딱 열흘씩 이어진다. 44일 째를 향해 10여 일만 걸어간다. 한 달을 하겠다고 계획하면 부담스럽지만, 이제는 열흘씩만 가면 된다. 이제 9 남았다.


글 쓰는 이들은 지혜의 빛 속을 걸어가며 도를 닦는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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