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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phim Oct 01. 2020

나태와 부패의 시작,

코비드 적응 일상 만들기

2020. 9월 30, 수요일.


여전히 1 주일에 한번 마켓 장 보러 가는 것 외에 외출이 거의 없다. 나가서 좀 다녀보고 싶지만 불안함 때문에 점점 몸을 사리게 된다. 대부분 하루 종일 집에서 보내는 긴 시간을 짜임새 있게 보내는데 집중해야 할 것 같다. 마냥 펼쳐진 자유로운 시간들이 나태와 태만으로 별 의미 없이 날아가지 않도록 집 안에서 하나둘씩 뭔가 꾸준히 매일 하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 필요한 때인데 마치 밖에 외출이 없으면 할 일이 없는 것처럼 생각된다. 돌아보니 집에서 독서와 공부 외에 지속적으로 해온 영양가 있는 활동이, 어쩌다 요리 외에, 거의 없다는 것이 새삼 놀랍기도 하다. 항상 외부의 환경들과 연계하여? 생활하고 있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긴 한데 뭔가 부족했다는 느낌이 밀려든다.


 공부를 오랫동안 해와서인지 공부를 안 하고 있는 요즘엔 한가하게 놀고? 있다는 자의식 같은 게 불쑥불쑥 올라온다. 그냥 편하게 유유자적하면 안 되는 건가? 한국인의 '근면병'이라고 좋은 이름 붙여주고 그 원동력으로 오늘날 한국의 성장이 있었다고 위로해주고 그 뺑뺑한 끈에 탄력성을 넣어 조금 느슨하게 해 보기로 한다. 부지런하고 열심히 사는 한국인이니까, 건강한 한국인의 피가 여전히 잘 흐르는 거라고, 그 속도와 밀도를 조절해보면 더 근사할 거라고 하자.



주변 일들이 좀 정리되면서 최근에 인터넷 굿뉴스 사이트에서 "개인 성경 쓰기"를 시작했다. 성경을 전체 통독하는 "성서 백주간"(방학, 휴일 등 제외하고 1년에 약 35주간 거의 3년 정도 백주간 동안 성경을 읽고 멤버들이 1주일에 한 번씩 모여 묵상 나눔을 함.) 프로그램을 두 번 하면서 성경은 많이 읽었는데 성경 필사는 해 본 적이 없어서 써보고 싶었다. 온라인 굿뉴스 사이트에서 개인 성경 쓰기 메뉴가 있었다. 편한 시간에 아무 때나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면 하루에 약 두 세장, 60, 70절 정도는 쓸 수 있다. 8월 3일에 시작했다고, 현재, 2,327절 /35,567절 (6.54%)을 썼다고, 개인의 진도와 속도도 데이터로 보여주고... 종이 노트에 펜으로 쓰는 필사가 좋을 것 같기는 한데 컴퓨터의 편리함을 포기할 수 없다.


구약성경의 지혜서부터 시작했다. 장수가 적어 처음에 부담없이 쓸 수 있다. 사이트에서 개인 데이터를 보니 지혜서 19장 436절을 8월 23일에 마쳤고, 그다음엔 잠언서 31장 915절을 9월 13에 마쳤다고 친절히 나와있다. 현재는 집회서 51장 중에서 40장 정도 쓰고 있다. 개인별 데이터를 볼 수 있는 건 흥미로운데, 메뉴를 살펴보니 참여자 수, 진도, 속도, 순위까지 있었다. 참가자 수나 진도, 속도는 나름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성경 쓰기에 왜 순위가 있어야 하나 잠시 의아했다. 등수 매기기 한국병의 실례인가? 기획자의 의도를 잘 모르니 지금 단정 지어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생명의 양식이요, 영혼의 생수"인 성경 쓰기에 순위가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프로그램 기획자에게 물어보고 싶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쓸 수 있도록 배려된 프로그램 개발은 매우 유익하다고 여겨지는데, 성경 쓰기에서 굳이 순위 매기기 메뉴는 없어도 좋을 것 같다.  



