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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phim Jul 03. 2022

지옥 체험

싫은 것들과의 조우,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말 섞기 싫고 얼굴 보고 싶지 않은 사람과 자주 만나야 한다면, 그건 지옥이다. 전혀 좋아하지 않은 장르의 음악을 고성으로 하루 네, 다섯 시간씩 축제라는 명분 하에 한 일주일쯤 계속 들어야 하는 건 고문이다. 포르토를 한 30킬로쯤 벗어나면 조용할까.


지금 포르토는 6월 들어서부터 각종 축하 휴일, 공휴일에 무슨 축제 같은 걸로 일주일 넘게 주변 공원에서, 강 건너편 카페 레스토랑에서 공연되는 음악으로 이제 음악이 아니라 소음으로 가득 차 있고, 새벽 1시 넘어서까지 쿵쿵 쾅쾅 그칠 줄 모른다. 관광 도시 한복판에 사는 대가인가?




프랑스에서 개인적으로 좋았던 시스템은 무슨 행사를 하든 나라에서든, 지역 자치에서든, 옆집 바비큐 파트를 하든 모든 행사는 무조건 밤 12시가 되면 끝나것. 그리고 파티 같이 시끌벅적한 행사는 목, 금, 토요일에만 하고 일요일에 소음 행사는 없다. 물론 정식 공연장에 일요일 공연이 있지만 밤 10시 전후면 끝난다. 밤에 소음이나 야간 조명으로 밤잠을 설칠 일은 절대 없다.


오히려 너무 기계적으로 철저하게 행사가 짜이고 경찰들이 빼곡히 배치되고 바리케이드로 여기저기 막아서 축제의 흥을 많이 느끼기 어려울 때도 있다. 질서는 엄청 차분하게 유지되고, 행사는 담담하게 주어진 의식을 조용히 치르는 관례처럼 진행된다.



모든 일에 그 칼 같은 절도가 한편 내게는 편했다. 그런데, 포르투갈은 참 많이 다르다. 수시로 오는 축하 공휴일이 매달 평균 3,4일, 거의 매주 있어 일할 의욕이 사라질 것 같다. 공휴일 전날은 해가 지면 불꽃 폭죽을 터뜨리기 시작해서 밤 12시, 새벽 1시까지 여기저기 수차례 폭죽이 울려댄다.


강변 풍광에 접한 주거지 덕분에 처음엔 화려한 축제의 불꽃잔치가 아름답고 그 소음이 흥겨워 자주 구경거리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축제가 일상이 되면 더 이상 즐겁기만 한 건 아니다. 일상의 중심이 되는 리듬이 먹고 노는 것에 많이 치중되고 놀거리만 계속 비대해진다. 이 나라 경제 상황을 고려해 볼 때도 그 폭죽 비용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효용성에 생각이 많아진다.


지금 며칠 째 펑펑 팡팡 소음에 너투브 보고 바느질하고 어떻게 견뎌보다가 이제 글을 쓰며 무디어지려고 노력 중, 귀가 너무 먹먹해서,,, 토요일인 오늘도 바로 가까운 공원에서는 하루 종일 음악 공연 중, 시끄러운 음악들에 어디 다른 도시로 피해야 할까, 어제도 새벽 한 시까지 듣고 싶지 않은 음악을 계속 들어야 했다. 불면증 있는 사람은 더욱 괴롭다.



싫은 사람과 밥 먹는 것만 고역인 줄 알았는데 싫은 음악 하루 종일 들어야 하는 것도 정말 고문이다. 살아가는 동안 지옥을 체험할 일이 가끔 있다. 말도 섞기 싫은 사람과 할 수 없이 얼굴을 보거나 특히 식사를 같이 해야 하는 것, 전혀 감정적 공감이 되지 않는 사람이 계속 공감을 반 강요하며 자신들이 타인에게 얼마나 부담을 주며 불편하게 하는지를 모를 때, 어쩔 수 없이 지옥 같은 혐오가 체험된다.


자신에 대한 객관화, 자신에 대한 객관적 인식, 이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하루 종일 울려대는 저 음악이 누군가에게는 고문일 수 있는데 그래서 절제가 있어야 하는데, 한 2,3시간은 견딜 수 있을 것 같은데, 자신들의 축제 콘셉트가 누군가의 건강을 해치는 독주가 될 수도 있는데.



어리석은 주관성의 위험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을 도구로 이용하는 나르시시스트들의 만행만큼이나 유해하고 몰지각하다. 자신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갖는다는 건 개인이든 국가이든 특히 한 나라의 대통령, 자녀를 키우는 부모에게는 더욱 말할 수 없이 중요한 관건이다.


나르시시스트 부모가 나르시시스트 자녀를 만들고 그 자녀는 그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도구로 전락되어 봉사한다. 자신의 삶은 실종된 채 부모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적절히 보상당하고 계속 묶여서 지내지만 본인은 절대 인정하지도 인식하지 못한 채, 저 울려대는 뽕짝 악기처럼 연주자에 의해 주변의 평화를 파괴하며 계속 연주된다.



자신에 대한 객관적 인식과 그 이해가 나이가 든다고 저절로 생겨나는 것은 아닌가 보다. 나라의 경제 규모에 관계없이 한 달의 반이 휴일인 채 뽕짝 뽕짝, 불꽃 펑펑 쏘아대는 것은 여기가 요즘 잘 나가는 관광도시라고 해도 좀 지나치다. 부모의 요구에 바짝 여 자신의 삶을 몽땅 쏟아붓는 사람들의 삶도 몹시 과도하게 헌신해 보인다.


잘 사는 나라는 그 이유가 있고 잘 사는 가정은 다르다. 쓸데없는 것에 낭비를 많이 하고, 일은 뒷전인데 잘 사는 나라가 이 지구 상에 있을까, 타인의 인생에 도구로 이용되면서 자신의 삶이 만족스럽고 여유로우며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 사진 모두, 포르토와 빌라 노바 드 가이아 Porto & Vila Nova de Gaia, 포르투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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