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유가 정말 가능할까? 과거의 아픔과 고통의 기억과 흔적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7월 1일 유럽 내 통행이 가능해지면서 혹시 다시 통행 제한이 밀려올까 봐 부지런히 리옹으로 달려가서 이사를 진행했고 그런 중에도 이사 계획이 다시 무산될까 마음 놓지 못하면서 2주를 초조한 마음으로 보냈다. 이삿짐을 받기까지 트럭이 프랑스 스페인을 지나 포르투갈까지 무사히 오기를 기다리고 예정보다 반나절 늦게 도착했지만, 곧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그리고 도착한 트럭을 보고서야 올 3월에 계획했다가 무산된 이사를 드디어 마무리할 수 있구나 하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7월 14일 잘 도착한 트럭에서 짐들을 내리고 새 아파트 구조에 맞게 이리저리 옮겨가며 내부 정리를 마치고 나서는 7월 20일부터는 거실과 방의 부분적인 마루 바닥 교체와 베란다 방수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 공사도 2월에 예정되었다가 7월에 하게 되었지만 6월에 서로 연락하며 7월에 공사를 시작해서 제대로 마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다행히 업체가 계획했던 일정대로 별 차질 없이 작업이 진행되었지만 사이사이 이견과 작업의 완성도에 대한 불신으로 실랑이가 있어 연기될 듯 하다가 다시 작업하고 약 25일에 걸쳐 마무리되었다. 공사 중에 일정이 맞지 않으면 그들은 계속 9월로 공사가 미뤄질 수 있다며 자신들의 일정을 잘 고수해냈고, 우리는 무조건 그들의 일정대로 맞춰주었다. 부디 잘 마무리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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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가 끝나고 가구에 덮였던 천들을 다 벗겨내고 또 옮겨졌던 가구들이 제자리를 찾고 이번에 정말 정리가 마무리되면서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제대로 나왔다. 이사와 공사는 끝났지만 이주를 위한 절차들은 그동안 삐그덕거리며 잘 진행되지 못하고 있어 여전히 마음속은 불안하고 코비드의 상황이 다소 안정되고 있지만, 한편 전혀 예상치 못했던 역병의 기습으로 일상이 마비되고 정체되면서, 그동안 깊이 가라 얹아 있던 내 트라우마들이 마구 뚫고 나왔다. 이사는 무사히 마쳤는데 또 공사가 한 달 넘게 심지어 중도에 멈춰지고 계속 지연되면 어떻게 하지, 이주 절차도 코비드로 중단되었다가 재개되고 있지만 또 중단되면...
5년 전 프랑스로 건너올 때는 유학이라는 타이들 속에 생활의 중요한 이슈들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학생으로 살면서 한 달에 주어지는 적은 비용으로 알뜰하게 사는 생활방식만 잘 지키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이 감사했고 그 생활의 여유와 검소한 호사를 잘 누리기만 하면 되었다. 프랑스에서 학생 신분은 크게 돈 들일 일이 없다. 학비 저렴하고 아파트를 임대하면 임대비도 보조해주고 버스비도 할인되고(28세 이하까지만) 소득이 없으면 매년 내는 주민세 세금도 면제해주고... 5년의 시간에 우리는 성인 생활인이 짊어져야 하는 의무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 금쪽같은 시간이 끝나고, 포르투갈로 이주를 계획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다시 일상의 생활인으로 복귀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5년간 면제되었던 그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 자유의 달콤함은 날아가고 압박의 고통이 시작되었다. 현실에서 살아가는 일들에서 꽤 오랜 시간의 휴가를 즐겼구나 하는 깨달음이 퍼뜩 드는 순간, 현실에서 해결해야 할 일들은 참 복잡해 보였다. 실상 크게 어려운 일들이 아님에도 조금 지체되거나 바로 해결되지 않으면 금방 초조해지거나 답답하거나 기다리는 시간들이 억만금처럼 길게 느껴지거나,,, 너무 편하고 안일한 상태에 길들여져는 지도 모른다. 예전에 서울에서 생활이라면 이런 정도는 새발의 피인데,,,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건가?..
요즘 정여울 작가의 강연들을 보고 있다. 그녀의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강의 내용들이 알차고 깊이가 있어 계속 보고 있는데 핵심 주제가 트라우마로 귀결된다. 문학과 심리학과 여행을 통한 그녀 나름의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분석해내고 파악하는 방식과 그 내용이 흥미롭기도 하고 깊이도 있고 재미와 의미까지 있어 계속 보면서 나의 강박과 불안 심리, 공황장애 등과 관련된 트라우마를 들여다보고 있다. 역병의 기습은 누구에게나 예기치 않은 사건이지만 똑같은 상황에서도 각자가 받는 충격은 모두 다르기에 일반화된 위기 상황일지라도 자신의 회복 탄력성이 빈약한 상태에서는 그에 대한 느낌이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녀의 인문학적 심리학적 지식과 소양과 탐색이, 요즘 불안하고 뭔가 불발될 때마다 치솟아 올라오는 거대한 불안감을 다독여준다. "당신의 트라우마에 잡혀 살지 말아요, 트라우마는 트라우마 일뿐이에요. 피하려만 하지 말고 그림자와 춤을 추세요."라는 그녀의 속삭임에 오늘 다시 용기를 내어 본다. 그리고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