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do you notice the splinter in your brother’s eye, but do not perceive the wooden beam in your own?” Luke 6:41
("형제의 눈에 있는 티끌은 보이는데, 너의 눈 속에 있는 대들보는 보이지 않느냐?"), -루카 6,41-
"Saint Teresa of Ávila, one of the greatest spiritual writers and doctors of the Church, explains in her spiritual masterpiece “Interior Castles,” that one of the first steps on the path to holiness is self-knowledge. Self-knowledge produces humility, because humility is simply having a true opinion about yourself.
When a person fails to know themself from the true perspective of the mind of God, then they open themselves up to many errors of judgment. One such error is that they can easily become fixated upon their perceived sins of others."
<Seeing Through the Eyes of God>, September 10, 2021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위대한 영적 교회 박사로서 영성적 성찰을 다룬 저서 "내면의 궁"에서 거룩함에 이르기 위한 첫 단계의 하나가 '자신에 대한 앎'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자신에 대한 이해가 겸허함을 이끌어내는 것으로서, 겸허(겸손)는 바로 자신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 마음에서 비롯되는 참된 시각으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많은 판단의 오류에 부딪히게 되며, 그런 실수로 타인의 잘못에 대해 쉽게 집착하게 된다.)
성당이나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백만 번도 더 들었을 "타인의 눈 속에 티끌과 내 눈 속에 대들보"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우리의 양심을 따끔거리게 한다. 남의 이야기를 즐겨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맛있는 안주가 되기도 하는 타인에 대한 담화들, 칭찬은 낮 간지럽다고 주로 톡 쏘는 소주 같은 깔깔하거나 다소 거친 험담들이 알코올 없는 우아한 찻잔에서도 돌아다닌다.
우리 모두 다 아는 것처럼, 남의 잘못이나 흉이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면, 그때가 바로 나 자신이 거기에 엎어져 있을 때다. 자신이 일어나지 못하고 답답하거나 화가 치밀 때 누군가를 희생양 삼아 자신을 변호하거나 자신의 추함을 상쇄시키고 싶은 순간이다.
그래서 타인에 대한 아름답지 못한 수다가 시작되려는 순간이 오면, 바로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며 자기 내면에 쌓인 쓰레기를 비울 시간이 왔음을 자각하는 '지혜'를 발동시켜야 한다. 자기 성찰과 반성을 시작하며 자신에 대한 연민과 위로를 보내는 묵념을 하거나 아니면 낮잠을 자는 것이 인생에는 더 도움이 된다.
남편과 다투며 마구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고 나면 그것들은 나 자신에 대한 고백이었다. 물론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남편도 자신의 불평불만이라고 뿜어내는 것들을 듣노라면, 자기 얘기를 줄줄 고백하는구나 싶다.
물론 화가 많이 날 때는 "본인 얘기 그만 하지, 내가 다 알고 있으니, 하고 응수하지만, 고상하게 부부싸움 마무리하고 싶을 때는 속으로 "나도 저랬구나, 그도 나처럼 별반 다를 게 없는 나약한 인간이구나" 하며 접기도 한다. 누가 더 잘난 것 없이 인간 삶의 테두리는 공히 유유상종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