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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phim Dec 15. 2020

공허한 허상,

에코, 심플 라이프가 관건이다.


2020, 12, 08, 화요일,


2020년이 저물어 간다. 오늘은 가톨릭 국가에서는 큰 경축일이며 휴일인 성모님의 무염시태 축일이다. 프랑스 리옹에서는 이때 빛의 축제, 루미에르 페스티벌이 열리고, 유럽 대도시 곳곳에서는 거리 행렬이나 축하 폭죽 등등 다양한 축하 행사들이 거행된다. 


코비드 재난으로 올해는 모두 침묵 속에 조용히 지나간다. 가톨릭 국가인 포르투갈은 성탄절, 부활절, 성령 강림절, 성모, 성인 축일 등이 오면 전날 불꽃놀이가 펼쳐지거나 큰 축일에는 축포를 쏘기도 한다.


이곳 포르토에는 특히 불꽃놀이가 자주 있어 전날 밤 12시경 불꽃이 발사되는 굉음이 울리면 아! 내일 뭔 축일인지 캘린더를 확인한다. 요즘엔 물론 공식적인 불꽃도 축포도 잠잠한 편이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개인들이 쏘아 올리는 작은 불꽃들이 적막으로 가득한 대기를 갈라놓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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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2일 토요일


매년 11월 둘째 주가 되면 프랑스 리옹 가톨릭 대학교 앞의 카노 광장에는  크리스마스 마켓 개장을 위한 준비가 시작된다. 가설 가게들이 조립되고 공원 중앙에는 놀이 시설이 설치되며 공원 한 켠에는 크리스마스트리용 전나무들이 어디서 잘 키워졌다가 싹둑 잘려와서는 무덤처럼 쌓여 있다가 마켓이 개장되면 하나둘 씩 팔려간다.


 화려하고 반짝이는 장식품으로 요리조리 잘 치장된 트리를 보노라면 크리스마스의 여러 추억들과 설렘과 기대가 함께 느껴지지만, 공원에서 끌려가는 싱싱한 채 잘린 전나무를 바라보는 느낌은 매년 편치 않았다.


인간들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가차 없이 도축되는 현대 이기적인 문명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올리브 노트 이미지

그래도 작년까지는 유럽의 여러 도시들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렸을 텐데 올해는 정말 적막하다. 겨울 추위에도 크리스마스 장식들과 크리스마스 마켓은 유럽에서 즐거운 겨울 풍경인데 유럽의 겨울 매력이 올해에는 훅 사라져 버렸다.


 모두 문 꼭꼭 걸어 잠그고 창문으로 눈만 두리번거린다. 어젯밤, 옆집에서는 정말 불타는 금요일 파티를 하는지 기타 반주에 고성과 야성의 음악으로 한밤을 시끌시끌하게 아파트를 흔들어 놓았다. "사람이 살아가고 있구나" 하며 실소가 나왔다. 그래 사람이 살아가는 소음이 있어야지, 시끄러웠지만 지금 저들은 즐거운 흥에 젖어 았겠구나. 나는 그 소음을 음악 삼아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정리하는 소음으로 한동안 쿵쾅 콩 쾅,,, 잘 놀았겠지, 나도 저렇게 즐거웠던 적이 언제였지, 유럽에 와서 너무 적적하게 지내고 있나 보다. 여행 다닐 때는 전혀 못 느꼈는데 팔다리 묶인 상태에서 타국 생활의 외로움이 여과 없이 터져 올라온다. 요즘은 거의 수도원 생활에 가깝다.


구글 이미지

유럽 생활 시작하며 길들인 습관이 몇 가지 있다. 프랑스에 오기 전부터 시작한 것은, 미용실 가지 않고 머리 셀프 손질하기, 단발보다 약간 긴 머리를 한 달에 한 번 정도 앞머리 뒤 머리 잘라가며 손질을 시작했다.


