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리옹에서 차를 가지고 왔다. 리옹에서 포르토까지는 1540km, 하루에 500km씩 운전하면 2박 3일 여정으로 올 수 있다. 지난 3월 이사를 계획하며 이사 트럭 출발 후, 우리도 자동차로 4박 5일 정도의 일정으로 프랑스 남서쪽 한두 도시, 스페인의 두 개 정도 도시를 지나서 여유 있게 오려고 했었다. 3월 이삿짐 포장하기로 한 그날 12시부터 코비드로 프랑스에서 통행 제한이 실시되면서 이사는 연기되었고 우리는 전날 급하게 예약한 오전 항공편으로 프랑스를 빠져나왔다. 리옹과 포르토는 평소 두 시간 비행이면 닿을 수 있는데 전날 항공편이 없어 리스본으로 경유하고 대기 시간도 길어서 12시간 걸려 포르토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다 잠시 생각하니 그날 긴 여정을 하며 알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공포감에 몹시 긴장하며 한밤중에 포르토 아파트에 들어서서 황망했던 기억이 함께 떠오른다. 그리고 포르토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포르투갈에도 통행 제한이 시작되어 텅 빈 아파트에서 남편과 감금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러다 포르토에 어렵게 도착한 그날의 긴장감과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고 무엇도 할 수 없던 상황에서의 무력감과 공포감을 덜어내고 벗어나기 위해 글을 쓰게 되었고 그 글을 다시 읽어보고 마음을 다독이다가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하게 되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6월까지 열심히 몰입하는 동안 3개월 간의 우울했던 시간을 견디어 낼 수 있었다.
7월에 통행 제한이 풀리며 첫날 리옹으로 날아가 가까스로 코비드를 뚫고 이삿짐은 트럭에 실어 보내고, 이 상황에서 자동차 여행은 엄두가 나지 않아, 차는 리옹 공항 주차장에 장기 주차를 해놓고 우리는 다시 항공편으로 포르토에 돌아왔다. 현재에도 프랑스와 스페인 포르투갈에는 여전히 확진자 수가 증가하고 있어, 프랑스와 스페인을 지나 포르토까지 차를 몰고 오는 일이 내키지 않았지만, 더 이상 미루다가 다시 통행 제한이 올 수도 있을 것 같아 9월 초에 픽업하러 갔다.
돌아오는 여정은 하루에 약 5백 킬로씩 2박 3일로 단축하여, 프랑스 Perigord, 스페인 Llanes를 거쳐 포르토로 돌아오는일정을 계획하고, 코비드 감영 지도를 참고하여 비교적 감염자 수가 적은 지역의 고속도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길지 않은 3일간의 여정이지만 식사 해결이 걱정이었다. 남편은 틈틈이 레스토랑을 가자고 했지만 나는 처음부터 "그건 안돼", 무조건 3일간 휴게소에서 샌드위치만 픽업해서 한적한 공원이나 차 안에서 먹는 걸로 하자고 강력히 주장하였고 그 결단은 현실이 되었다.
정말이지 3일 간 9끼의 식사는 호텔에서 조식 한 번 빼고 너무 허접하게 해결하게 되어 무척이나 허기진 여정이 되었다. 1주일이 지나니 이제야 그 허기가 좀 가시는 것 같다. 엄살이 아닌 것이, 그 허기가 더 허기졌던 건 감염의 두려움 때문에 샌드위치 사러 들어서서 그 줄에 잠시 서 있는 동안에도 메뉴를 고르기보다 사람을 피해야 하거나 주문하는 동안에도 조심해야 하고,,, 등등 계속되는 그 두려움과 조심스러운 몸짓들의 긴장과 피로감이 겹쳤기 때문일 것이다.
페리고 호텔 앞 호수
리옹으로 가는 비행기는 꽉 차서 갔다. 유럽에서 바캉스 시즌이 막 끝나고 이동하는 여행객들이 아직 공항에 많았다. 마스크들은 착용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불안한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유럽 내에서 유로 존 거주인들은 항공편 이용이 비교적 자유로워졌지만 7월부터 귀국 구역에 검사 창구들이 생겨서 전에 없던 출신지 국가를 체크하고 있었다. 리옹 공항에 내리니 프랑스에는 여전히 높은 감염자 수처럼 그들의 느긋하고 무심한 듯 마스크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공항 내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사서 차 안에서 먹기로 하고 음료수와 디저트까지 구성된 세트메뉴를 좀 넉넉히 사서 차에 실었다. 한인 마트에 들러 김치와 장류를 사고, 포르투갈 리옹 영사관에 일이 있어 잠시 들렸다 나오니 오후 네시가 다 되어 출발하게 되었다. 리옹에서 Perigord 페리고까지는 440km, 4시간 반 정도 걸렸고 밤 열 시가 넘어 도착했다.
첫날 묵은 페리고는 프랑스의 중세 도시로 관광과 휴양지로 인기가 제법 있는 곳인데 9월 초에도 아직 여행객들이 좀 있는 것 같았지만 도착해 보니 다행히 많지는 않았다. 프랑스에서 가보려고 했던 곳인데 마지막에 잠시라도 들리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초행길에 국도에 전등이 없어 밤눈 어두운 남편은 운전하며 힘들어했다. 그리고 타이어에 공기를 넣으라는 자동차 메시지대로 에어를 넣고도 한동안 타이어 압에 대한 경고 메시지가 계속 사라지지 않아 타이어 구멍이라도 생겼을까 걱정하며 밤길 운전하는 동안 마음을 졸이고 왔다.
