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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phim Jun 06. 2021

거짓으로부터 자유,

진실에 대한 용기


"In order to truly understand that which our Lord speaks to us, we must be open. And openness requires humility. Humility is a virtue that is contrary to a “know-it-all” attitude. It’s a disposition of mind and heart that listens to God speak, hears what He says, comprehends all truth by the gift of grace, and prayerfully submits to that truth. Humility enables us to look beyond ourselves for the answers to the most difficult questions in life.


(예수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열린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열린 마음은 겸손함에서 비롯되며 겸손은 "모든 것을 다 안다는" 태도와 정반대 되는 덕성이다. 겸손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은총으로 주어지는 이해력으로서 진실을 이해하며, 그 진리에 대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정신과 마음의 자세다. 겸손은 삶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에 대해 우리 자신을 초월하여 그 해답을 찾을 수 있게 해 준다.)  


 It enables us to turn to the one and only source of truth, Jesus Christ Himself. And the fruit of this humble openness is the gift of understanding. It’s an understanding of the mysteries of life which is beyond our natural intellectual capacity. The grace of God is able to teach and form the humble soul and fill it with clarity of vision and an acceptance of the deepest truths.


(겸손은 진리이며 진리의 근원인 예수 그 자체로 향하게 한다. 겸손하게 열린 태도는 통달의 이해력을 갖게 해준다. 은총으로 주어지는 통달의 이해력은 인간의 지성적 수준을 초월하는 삶의 신비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하느님의 은총은 겸손한 영혼을 훈육하고 양성하며, 명확한 비전과 수용된 심오한 진리로 영혼을 채우게 된다.)   


My Lord of all Truth, You look upon the humble souls with graciousness and mercy, and You reveal to them the mysteries of the Kingdom of Heaven. Please give me the gift of humility, dear Lord, so that I may always turn to You with every question in life. Fill me with the gift of understanding so that I may know how to love and serve You more faithfully each and every day. Jesus, I trust in You."


(모든 진리의 주님, 당신은 겸손한 영혼을 은총과 자비로 돌보시며 하늘나라의 신비를 그들에게 드러내 보이십니다. 저에게도 겸손의 선물을 주시어, 삶의 모든 문제에서 항상 당신께 향하게 하소서, 통달의 은총으로 당신을 사랑하는 법과 당신을 더욱 신뢰하는 법을 매일 깨닫게 하소서.")


<The Gift of understanding>, June 3, 2021. Thursday of the Ninth Week in Ordinary Time
Readings for Today

Catholic Daily Reflections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 속에서 우리는 진실을 다 파악할 수 있을까. 인간의 지성적 판단력과 예민한 감각이 매우 탁월하다 해도 모든 사물과 사건 속에서 진실을 파악하는 일은 여러 가지 이유로 쉽지 않다. 개인의 제한적 능력 때문일 수도 있고, 관련된 이들의 방해에 의해서도 사실이 조작, 변형될 수도 있고, 권력과 부자들의 이익에 따라 바른 일이 불의한 일로 둔갑되기도 하고 거짓이 정의로 변신되기도 한다.


어디까지 우리는 용인하고 어디쯤에서 무관심한 채 살아야 할까, 우리 자신이 개입되어 있지 않다고 해도 우리의 의식은 모든 것을 지각하고 사유한다. 그리고 진실은 우리의 인식 너머에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존재한다. 거짓이 습관이 되고 연속되는 불의한 방식은 결국 개인이든 사회든 그 생명체를 죽이게 된다. 생명은 정의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다는 것, 생명은 불의한 것을 양분으로 하지 못한다. 불의해도 생명이 이어지는 것은 그 생명이 진실을 회복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기 위한 것이다.



과오에 대해, 불의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는 결국 지구 상에서 사라지고 만다. 주어지는 시간 동안 양심을 되살리고 진실을 명확히 판별하고 그 진실을 존중하며 이러한 삶의 방식을 취하는 생명체만이 존속할 수 있다. 죽음으로 가는 길은 불의가 주인 행세를 한다.


모든 것의 해석이 불의한 이익에 맞추어 춤출 때 그 사회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 올바른 생명의식, 정의와 진리에 따른 의식이 부패하면, 생명은 종국에는 멸망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모든 생명체는 이 원리를 벗어날 수 없다.



진실에 무감각해지고 양심이 말라버린 인간이나 사회에게 돌아오는 인과응보는 몇 배의 고통의 역사와 회한의 시간으로 주어진다. 어리석고 불의한 만큼 불행하고 지혜롭고 정의로운 만큼 행복이 주어진다. 당장의 현실이 달콤하게 유지되겠지만 그래서 인간은 오히려 반성하고 진실의 순간으로 돌아가기가 더 어렵기도 하다.


가장 무서운 최고의 악은 진실을 외면하는 관행이다. 건강하고 발전적인 모든 것들을 병들게 하고, 인간의 건전한 의식을 타락시켜 증오와 불신과 배신과 거짓과 위선과 혐오가 넘쳐나는 세상이 되기 때문이다. 역사의 최후의 현장에는 항상 불의와 타락이 끓어 올랐다.



참된 신앙은 진실을 회복하기 위한 양심을 키우는 일, 양심을 정화하고 지켜내는 일, 정의와 불의를 민감하게 알아차라는 일, 정의를 바르다고 말하고 불의를 부당하다고 말하는 일, 그리고 현실 속에서 보이지 않는 진실을 파악해내는 힘을 기르는 수양이 되어야 한다. 교회가 교회의 힘을 키우고 그 양적 팽창을 자랑하며 세상의 불의에 대해 함구할 때, 그 종교는 신앙의 능력과 진리의 빛을 벗어던지고 화려한 거짓의 허상을 뒤집어쓴 것이다.


신앙은 진리를 찾아 추구하고 인간의 거짓에 대해 진실로 돌아서고자 지속적으로 회개하는 자의 양심이어야 한다. 양심이 죽은 신앙이란 모두 사이비 종교의 겉치레일 뿐이다. 살아있는 신앙이란 정의로운 양심을 지켜가는 일이다. 현실 너머의 진실을 읽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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