*튜브 화면이 배경으로 돌아가고, 손은 자판에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눈은 화면과 컴퓨터를 번갈아 왔다 갔다 하며 맘에 박히는 구절은 반복해서 읽어보고... 규칙적으로 하는 것으로 만들어 놓으니 조금 게으름을 막을 수 있기도 하다. 요즘 *튜브에서 "내 친구의 집"을 보며 여행의 대체재로 즐기고 있다. 다녀온 곳은 추억을 회상하며 안 가본 곳은 언젠가 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6,7명의 핸섬? 가이들의 유쾌 상쾌한 스토리가 무겁지 않아서 좋고 다양한 도시와 전원 풍경들이 배경 화면으로 펼쳐지면서 여행의 대리 체험을 맛볼 수 있다. 케이블 티브이의 *튜브 채널로 보니 회면이 크고 선명해서 흥미가 배가 된다. 그냥 집에서 한국 티브이 프로그램 보는 듯, 프랑스에 있으면서 가보지 못했던 곳들을 프랑스 편에서 화면으로 구경했고, 한국에서 최근에는 구경하지 못했던 한옥을 한국 사랑하는 미국인 마크의 집을 구경하며 반가웠고... 그의 한국 문화와 문화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며 고마움과 반성도 함께 하며...



삶에서 직접 체험과 다양한 경험을 하기 위해 열정과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었다. 여행도 직업도 공부도 독서도 취미도... 배움의 기회를 자주 가지며 삶의 지혜를  얻으려고 노력했다. 코비드 상황이 발생되며 처음에 손발에 족쇄가 채워진 듯한 갑갑함과 집에 갇혀 버린 구속감에 모든 자유가 상실된 것 같았다. 그리고 꽁꽁 갇힌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프랑스를 떠나며 여전히 묶여 있던 공부도 이제 끝내고, 포르토에 오며 더 자유롭고 경쾌한 삶과 그런 여행을 꿈꾸며 희망 가득 안고 왔는데... 아직도 삶이 작정한 대로 진행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이번 상황은 내 삶에도 대반전이었다. 이제 공부 안 하고 좀 편히 신나게 지내려 했는데... 다시 공부... 모드로 재정비하고 있다. 딱히 할 게 없어서 *튜브에 넘쳐나는 사람들의 활기차게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들과 다양한 크로스 학문들의 강의도, 신부님들의 영력 깊은 영성 강의도 듣고... 미사는 이제 *튜브로 매일 일과처럼 오전에 드리고, 그러고 보니 *튜브가 열일 해내고 있다. 미디어, 문명의 기술, IT 강국의 혜택에 꾸벅... 감사함이 차오른다.  



강력한 문명의 기술이 한편에서는 인간의 순수하고 진솔한 삶을 부패시키고 있고, 한편에서는 망가진 삶을 회복하도록 받쳐주고 있다. 인간의 삶과 인간 사회에서 발생되는 모든 일에는 동전의 양면이요 양날의 검의 속성을 숙명적으로 안고 있나 보다. 그렇다면 이를 이용하는 인간의 지성과 의지와 이성과 감성이 결국 모든 것의 핵심이며 관건인데, 항해의 고 있는 우리는 그 능력을 잘 활용하고 있는 걸까?


그동안 온갖 개념과 관점으로 나열되며 세상을 물들이고 줄 긋고 편 가르며 탐욕의 그물을 길어 올리던 삶의 구조들을 벗어나야 할 때이다. 할 수 있다고 다 해도 좋은 게 아니듯, 이제 걸러 내야 할 시간이다. 인간들의 능력이 무한대로 느껴지던 시기에서 이제 다시 인간 본연의 아름답고 겸손하며 절제된 모습으로 돌아가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위기는 언제나 기회이다." 인류가 부패하지 않고 다시 성장할 수 있는 반성과 성찰의 시간이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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