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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phim Jun 07. 2020

'끝나지 않은 여행'

일상도 아니고, 여행도 아닌



*2020, 6월 7일.


일상인 듯, 여행인 듯, 일상도 아니고 여행도 아닌 하루하루가 6개월이 되었다. 작년 11월 중순 포르토에 이주를 준비하기 위해 약 10일간 일정으로 두 번째 방문을 왔었고. 필요한 절차들을 진행하다 보니 부**컴에서 예약한 숙소를 10일 더 연장하며 그 숙소에서 20일을 지냈고, 그래도 또 남아 있는 마무리 과정을 위해 다른 임시 숙소로 옮겨서 두 달을 지냈다. 코로나 소식이 시작되던 2월 리옹에 가서 이사도 하고 나머지 일들을 끝내려던 찰나 3월 17일 통행제한으로 급하게 몸만 빠져나오면서 겨우 봄까지 정도의 옷가지만 챙겨 왔다. 곧 돌아가서 정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처음 숙소와 임시 숙소까지는 여행자를 배려한 생활필수품이 다 마련되어 있어서 몸도 마음도 크게 피곤한 줄 몰랐다. 그런데 기본 주방 시설과 거실 한가운데 원탁 테이블 하나와 의자 네 개, 방들엔 침대 두 개가 살림살이 없는 아파트에서의 생활은 청소나 정리의 수고가 없는 대신, 평소 일상에서 당연히 누리던 기본적인 편리성이 박탈  낯설고 불편한 생활이었다. 자잘한 것들에서 해방된 자유와 동시에, 소소한 것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일상의 안락함이 사라 일상도 아니고 여행도 아닌 어색하고 물리적으로 매우 피곤한 일상이었.


체스키크롬로프


침대 옆에 협탁이 없어 조그만 플라스틱 의자에 핸드폰과 태블릿을 올려놓아야 하고 사용할 때마다 허리를 굽혀야 해서 디스크도 신호 보내고, 20도가 넘는 날씨에 두께 있는 긴 팔을 옷을 입어야 고, 30도 넘는 한낮 산책길에 2월에 따뜻하게 신고 온 발목 부츠를 후끈하게 신고 걸어 다니고, 목폴라 티셔츠로 뜨거운 태양볕을 몸에 저장한 채 산책하니, 가볍게 반팔 입고 시원하게 다니는 이들이 살짝살짝 훔쳐보고,,,


3월부터 시작되어 3개월 즈음에 이르니, 작은 불편도 참지 못하고 매우 짧은 인내심과 필요한 건 지체 없이 구비하던 삶의 허상들이 보였다. 꼭 있어야 할 것도 조금 시간이 지나 보면 그럭저럭 그것 없이도 해결되기도 했고, 못 견딜 것 같이 불편한 것들도 이삼일 지내고 보니 그렇게 큰일 날 만큼 불편한 것도 아니었다. 하루 중 얼마간 정리하며 가벼운 운동 정도로 소소하게 흘려보냈던 시간들도, 식탁에 앉아 글 읽고 글 쓰며 보내니, 결코 적은 시간들이 아니었다. 




리옹 옷장의 봄 여름옷들에는 먼지가 쌓여갈 텐데 우리 둘은 지금 초겨울? 초 봄쯤의 옷으로 땀 흘리며 견디고 있다. 3개월 전의 나는 벌써 반팔 옷 사러 나갔겠지만, 이제 좀 견딜 수 있게 되었다. 3개월 동안 인내심도 굳고 생활비 굳어서, 절약정신 투철한 남편도 good 해졌다. 그리고 30도까오르던 날씨도 도와주는지 이번 주엔 20도 내외로 상쾌한 바람과 함께 시원해져서 하느님께 정말 감사드리고 있다. 이곳도 다행히 6월 1일부터 일반 상가와 생활 편의 시설들이 오픈되어 필요한 것들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고, 유럽 내 비행기들이 7월부터 정상 운행되어, 7월 초 리옹행 티켓을 예약했다. 한 달 후면  이삿짐도 실려와서 다시 예전의 편리한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단촐하다고 할 수도 없는 매우 초베이직한 이 시간은 인생에서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무척 불안하고 불편한 경험이었다. 가을이면 지난봄과 여름의 지극히도 간소했던 생활이 소설처럼 허구로 느껴지겠지만, 아무런 예고없이 벼락같이 찾아와 어떨결에 체험하게 된 '미니멀 라이프' 이 곳에서 새롭게 해야 할 생활의 이정표 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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