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도착하면 차근차근해나가야 할 일들(1)
그렇게 나는 AIR B&B로 예약한 캐네디언 아줌마 소유의 집에서 5일을 묵게 되었다. 그녀는 새벽 2시에 도착한 나를 두 눈 비비벼 맞아주었다. 그리곤 내 몸만 한 캐리어를 직접 방까지 들어다 주고 잘 자라며 나보다 더 졸린 눈으로 방으로 돌아가셨다. 하나도 익숙하지 않은 이 방. 너무나 낯선 그 방에서 나의 캐나다 생활은 되었다. 아기자기한 장식품들이 많았고, 지하방 특유의 냄애세 자꾸 코를 킁킁댔으며, 주황색 컬러 찬란한 이불은 딱히 청결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와이파이 하나는 잘 터지니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당연 가족. 가족들에게 무사히 오타와에 도착했다고 카톡을 보냈다. 툭하면 길 잃는 애가 한국에서 캐나다까지 갔다니 가족들은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도 아. 진짜 왔네. 나 정말 말로만 가고 싶다던 그 캐나다에 왔어. 1년 동안 여기서 생활하는 거야.
잠을 자고 일어나면 다시 한국에 와있을 것 같은. 그냥 꿈을 꾸는 듯한 그 기분. 상상만 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면 믿기지 않는 것처럼. 나는 그냥 이 방에 앉아있다는 사실이 어리둥절 하기만 했다. 그렇게 긴 비행에 지쳐 잠이 들고, 시차 적응은 남 얘기 인 줄 알았던 내가 24시간을 자고서야 눈을 떴다. 집주인 아줌마는 걱정될 정도로 잠만 자서 살짝 걱정까지 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제정신을 차리니, 에어비앤비 예약이 4일밖에 남지 않았었다. 이제 하루하루가 도전이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결해야 한다. 모든 워홀러가 캐나다에 도착하면 필수로 해야 할 일.
1. 캐나다 은행 계좌 만들기
2. 신(SIN) 넘버 만들기 (캐나다에서 일하기 위해 꼭 필요한 넘버)
3. 룸 렌트 구하기
4. 잡(JOB) 구하기
워홀 오겠다고 몇 개월 회화학원을 다니긴 했지만, 캐나다에 도착하니 이게 진짜 영어구나 싶을 정도로 캐네디언과의 대화는 불가능(impossible)이었다.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말은 또 얼마나 빠른지 그냥 멍.... 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내가 여기서 이 모든 걸 다 할 수나 있을까. 말도 안 통하는데...
그래도 해야지. 그럼 이까짓 거 때문에 돌아갈 수 없잖아?
첫 번째/ 은행 계좌 만들기
엄마는 내가 혹시나 소매치기라도 당할까 봐 시장 아줌마들이 사용하는 허리 줌에 메는 돈주머니를 시장에서 사다 주셨다. "옷 입기 전에 이거 메고, 그 위에 옷 입어. 돈은 항상 소지하고 다녀야 돼! 항상 확인하고!"
캐나다를 가기 위한 돈은 모두 내 돈으로 해결하겠다 다짐했지만, 출국날 아침, 엄마는 이제 막 깬 내 방문을 똑똑 두들기더니 하얀 봉투를 들고 들어오셨다. "엄마가 이것밖에 못줘서 미안해" " 됐어 엄마 나 돈 있어" "그래도 받아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라며 엄마는 내 이불 밑에 봉투를 집어넣으시곤 잘 다녀와 한마디 남기고 일을 가셨다. 엄마가 은행까지 가서 '우리 딸이 캐나다에 가는데~혼자 준비해서~돈 필요 없다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주고 싶어서 그래요~~' 주저리주저리 은행원과 대화하며 캐나다 달러로(CAD) 화폐를 바꿨을 생각하니 그렇게 슬플 수 없더라. 작은 돈이었지만, 그래도 나에겐 너무 소중한 돈이었다. 이게 돈이어서 소중한 게 아닌, 엄마의 응원과 격려, 미안함이 담긴 큰 가치였다. 정말 이 돈만큼은 꼭 소중한 곳에 쓰겠다고 다짐했으니, 이 돈을 잘 간직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
저 작고 검은 돈주머니에 봉투채로 접어둔 이 돈을 하루하루 들고 다니려니 건망증이 심한 나를 못 믿어서 불안해 죽겠고. 은행을 하루빨리 가서 계좌에 넣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집주인 아줌마에게 가까운 은행이 어디냐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블라블라... 멍하니 눈만 껌뻑거리고 있는 나를 보더니 '얘가 못 알아듣는구나' 느끼신 아줌마가 산책 겸 같이 가자며 신발을 신으셨다. 럭키! 그렇게 나는 아줌마와 함께 캐나다 뱅크 RBC BANK에 갔고, 계좌를 만드는 그 순간까지 아줌마는 옆에서 은행원과 나 대신 직접 대화해주시면서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주셨다. 캐나다는 계좌 유지비라는 게 존재한다. 말 그대로 계좌를 유지하고 싶으면 달마다 돈을 지불해야 한다. 아줌마께서는 계좌 유지비가 FREE인 플랜으로 꼼꼼하게 잘 따져 주셨고, 나는 옆에서 벙어리처럼 멀뚱멀뚱 그들의 얼굴만 번갈아 보다가 내 워크 비자, 여권 등을 내밀어 본 것이 끝. 결과적으론 수많은 A4 용지와 은행 설명 팸플릿, 체크카드를 들고 나왔다. 그렇게 내 첫 번째 계좌 만들기는 캐나다 엄마처럼 든든했던 그녀 덕에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믿을 수 있음에 감사했고 이렇게 첫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두 번째 /신(SIN) 넘버 만들기 (캐나다에서 일하기 위해 꼭 필요한 넘버)
캐나다에서 일을 합법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신넘버가 무조건 필요하다. 선택이 아닌 필수. 영어는 이렇게 어버버 되지만... 날 써주는 데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신넘버는 미리미리 받아놔야겠지.