오랫동안 세워두었다가 운전해서였는지 아니면 오는 동안 열을 많이 받아서 전자 시스템이 에러가 났는지,,, 오는 내내 조심하느라 허기와 긴장으로 피로가 두배가 되었다. 다음 날 다행히 경고창이 사라지고 차는 정상대로 운행되어 둘째 날은 한결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페리고 호텔 전경
페리고의 호텔은 작은 호수를 앞마당에 두고 있는 깨끗한 3층 주택이었다. 객실 시설도 깔끔하고 편리했다. 다음 날 조식 식당에는 네 커플 정도를 볼 수 있었고 거리를 둔 테이블들에서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아름다운 정원 풍광을 음미하며 커피로 마무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 신속히 먹고 부지런히 빠져나왔다. 그윽한 호수 정원의 풍치를 뒤로 하고.. 전날 밤 페리고 호텔 거리에 들어서며 우아하고 장엄한 대성당의 전경을 볼 수 있었지만 방문할 수는 없어서 그냥 눈으로만 멀리서 바라보았다. 고즈넉하고 조용한 도시 분위기가 편하게 느껴져 2,3일 정도 머물고 싶었다.
페리고 호텔 전경
둘째 날은 비교적 감염자가 적은 스페인 해변 지역의 고속도로를 이용했다. 도로에는 차도 사람도 거의 없었다. 자동차 여행 때는 약 1시간 반 정도 운전 후에 휴게소에 들르는데 프랑스나 대개 유럽 지역의 고속도로 휴게소는 이용하기에 큰 불편은 없는 편이다. 프랑스나 몇몇 나라는 화장실 이용료를 받고는 있지만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은 무료이고 시설도 잘 되어 있다. 그동안은 장거리 자동차 여행 때에는 아침에 호텔 조식을 먹거나 간단히 샌드위치를 먹고 10시경 출발하여 오후 1,2시경 레스토랑이나 뷔페 카페테리아가 갖추어진 휴게소에 들러 늦은 점심을 든든히 챙겨 먹고 다음 행선지에 들러 관광하고 저녁은 목적지에서 가볍게 먹거나 특별히 미식이 있으면 정식 레스토랑을 방문하는 식으로 여행했었다.
이번 여정을 계획하며 식사가 걱정되었던 대로 매우 불편한 여행이 되었다. 식당이 갖추어진 휴게소에 들러 메뉴도 주문할 수 있었고 식사하고 있는 여행객들도 많지 않았지만 어디에 들러도 쉽게 무엇인가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큰 휴게소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서 엄두가 나지 않았고, 작은 휴게소는 개점휴업 중인 어정쩡한 분위기에 딱히 주문할 것이 없었고, 예상한 대로 첫날처럼 샌드위치 세트메뉴를 사서 도망치듯 나오서는 재빨리 차에 올라 알코올로 손 씻기에 바빴고, 그다음은 한적한 공원 휴게소에 들러 잠시 주차한 채 식사를 마쳤다.
순식간에 주문을 하고 재빠르게 벗어나서 사람 없는 곳을 찾아 빨리빨리 먹고... 아 이것이 무슨 풍경이람... 역병으로 여행도 불가능해졌지만 살짝 하는 여행도 전혀 여행의 기쁨이나 낭만이나 즐거움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모든 주의력은 감염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집중되었다. 먹는 즐거움이 사라지니 자동차 여행은 그저 이동을 위한 힘든 운전 노동이었다. 옆에 있는 나의 허기도 컸지만 운전하는 미식가 남편은 당연히 더 힘들었을 테고.
Llanes 라네스 호텔과 객실 테라스
둘째 날에는 스페인의 Llanes 지역에 있는 호텔에 묵었다. 해변가 지역은 아직도 인파가 있어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예약했는데 여행객들이 꽤 있었고 부근 수퍼마켓에 들르니 장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피로를 달래 줄 과일과 음료수와 생수를 사고는 폐점 시간 직전에 역시 부리나케 빠져나왔다. 호텔은 스페인 양식으로 멋스러운 느낌이 좋았고 넓은 마당에 잔디와 정원이 잘 가꾸어져 있었고 시설도 괜찮았고 사이트에서 평점도 좋았는데, 시트에서가려움이 있어서 청결도에는 확신이 가지 않았다. 객실 내에 테라스가 아담하게 꾸며져 있어서 잔디가 잘 정리된 푸른 정원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조용하고 차분한 풍광에 긴장감과 피로도 좀 덜어낼 수 있었다.
셋째 날 아침에 호텔 조식을 먹으려 했으나 여행객이 꽤 많았고 어제의 가려움으로 불신이 들어 근처 카페에서 사 온 샌드위치를 먹고 일찍 출발했다. 포르토까지 500여 km 달렸고 도중에 휴게소는 세 차례 정도 들러 식사 거리를 사고 가솔린을 채우고 공원 휴게소 찾아 식사하고 휴식하며 전날에 비해 큰 피로감 없이 올 수 있었다.
스페인 어느 고속도로의 풍경
배고픈 3일간의 여행이었다. 돌아와서 1주일 정도 휴식하며 열심히 먹으며 기력을 보충하고 있지만, 이사와 공사 마치고 이어지는 긴장감 속에서 잠시 다녀온 여행은, 달리는 차 안에서 달리는 것 외에 별 활동이 없었음에도 그리고 굶지 않고 자주 샌드위치를 먹었지만 허기지고 무척 피곤했다. 평소대로 먹거리를 챙겨서 편하게 먹을 수 없는 것만으로 힘 빠지는 일이었고, 적절한 식사의 결핍이 3일간 지속되는 것은 내게 매우 무기력해지는 일이었다.
종교인들의 며칠 씩 이어지는 단식기도는 내게 영원히 불가능한 영역일 것 같다. 그래도 샌드위치라도 먹을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전염병 속에서 3일 간 무사히 잘 다녀왔음을 감사히 여기며... 이제 허기도 피로도 좀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