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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phim Jun 10. 2020

'청국장과 된장'

나의 최강 음식



국 생활을 하면서 제일 아쉬운 점은 당연히 모국의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다. 식성에 입맛에 깊이 저장된 그 음식들의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특히 장맛 그중에 맛있는 된장이라면 절대 포기하지 않았는데 식성으로 해외 생활 5년 차를 보내고 있는 게 한편 기특하기도 하다. 한국에 살 때, 친정 엄마는 맛있는 된장과 청국장을 어디선가 발견하시면 바로 내게 연락하시고 보내 주셔서 냉장고에는 된장과 청국장이 항상 가득 쌓여 있었고 언제든 원하는 찌개를 얼큰하고 맛나게 끓여 먹을 수 있었다. 몇 가지 식성이 비슷하지만 엄마와 나의 된장과 청국장 사랑은 똑같이 유난하다. 해외 생활 동안 된장은 공장 제품으로 그럭저럭 먹으면서 그리움을 달래지만, 무척 좋아하는 청국장은 기억도 아련해지고 있다.


한국의 발효 음식의 최고봉은 역시 청국장이다. 청국장 잘하는 식당들을 찾아다니던 시간도 아득한 옛날이 되었고 청국장 먹은 지도 몇 년 되었지만, 구수하고 구수하고 구수한 그 맛은 잊을 수 없다. 어떤 음식으로도 그 맛을 흉내 낼 수 없지만 한편 맛있는 청국장을 찾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엄마와 내게는 오래전 외할머니의 정성이 빚어낸 방 아랫목에서 실을 길게 늘어뜨리며 숙성되던 진짜 청국장의 기억이 함께 자리하고 있어서인지 엄마와 나의 청국장에 대한 식별은 까다로운 편이었다.



전통 음식잘하셨던 외할머니는 기력이 좋으셨던 내 어린 시절에, 옛날 그대로 메주를 집에서 정성 들여 만들고 익히고 숙성시켜 맛있는 간장과 구수한 된장을 만들어내셨다. 어릴 때에 자주 보아도 내게 그 긴 과정은 늘 신기하기도 했고 힘들어 보이기도 했다. 메주와 청국장이 숙성되기 시작하면 온 집 안에 퍼지는 향내가 초기 어린 시절엔 좀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 점차 긴장과 된장과 하얀 긴 실이 끊어질 듯 일어나는 청국장의 고소한 듯 짭짤한 듯 그 절묘한 장맛을 알아가면서 할머니의 수고로 탄생되던 청국장과 된장과 간장의 맛은 깊이 새겨져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할머니는 김치도 무척 맛있게 담그셨다. 가족들은 물론, 자주 놀러 오시던 엄마 친구분들과 친척분들에게 늘 칭찬받는 맛있는 김치였고 종류도 다양했다. 김장 김치는 물론 기본이고 계절마다 재료대로 오이소박이, 고추김치, 깍두기, 파김치, 부추김치, 열무김치, 총각김치, 얼갈이김치, 동치미, 고들빼기김치, 겉절이 김치, 내가 여러 종류의 김치들을 좋아하게 된 것도 할머니가 담그시는 다양하고 맛있는 김치들 덕분이었다. 할머니의 김치는 결혼 이후에도 시간이 오래 흐른 지금에도 그 맛이 잊혀지지 않는다.



초등학교 4학년 , 매일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과 돌아가며 친구네 집에 놀러 가 식사를 하곤 했는데, 여름 무렵, 우리 집 차례가 되었고 친구들 한 무리가 놀러 오게 되었다. 할머니의 김치와 몇 가지 반찬으로 간단한 식사를 맛있게 먹었고 신나게 놀다가 헤어졌다. 그리고 며칠 후 5,6명의 그 친구들이 우리 집에 가서 김치를 먹겠다고 나섰다. 그날은 아직 우리 집 차례가 아니었는데 어린 숙녀들 입맛에 맞았는지 모두 할머니 김치 먹고 싶다고 집에 가자고 하나같이 조르고 있었다. 그 날은 예정에 없던 거여서 할머니께 미리 말씀도 안 드려서 망설이다가 집으로 향했다. 불안하던 느낌이 맞았는지, 그날은 마침 맛있는 얼갈이김치가 다 떨어지고 할머니가 다시 김치를 담그시려던 날이었다. 친구들의 실망한 모습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 당황하면서 김치 담근 후 다시 오기로 기약하고 나왔다. 그리고 김치가 맛있게 익을 때인 이삼일 후엔가 친구들은 다시 김치 먹으러 집으로 놀러 왔었다.


특별히 장류와 김치를 잘 담그셨던 외할머니 덕분에 청국장과 된장과 김치의 마니아가 되었지만, 나와 친구처럼 유난히 친했던 외할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나서, 할머니와 진한 장맛과 맛깔스러운 김치들 잔치는 이제 만날 수도 맛볼 수도 없는 박제된 추억으로 간직되어 다. 지금도 여전히 장류와 여러 종류의 김치들을 좋아하지만, 그토록 좋아하는 청국장과 된장과 울긋불긋 오묘한 맛의 김치들에는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함께 배어 있어서, 잘 숙성된 장맛과 잘 익은 김치 맛을 느낄 때면 외할머니가 먼저 생각나서 그 깊은 맛에 선뜻 빠져들지 못하기도 했다.



지금 냉장고에는 리옹 한인 마트에서 사 온 공장표 고추장과 된장이 있다. 구수한 된장이 그리워지면, 나는 된장과 고추장과 참기름과 꿀을 섞어 만든 쌈장을 샐러드 상치에 싸서 먹고, 남편은 이곳 풍부한 해산물로 국물 맛을 조미한 된장찌개를 끓여 먹는다. 한인 마트에서 사 먹던 종** 김치도 이곳에서는 구할 수 없어서 중국 배추라고 이름 붙여진 배추와 양배추를 썰어서 소금 설탕 식초 끓인 물에 재워 만든 무늬는 백김치이고 모양과 맛은 피클인 양배추 섞인 배추 피클로 김치를 대신하고 있다.


올해 서울에 가게 되면 맛있는 청국장찌개와 김치와 갖가지 나물과 반드시 잡채가 어우러진 한식 한상 차림 코스로 소문난 맛집을 찾아가서, 한편으로 접어놓아 둔 외할머니의 기억과 그 손맛과 깊은 장맛과 매콤 찬란한 김치의 풍미를 한가득 채우고 와야겠다. 그러면 또 2,3년은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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