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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phim Jun 05. 2020

'지혜의 돌'

성장의 돌덩이




이곳 포르토는 지난 2주간 성큼 여름 고온 날씨로 어느 날은 30도를 찍으며 조금 더웠다가 이번 주엔 시원한 바람과 산책하기에 알맞은 20도 내외로 다시 선선한 봄 날씨가 되었다. 2주간 산책은 뜨거운 햇볕에 더위를 느끼다 보니 신록들의 싱그러움을 잘 느끼지 못했다. 지난주 더위 탓인지, 이번 주는 시원해졌는데도 멀리 보이는 잔디밭을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잔디밭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날아다니고 싶은 경쾌함이 그리워졌다. 아련하게 느껴지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다, 그 순간 가볍고 경쾌하게 날아보고 싶었다. 아 근데 왜 못까, 그때 미처 이름 붙일 줄도 몰랐던 무거운 돌덩이가 마음 안에서 보였다. 검은색 회색 섞인 묵직한 돌덩이가 희미하게 보였다. 그 돌덩이를 내려놓으면 철 모르던 어린 시절 잔디밭을 신나게 날았다니듯, 날 수 있을 같았다. 그렇게 한참 날아다니면 그 돌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마음껏 날고 있다가 상상에서 깨어 나니 뿌옇게 보였던 돌이 나 여기 있어하며 전보다 더 또렷이 보였다. 그렇지만 달라진 게 있었다. 잔디밭에서 날기 전에 그 돌은 나의 일부 같았고 흐릿해서 정체가 막연해 보였는데, 이제 나와 분리된 다른 이질적인 개체로 보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 돌을 그냥 버려두말고, 고운 잔디밭에 놓아두면 어떨까, 그러면 틈틈이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쭈그리고 앉아 이제 돌덩이와 작별하고 싶어 짧은 시를 썼다. 그 돌덩어리에게 새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어서, '잔디밭을 찾아' 돌덩이와 이별식을 마쳤다.



시를 브런치에 싣고, 잠시 후, 라이킷 달린 그녀의 글을 읽었다. 내용 속에 등장하는 "현자의 돌"...


난 그 돌을 마음에서 이제 비워냈으니 됐다고, 예전에 내려놓아야 했을 것을 붙잡고 있었다고, 내게 슬픔의 돌덩이였으니 떠나보내길 잘 했다고 마음을 추스르며 돌아서려는데, 그녀의 글 속에 등장하는 "현자의 돌"은 모두가 찾으려고 염원하는 보석보다 더 귀한 돌이었다. 그 돌을 찾으면 현자가 될 수 있는 생명의 돌이었다.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다. 누구에게나 마음 안에 한두 개쯤의  "현자의 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우리는 이 짐이 무겁고 고통스럽다고 불평 해대지만, 내가 짧은 시간이나마 엄마 역할을 해보지 않았으면 절대 알 수 없었을 나를 포함한 이 세상 절반의 여자들의 마음과 그 속박과 희생과 깊은 슬픔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이기적이고 철없는 정말 형태만 성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여전히 부족한 성인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세상 인사하는 날까지 배우고 성장하면 되니까. 아직 인사할 시간이 더 있을 거 같으니까...


'잔디밭 찾아' 시를 브런치에 올리고 그녀의 글을 읽고 댓글을 달았다. "오늘 우리에게 '돌'이 공유되었네요. '현자의 돌'이면, 집안에 고이 모셔 두고 싶다"라고. 같은 날 몇 시간차로 전혀 다른 두 형상의 ''이 브런치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나의 남아있는 돌에 '현자의 돌' 이름표를 붙이기로 했다.






(*그녀의 글: @고래별, "현자는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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