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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phim Apr 30. 2020

'존재의 기억'

8년 7개월의 초상




그녀가 엄마의 소명에 헌신할 수 있었던  8년 7개월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지만 기억이 소멸되기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예비 기간 10개월까지 포함하면 9년 7개월쯤 되겠지만, 그녀는 예비 기간에도 담담히 자신의 삶을 위해 노력하고. 늘  그대로 열심히 열심히,,, 살았다. 그건 그녀가 익혀온 삶의 방식이었다. 그저 매일 나태 없이 사는 거... 더 잘 먹을수록 좋은, 예비 엄마 시기에도 그녀는 먹는 것보다 뭔가에 몰두해 있는 게 다반사였다.


그래서 아이는 많이 허약했다. 그녀도 건강 체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큰 탈 없이 성인은 되었으나, 그녀는 아이를 키우며 체력의 저력을 깊이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한 번씩 아프면 아이와 남편을 위한 것들을 감당해내지 못해 무척 힘겨워했다.


그녀보다 더 자주 아팠던 아이를 보며, 그녀는 아이가 언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늘 안고 살았다. 감기 들어 힘들어하는 아이가 숨을 잘 쉬고 있는지 밤새 방을 드나들며 확인하느라 자주 조바심 속에서 지냈다. 최강의 건강과 체력을 지닌 남편은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세계에서 그녀는 살고 있었다. 한 집안에서 서로 이해하기 어려웠던 두 세계는 그렇게 공존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공존의 술을 익히기엔 너무 이기적이었고, 어렸기에 어리석었으며, 각자 단단한 자존심의 틀에 갇혀 있어 그녀와 그는 자주 크게 충돌했다. 아이를 배려하지 못한 채, 아이 앞에서 험한 상황도 드러냈다...


아이는 허약한 중에도, 부부의 장미전쟁 중에도,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잘 성장해주었다. 7살부터인가 저녁 뉴스를 보며 시사 문제를 얘기하거나 우리와 토론? 같은 걸 하길 좋아했다, 손주를 자랑스러워하시던 시아버님이 시어머님과 어느 날 미국인과의 모임에 이 꼬마신사를 양복 입혀 대동하고 가셨다. 아버님이 양복 입히자 하셔서 처음 꼬마 양복을 사느라 그녀는 백화점을 뒤지고 다녔다,


당시 미국과 국가적인 현안으로 양국이 옥신각신하고 있었던 때였는데, 미국인이라고 소개받자 이 꼬마신사 대뜸 "당신네 나라는 크고 부자인데  당신 나라보다 약하고 가난한 우리나라에게 힘들게 요구하냐고", 물론 우리말로 다그쳐서? 시부모님 두 분이 매우 기특해? 하셨다는 일화는 아이가 남겨준 아름다운 에피소드들 중 백미였다. 아이의 기특한 에피소드들이 늘어갈수록 그녀의 욕심도 커졌다. 아이를 훌륭하게 잘 나게 키우려던 욕망 앞에서 그녀는 그 아이가 허약하게 태어났다는 걸, 자주 아프다는 걸 잊어버렸다.


그녀가 허약했지만 큰 질병 없이 무사하게 성장한 것처럼 그녀는 아이도 그렇게 크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가 미처 몰랐던 게 있었다. 그녀 엄마는 그녀 잘 되라고 이것저것 시키지 않았다. 물론  5남매의 엄청난 성장 전쟁터에는 그런 여유도 형편도 안되었다. 그녀는 공부하기를 좋아해서 눈과 코에 자주 불편을 달고 살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녀의 엄마에게서 "공부 그만하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었다. 


사람 사는 일은 책에 안 쓰여 있었다. 공부와 책에 파묻혀 살던 그녀는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교와 좋은 명예와 괜찮은 남편을 만났지만, 좋은 엄마가 되는 건 한 번도 공부? 해 본 적이 없었다. 교육학, 심리학의 온갖 뛰어난 이론들을 잘 장착하고 있던 그녀에게 이는,,, 제물이 되어버렸다.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차마 말할 수도 없다. 미안하다는 말로는 너무 충분치 않으니까, 


환자의  무의식도 의식도 정지되고 먹거리도 필요치 않은 정적과 기계 장치의 신음소리만 돌아가던 그곳에서 아이는 45일을 머물다 떠났다.  그녀는 오전 오후 2 차례 침묵과 고요 속에서 잠들어 있는 아이를 소독면으로 닦아주는 것 외에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봄의 중턱에서 여름이 절정이던 그날까지, 그리고 의사가 그날 말했다.  이제 보내주자고, 그게 아이를 마지막 위하는 거라고...


힘들어도 아침이면 학교 가야지 소리에 어렵게 일어나서 학교 갔다가 환하게 웃고 들어오던 아이, 영어 학원 셔틀버스 타면 재미없다고 혼자서 학원부터 여기저기 헤치며 신나게 집에 걸어 돌아와서, 아이 마중 나갔다가 아이 없던 학원버스 보내고 황망히 기다리던 그녀를 멀뚱하게 하던 아이, 인간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늘 궁금했지만 "존재는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는 걸", 그녀는 아이가 떠나고 알았다. 아이와의 이별로 그녀는 우울증과 오랜 시간 함께 살게 되었다.


그래도 언제부턴가 우울하다고 우울증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어서 그녀는 좀 편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녀는 자주자주 우울증과 씨름하며, 거기에 매이지 않으려고, 차갑고 고요한 수면 아래에서 발길질하고 있다.  공부하면서, 글쓰기 하면서, 그녀는 그 울타리에서 빠져나오는 법을 지금도 하나둘씩 익혀가고 있지만, 자신에 대한 용서는 여전히 쉽지 않다.


공부도 여행도 그녀는 자신이 하는 것들이 아직도 슬픔의 망각을 위해서, 슬픈 기억으로부터도피로서 머물 때가 많아 뭔가를 마치고 나면 늘 아쉽다.  그때 좀 더 열심히 했으면 좋았을 텐데,,,,그래도 그녀는 차츰 적과의 공존하는 기술도 익히며 "브런치"에 초대도 받았다. 그녀는 이제 울타리를 나와 브런치 하우스에 틈틈이 산책을 다닌다. 방관과 방황이 머물던 곳에 그녀는 작은 오두막도 짓고 브런치에 작은 오솔길도 만들고 있다. 


그 오솔길에는 차 끓는 향기도 나고, 아담한 나무 벤치도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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