헤어숍에 다닐 때에도 가끔은 조금씩 자르며 정리는 했지만, 유학생 신분으로 살아가려면 최대한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 그리고 이참에 타인의 도움 없이 자가 관리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중간 가위와 세밀 가위, 세밀 빗을 준비하여 시작한 셀프 머리 손질이 이제 7년이 되었다. 대단한 기술은 없지만 앞 머리 뒤 머리 적당히 다듬어 길이 맞추고 양 옆은 자연스럽게 잘라내는 심플한 스타일로 다듬는다.


비용으로 환산해도 적은 금액이 아니겠지만 무엇보다 남에게 맡기지 않고 내 외형 관리를 아무 때나 할 수 있어 편하다. 물론 머리 손질 후의 편안한 여유와 헤어 디자이너의 멋진 스타일은 포기해야 한다.  헤어숍에 가려면 예약하고 스타일이 맘에 들면 좋고 아니면 불만스러운 채 1,2 주 참아야 하고,,,


이제는 그냥 단정하지 않거나 좀 길다 싶으면 가위 두 개와 작은 빗, 손거울 하나 들고 가운 걸치고, 화장대 거울과 마주하고 작업에 들어간다.


앞머리 사선으로 정리하고 사이사이 머리카락 쳐내고, 뒤 머리는 반씩 갈라 큰 가위로 싹둑싹둑, 뒤돌아 서서 손거울을 들어 뒤편이 일률적인지 살피고 다시 삐져나온 머리칼은 잘라내고, 이제 30분이면 마칠 수 있다.


끝난 후에 뒤 정리가 피곤하지만 그런대로 이제 익숙해졌다. 퍼머 안 한지는 10년쯤 됐는데 그래서인지 퍼머할 때 심하던 탈모가 많이 줄어 머리숱이나 두피 보호는 잘 유지되고 있다.



티몬 이미지

남편은 유학 오고서도 한동안 헤어숍을 다니다가 본인도 이제 셀프 손질에 익숙해진지 2년쯤 되었다. 처음 내가 자가 손질할 때 궁상떤다고 구박하며 미용실 가라고 매달 잔소리하다가, 언제부턴가 그도 셀프 손질을 시작하더니 초기에는 나에게 도움을 청해 몇 번 도와주었고, 이제는 혼자  해결하고 있다.


우리 커플은 본인 머리는 본인이 알아서 각자 하는 걸로 매듭지었고, 한 달 한 번이면 각자의 거울 앞에서 가위질이 오고 간다.


에콜로지, 생태적이고 에코노미, 경제적인 생활을 추구하고 있으니 에코 라이프는 문명의 한 복판을 벗어나 슬로우 라이프를 살게 되면서 함께 따라오는 생활 방식이 되어준다.


문명의 모든 이기를 아낌없이, 때로는 앞서서 "얼리 어댑터, 하이 어드밴스트"를 당연한 듯 향유했는데, 세련된 현대인의 생활 방식이 점점 낯설어진. 


 허상의 가치들이 신기루처럼 달콤하여 포기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무의미한 가치들을 덜어 내니 삶의 순간들이 점점 간소해져서 좋다.


심플해질수록 낭비되는 에너지도 줄고 그러다 보니 식사량도 크게 늘 일이 없어 과식도 없게 되고 쓸데없이 허기가 잘 느껴지지 않아 무척 건강에 이롭다.


프항스 몽쁠리에 시청 크리스마스 장식


삶의 즐거움이 많이 소유하고 마음껏 소비하고 원하는 만큼 가져서 얻어질 수도 있겠지만, 덜 소유하고 덜 소비하고 덜 원해서 덜 갖게 되고 그래서 가벼워지고  더 편해져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 그 느낌이 담백하다.


그 담백함은 생명의 에너지가 된다. 생명은 단순하다. 단순함은 욕망의 횡포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해 준다.  


욕망에서 자유로운 영혼은 매일의 투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지만. 갖가지 욕망을 덜어내는 작업은 나 자신과의  또 다른 씨름이다.


그럼에도 매우 보람된 전투임에 분명하다. 내일도 자유롭고 가벼운 영혼의 분투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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