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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phim Nov 05. 2020

태만한 익숙함,

인생은 배틀이다.

2020, 11, 04, 수요일


포르토에 온 지 1년이  되었다. 프랑스 생활을 정리하고 유럽에서 계속 살기 위해 마땅한 곳을 탐색하다가 선택한 곳이었다. 사전 답사를 하고 정착하기 위한 절차들을 진행하고 프랑스와 서울을 오가며 준비하던 중에 코비드 상황이 발발했고 새로운 생의 계획을 준비하면서 가졌던 긴장감과 더불어 그 전염병의 소식은 초반부터 크게 다가왔다. 세계적으로 전염자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언제 끝날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 백신이 곧 완성되면 다시 예전의 자유를 되찾을 수 있을까?  제한적인 움직임으로 덕분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자신과 씨름할 수 있는 시간이 넉넉해졌다. 외출이 늘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외부 환경과 사람과의 접촉을 기피하고 외부에서 주어지는 무수한 자극들에 어쩔 수 없이 거리를 두면서 자신으로 향할 수 있는 시간이 여유로워졌다.



그런데 가족들과 늘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도 고역이지만 자신과의 씨름도 쉽지는 않다. 좀 우울하면 잠시 툭 털고 가벼운 외출로 기분을 전환하거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도 없다. 묵묵함, 단순함이 더 긴요해지고 있다. 지루함을 견디면서, 자신과 곁에 있는 주변인들을 속속들이 알게 되는 고되고 답답한 시간들에 압도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견뎌내야 할까?  


저녁에 잠들기 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오늘은 이렇게 하루 어찌어찌 보냈는데... 내일은 또 어떻게 하루를 살아내야 할까? 어떻게 하루를 잘 살아낼 수 있을까 하며 막막함이 밀려오거나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너무 힘들게 느껴질 때가 틈틈이 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리고 찬바람 부는 겨울로 향하면서 잠잠하던 우울증이 다시 꿈틀거리며 올라온다. 온라인에서 한글 성경 쓰기가 익숙해지면서 속도는 빨라졌지만 흥미는 반감되어 영어 성경 쓰기를 시작했다.


포르토에서는 영어가 공용어여서 다시 영어 수련? 에 돌입하고, 그동안 입에 익숙해졌던? 프랑스어와는 당분간 거리를 두고...  11월 들어서며 우울증에 잡혀있지 않기 위해 좀 어려운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가톨릭 수도자들이 하는 성무일도( Liturgy of  hours) 기도 중에 독서기도(Office of readings) 항목에는 교부 학자들과 성인, 성녀들의 글들이 실려있는데 영문으로 읽으면 영어 공부의 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 같아 매일 읽고 있다. 이 글들 속에는 일생 동안 신앙 속에서 신을 탐구하고 자신을 수양하기 위한 노고의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 있다.  



그래서 시작했다. 삶을 낭만으로 보지 않고 배틀, 전투로 보기로 했다. 연극으로 보지 않고 매일 살아내야 하는 전투로 생각하기로 했다. 우울증에 패배하지 않는 하루, 자만과 교만과 오만에 점령당하지 않는 하루, 무지와 어리석음과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는 하루, 나태와 나쁜 습관의 노예가 되지 않는 하루, 착각과 헛된 욕망과 무식함에 의해 판단 오류를 범하지 않는 하루, 시간을 그냥 흘러 보내지 않는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는 성실한 하루, 이런 하루들을 만들기 위해 자신과 전투를 시작했다. 나태함도 교만도 무지도 우매함도 자신 안에 차 있는 그 모든 것을 한 번에 비워낼 수는 없지만, 매일 마주하는 못마땅한 자신을 보는 것이 매일 전투의 시작이다. 내가 이 정도인 것을 알고 시작하는 날은 전투도 비교적 쉽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그릇된 판단과 오해에서 시작된 날은 교만에서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자신의 무력함과 어리석음을 그대로 파악하고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것은 무척 어렵다. 일단 우리는 자신을 생각보다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많이 알고 있다고, 다 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자신을 잘 모른다는 반증이다. 그래서 매일의 삶은 자신과의 전쟁이다. 전쟁에는 병법이 필요하고 제1 병법은 자신에 대한 이해이다. 이해하려면 자신을 탐색해야 하고 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왜곡 없이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과장 없이, 변명 없이, 합리화 없이, 자신을 잘 들여다보기는 외부 자극과의 거리두기보다 더 어렵다. 자신의 모습이 미약해 보일수록 위안이 될 만한 외부 자극은 더 잘 보인다. 그리고 익숙한 것들이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방해한다.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그저 꼭두각시놀음으로 끝날 위험이 크다. 자신의 영혼이 병들어간다면 그건 자신의 삶 속에 정작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해 사는지도 모른 채, 누군가의 피에로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자신이 누군가의 대역으로 살고 있는데, 자기 인생을 사는 것으로 착각하며 허무와 허세와 허영의 널뛰기 판에 도구가 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아침에 세수를 하고 아침 기도를 하면서부터 나의 전투는 시작된다. 오늘도 어리석음과 아집과 무지의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지혜와 슬기와 깨달음을 달라고 청원하며 기도를 마치고, 거울을 들여다보며 오늘 하루도 게으름과 악한 습관들과 오만의 노예가 되지 말자고 다짐하며 영어 성경 쓰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저녁이면 오늘 못다 한 미션을 내일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잠든다. 삶의 이 전투가 며칠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억하는 한, 기력이 있는 한 나는 이 전투를 매일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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