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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phim May 21. 2021

세상으로부터 자유,

나답게 솔직하게 살기


"No one wants to be hated. No one wants to experience the wrath, persecution, attacks, or ridicule of another. Hatred is ugly, painful, and difficult to endure. But that is part of the nature of hate. It’s not only a form of persecution, it’s also a form of manipulation. Hate is an attack upon another by which the hater seeks to inflict injury and to manipulate them to change and conform to their will.


The secular and unchristian “world” wants to win you over and away from God. Jesus offers this teaching, in part, to prepare us so that when we do experience hatred from the world, we will not be affected by it nor manipulated to turn from Him. Therefore, this teaching is a revelation of much mercy from our Lord.


Remember that Jesus spoke of three enemies of our soul. The flesh, the devil and the world. In this Gospel passage, to “belong to the world” means that a person allows themself to be negatively influenced by the countless lies embedded within the world. The secular media, pop-culture, biased opinions, social pressures, false images of happiness and the like seek to constantly misguide us and draw us in.


 We are regularly tempted to believe that fulfillment is found in money, our physical appearance, the recognition of our accomplishments, and much more. The world tells us that our opinions must conform to the secular values of the age—and if they don’t, then we are judgmental, close-minded, extremists, and should be shunned and 'cancelled” or silenced.'"


<The Hatred of the World>, May 8, 2021
Saturday of the Fifth Week of Easter
Readings for Today

Catholic Daily Reflections

         

(누구도 미움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누구도 타인으로부터 격분, 박해, 공격, 조롱 등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 증오는 추악하며,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지만 이것이 증오의 한 속성이다. 증오는 박해와 조작의 형태를 갖고 있다. 증오는 증오자가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공격이며, 자신들의 뜻에 맞게 상대를 변화시키려는 조작이다.


세속적이고 비 그리스도적인 세상은 당신을 하느님과 멀리 떼어놓거나 당신을 이기고 싶어 한다. 예수는 세상의 증오를 경험하게 될 때, 그 증오로부터 영향받지 않고 또한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도록 이러한 조종과 공격에 대해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의 가르침은 주님의 자비로부터 나오는 계시의 말씀이다.


예수는 인간 영혼의 3가지 적에 대해 말했었다. 육체, 악, 세상이 그것이다. "세상에 속한 것"은 세상에 있는 수많은 거짓들이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자신에게 허용하는 것이다. 세속적 갖가지 매스미디어, 대중문화, 편향된 의견들, 사회적 압박, 행복에 대한 거짓된 이미지와 그 추종은 우리를 지속적으로 그릇된 길로 이끌어 간다.


세상은 돈, 외모, 성공에 대한 인정 등에 기반해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고 끊임없이 믿게 한다. 세상은 우리의 의견이 시대의 세속적 가치와 부합해야 한다고 말하며, 그렇지 않으면 폐쇄적이거나 극단적이라고 비난하며 세상의 반대되는 의견들에 대해 "취소하거나 침묵하도록" 강요받는다.)



두려움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타인이나 대중으로부터, 소속 집단으로부터의 평가와 비난의 두려움, 실패의 두려움, 세상이 인정하는 가치를 얻지 못했을 때 소외되는 두려움, 사회에서 이탈되거나 배척당하는 두려움 등등... 건강한 모습을 지키며 내적인 삶의 가치들이 침해당하지 않고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가는 능력은 어른이 되었다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인간이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자연스러운 심리이지만, 각자 고유한 희망과 소망을 차단당한 채 복사된 가치관과 병렬적인 사고방식으로 유사한 틀 속에서 살아가기를 강요받는 사회에서 산다는 것은 개인의 참된 행복의 권리를 외면하고 보이지 않는 사슬로 연결된 전체주의적이고 집단주의적 체제의 노예로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그런 사회는 그 틀을 굳건히 하기 위해서 다양한 도구들을 활용한다. 영악한 자본가들은 가상의 자유와 말초적 쾌락을 충족시키는 숱한 노리개들을 시장에 쏟아내고, 그 사회 구성원들은 감각의 즐거움과 기술문명의 혜택이라는 덫에 갇혀서 그 달콤한 환락 거리들을 충실하게 소비해준다.


