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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phim Feb 08. 2023

사진과 기억력

일상의 기록, 시간의 재현


평소 사진을 즐겨 자주 찍는다. 매우 자주, 전문 포토그래퍼들이 대상에 대한 목적을 명확히 전제하고 다양한 전문 기술을 장착하여 멋있고 황홀하며 많은 이들의 감탄을 불러일으킬만한 작품들을 탄생시킨다면, 나의 사진들은 일상에서 사진에 담지 않으면 별 의미와 흔적 없이 사라지는 지극히 소소한 일상적인 풍경들을 많이 담고 있다.


매우 단순하고 정말 아무 의미 없을 것 같은 풍경들이 작은 카메라에서 나만의 각도와 나만의 프레임으로 독특한 이미지와 색감과 풍경으로 담겨진다.


그 시각에 그 장면과 나와의 대화가 녹아있다. 같은 하늘을 보았지만 내 눈과 내 사진에 담긴 하늘은 더 파랗고 더 높고 더 화창하기도 하고, 어느 날 같은 공원을 거닐었지만 내 시선에 와닿은 오솔길과 그 분수와 그 낙엽잎들이 더 우울해 보이기도 한다, 그 사진 속에서...


포르토, 시티 파크


내가 카메라 셔터를 열지 않았으면 영원히 미지의 시간으로 사라졌을 어떤 기억들이 사진 속에서 살아있다. 그날 그 사진을 을 때의 마음과 느낌도 그 사진 속에 묻어있다.  대체로 즐거운 날 사진을 찍게 되지만, 우울할 때도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사진의 풍경들을 보며 기분이 나아지기도 한다.   


사진을 오랫동안 많이 찍어왔는데, 최근에 깨닫게 된 게 하나 있다. 사진은 그날그날 날짜별로 사건이나 장소를 기록해 핸드폰 포토 앨범에 날짜별로 정리하는데, 정리하면서 사진 속 장면을 다시 보게 되고 그러면서 당시의 사건들과 그 장면들이 무의식 중에 가지런히 새겨진다.


그리고 또 며칠 후 다시 핸드폰 메모리 정리하며 보게 되고,,,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사진이 기억력을 강화시켜 준다는 것을, 잊을 만하다가 또 보면서 "아, 그날 이랬구나!"


평소 기억력이 좋은 편에 속한다. 학업도 기억력 덕을 많이 봤고, 부부싸움도 많이 유리하다. "모일 모시에 이런 말 했잖아!, 왜 지금 아니라고 하지?" 돌아온 답변은 "뭘 그걸 다 기억하냐고!" 그럼 70%는 이긴 거다. 이긴 싸움도 내 잘못은 30%쯤 있을 테고... 그럼에도 나이가 들면 좀 약해진다고 하는데, 잘 녹슬지 않은 기억력이 조금 신기하기도 했다.



며칠 전 남편과 가끔 가는 바닷가 산책로를 걷고 있었는데 남편 왈, 플라스틱 나무 산책로가 새로 생긴 것 같다고 했다. 거의 6개월 만에 온 날이었다. 그런데 내 눈엔 익숙해 보였고 난 이 산책로 예전부터 있던 거라고 했지만 남편은 절대 아니라고 했다. 새것처럼 상판이 깨끗해 보이기는 했다. 그래서 난 "아마 상판이 교체된 거겠지" 했는데 남편은 아니라고 없던 게 생긴 거라고,


그래서 예전 기억을 더듬어 봤다. 그리고 그 산책로 위에서 주변 풍경을 찍은 기억과 함께 그 사진의 장면도 떠올랐다. "저기 저쯤에서 이 각도로 그때 사진 찍어서 기억 나" 그 사진의 장면이 기억났다, 남편에게 또렷하게 "이 산책로 그때도 있었어. 상판이 새것으로 교체된 것 같아. 그 사진 집에 가서 보여줄게."


그러면서 문득 깨달았다. 나의 기억력이 약해지지 않은 이유가 어쩌면 사진일지도 모르겠구나. 더구나 구글에서는 친절하게도 매일 아침이면 몇 년 전 당신의 오늘 사진이 여기 있습니다 하며 핸드폰 화면에 띄워준다. 그 많은 사진들을 구글에서 잘 저장해주고 있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사생활 침범이라고 막아야 하나, 아직 결정하지는 못했지만,,,


어부의 마을 골목길


사진 자체가 장면을 통으로 기억하게 해 주겠지만, 사진 찍을 때 빛이나 각도 그 내용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므로 뇌에서 더 오래 기억할 것이다. 일상의 일들이 모두 기억된다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 일상의 기억을 오래 유지하고 싶다면 작고 소소한 장면들을 사진에 담아보면 어떨까,


물 흐르듯 손가락 사이로, 의식 넘어 멀리 사라지는 시간파편들을 나만의 간으로 저장해 놓을 수 있다. 사진의 저장은 단순한 기억의 저장이 아니다.


사진을 찍는 나의 주관적 시선과 장면 선택을 통해 편집이 이미 들어가 있는 그 시선으로 담기며, 그 사진은 그 시간을 나의 것으로 편집한 창작물이다. 객관적 사진이란 없다. 사진은 그 사진 작가만의 선이며 세상이며 그만의 유일한 해석이다.



말로 다 할 수 없을 . 글로 다 쓸 수 없을 때, 사진은 내 시간과 내 공간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게 해준다. 그리고 기억력의 약화는 덤으로 막아준다.


 


사진 모두, 포르토 건너편, 빌라 노바 드 가이아, 포루투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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