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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phim Jun 14. 2020

갑짓의 정체,

무지와 어리석음의 살체




갑짓은 오랜 시간 천대받은 자아들이 타인을 모욕함으로써 자신의 열등감을 벗어던지고 싶은 파괴적인 욕망이다.


자아가 존중받지 못하고 배우자나 가족 관계 안에서 무시나 모욕을 당하면, 자아는 붕괴되면서 자신의 모멸감과 상처를 자녀나 주위의 나약한 타자에게 투사한다. 외형적 성취와 물질적 성공에 의해 포장된 거짓 자아는 자신의 기반이 없기에 타인의 시선과 판단에 매우 민감해지고, 자신의 열등감이 자극받는 어떤 불쾌한 상황도 용납하지 못하게 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지속적으로 무시당하면서 열악해 자아는 내면에 깊은 좌절감을 숨기고 있으며, 그 상실감을 보상받기 위해 자기보다 상대적으로 열세인 타자를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패배감을 만회하려고 한다. 나약한 타자를 공격하여 자신이 힘의 우세에 놓이게 되면, 자신의 자아를 무너뜨렸 자기가 저항할 수 없었으며 자신을 억압했던 그 권위에 대한 반항과 패배 의식을 그 순간 보상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갑짓은 피폐해진 자아가 자신의 물질적 세력에 기대어 타자를 희생양으로 삼고 자신의 상처를 복수하는 비열한 배설 행위이므로, 사냥감을 찾아다니는 굶주린 맹수의 사격권 안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그들은 물질적 부가 사람들을 어떻게 능멸할 수 있는지 그 권력의 파워를 잘 알고 있기에 그 사슬 관계에 묶이지 않아야 한다.



고 있고 걸친 게 많으면 실체에 대한 인식과 자각은 점점 둔해지게 되고, 거짓과 진실을 식별할 수 있는 이성을 상실하기 때문에, 가면과 허상이 진실로 둔갑하게 된다. 그들은 세상과 타인도 그런 궤도에서 움직인다고 믿고 있기에 그들에게 어설픈 연민이나 섣부른 훈계는 더 큰 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 그들은 자신과 타인, 사물의 실체나 진실을 알아볼 수 없는 시각과 태도에 오랫동안 길들여진 탓에, 그들이 동조할 수 없는 타자의 바른 잣대는 그들에게 불청객이며 증오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에게 이성적 행위, 사리 분별에 따른 반응, 상식적 기준의 정서적 공감 등은 이미 불가능한 일이며, 상식을 망각한 채 살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런 일반적인 준거에 의한 기대는 헛된 희망이 된다. 주위에 이런 부류의 인류가 존재한다면 먼저 당신 자신을 보호할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파괴적인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 이때에 긴급히 에포케(판단 중지, 판단 보류)를 사용해야 하고, 그 상황이 단기적이라면 최대한 피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보내는 타인의 부정적 반응에 대해 매우 공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상황이라면 그 인물에 대해 경계하고 주의해 헌다. 주변의 여론을 참고하고 관계있는 이들의 의견과 조언을 고려하여 대응책을 준비 필요가 있다. 정신적 장애가 있는 자를 무방비로 대응하는 것은 서로에게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뜻밖의 순간에 뇌관을 건드려 폭발하는 히스테리의 파편을 맞을 수도 있거나, 무고한 누군가가 희생양의 제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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