권력과 부를 거머쥔 자들의 행보는 시시각각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며 항상 굶주린 야수처럼 그들의 욕망과 그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가지만 다른 개별적 타인들의 안전과 행복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그들의 금고만 불려 나갈 뿐이다.



순진한 대중은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그들의 신성한 에너지와 성실한 의무와 겸손한 권리를 강탈당하면서도 항의할 곳조차 없고 자본가들처럼 주머니만 채운다면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 마치 시대의 말세를 보는 것 같다. 검은 커튼 뒤에서 끈으로 묶여, 연출가의 손과 발과 그들의 대본대로 착착 조종되는 마리오네트들의 공연과 흡사하다. 치밀하게 짜인 시나리오는 영화의 흥행을 결정한다. 그리고 마리오네트들은 열심히 연기만 하면 된다.



인간을 즐겁게 하는 듯한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정신과 영혼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들에 우리는 이미 무기력해졌다. 비판 의식은 버거운 구시대 유물이며, 대세를 거부하는 것은 편집적인 결벽증이며, 숨어 있는 진실을 파악하는 예리한 시선은 거추장스러운 자의식으로 절하되었다.



무언가의 노예로 살고 있지만 지금 즐겁고 그저 풍족하면 문제 될 게 없다. 남보다 두드러지고 세상이 말하는 성공을 거머쥐기 위한 노력은 어떠한 과정인들 정당하며,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결과가 나오면 모든 과정은 과거 속에 묻힌다. 무지가 최상이고 악착같은 발걸음으로 짓밟히는 풀과 작은 곤충들은 그들에게 더 이상 존재 의미가 없어졌다.



거짓 미소와 위선의 얼굴을 하고 우리를 수시로 조작하려는 화려하고 달콤한 대중 미디어들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그들의 욕망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공허하고 무의미한 이미지들에 속지 않기 위해서, 그들의 교묘한 기만술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기 위해서, 정신의 호신술을 마련해야 한다. 무지로부터 탈출해야 한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 탐구, 지혜로운 책들의 독서, 화려하고 유혹적인 이미지들을 피하고 소박하고 단순한 풍경과 자연 속에 자주 머물며 지금 걸어가고 있는 길을 돌아보야 한다. 내가 누군가의, 무엇인가의 포로가 되어 그들 장단에 맞춰 신나게 조작되고 있는 건 아닌지 자주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정신을 아쉬운 대로 미소 하나마 지켜줄 것이다.


인생의 기초는 매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어제 지은 기초가 잘못되었으면 오늘 수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견실한 기초를 세우는 것이다. 저녁때가 되면 하루의 집이 그 모습대로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오늘 지은 그 집이 견고하면 내일 그 안에서 편히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다음 날까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살아낸 모습이 내일의 삶을 살아낼 것이고, 내 존재는 그날들의 총합이다. 자신의 삶을 관찰하지 않으면, 배우들이 연기하는 화려한 스크린 속의 공허한 드라마만 줄곧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멍한 두뇌와 흐릿한 시선으로 얼룩진 시간들을 남기며...


- 작은 기도 -


마치 오늘이 새 날인 것처럼

매일 새롭게 시작하게 하소서.

어제의 썩은 삶을 걷어내고,

매일이 새날이게 하소서.

교묘한 술수와 악한 의도들이 사라지고

정의가 피어나게 하소서.

무지로부터 저희를 구하소서.

세상이 현명함과 지혜로 가득 차게 하소서.

오늘 하루, 저마다 하나의 지혜를

이 우주에 바치게 하소서.

세상의 행복이 우리의 행복과 같게 하소서.



* 사진들, 파스텔레이라 파크 in Porto,

산책하기에 좋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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