이제 계좌도 만들었겠다(물론 아줌니가 다해주셨지만) 이제 신넘버 만드는 것 따위 두렵지 않다. 오타와는 시티홀에 가서 신넘버를 신청해야 한다. 필요한 준비물은 워크 비자&여권.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니 몇 가지 인적사항을 적으라고 종이를 주시고, 주소*이름*휴대폰 전화번호 등 개인적인 인적사항만 적어서 내 순서를 기다리면 된다. 내 차례가 되면 내 이름을 불러주고, 들어가서 작성한 종이, 워크 비자, 여권 내밀고 불안한 눈빛으로 기다리면 된다. 물론 몇 가지 질문들을 한다. 짧고 기본적인 질문이라 스마일 스마일 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게 나는 캐나다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신넘버를 GET 했다! 시켜만 주신다면 열심히 일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 집 구하기
대한민국 서울이 아닌, 캐나다 오타와에서의 내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제일 중요했던 일. 집 구하기. 캐나다 오기 전에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결혼하기 전에 자취라는 걸 한번 해보고 싶은데, 이왕 하게 되는 거 캐나다에서 하면 간지 나지 않겠어?" 지금 생각하니 철딱서니 없는 겉만 번지르르한 말이긴 하지만 그때는 꽤나 진지했다. 어려서부터 가족들과 함께 살아 불편함 없이 '집'이라는 공간에서 편히 쉴 수 있었다. 이제는 내가 그 집을 구해 내 공간을 스스로 꾸려야 한다. 사실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앞선 건 사실. 내가 마음에 드는 집을 고를 수 있다니. 이건 한국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었으니. 밤&낮으로 틈만 나면 컴퓨터로 집 정보를 뒤지기 시작했다.
가격, 위치, 집 상태, 기타 포함사항(WI-FI, 세탁 등) 이것저것 따져보니 도무지 마음에 드는 집이 짠! 하고 나타나지 않았다. 못하는 영어로 집주인과 약속을 잡고 집을 보러 가면 사진보다 훨-씬 오래돼 보이는 집이 '어서 와 캐나다 사진빨은 처음이지?'하며 나를 반겼었고, 아픈 다리를 움켜쥐며 5일 안에 이사를 갈 수나 있을까 망연자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놀랍도록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찾게 되었고 그 집을 보겠다고 아직 일도 안 끝난 집주인 집 앞에서 3시간을 기다렸었다. 사실 집주인은 다른 사람이랑 계약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세 시간이나 기다렸다는 나를 보고는 '그래 네가 이 집이 마음에 들면 이사 와도 좋다'고 해주셨다.
그렇게 내 복음자리를 에어비앤비 체크아웃 전 날에 기적처럼 찾게 되었다.
한 달에 600 CAD. 캐네디언 집주인과 예쁘게 생긴 러시아 여자, 그리고 한국에서 온지 일주일도 안된 나. 3명의 여자가 이 예쁘고 사랑스러운 집에서 살게 되었다. 초등학교가 있는 이 동네는 아이들 살기에 참 좋은 동네로 실제로 가족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마트도 3개나 근처에 있었고, 집에서 걸어서 2분이면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이웃들은 또 얼마나 친절한지 이삿날 큰 캐리어 2개를 힘겹게 끌고 가는 나를 보고, 볼 일을 보러 가시던 아줌마가 어디까지 가냐며 차까지 태워 주셨다. 참 이렇게 놀랍도록 친절한 사람들이 사는 이 곳에서 내가 함께 어울리게 되다니. 그만큼 나도 착하게, 순하게 잘 적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나는 어릴 적 동화 속 로망이었던 2층&하늘색 벽지가 푸르른 내 방을 갖게 되었다. 커튼을 치면 푸르른 나무들이 춤을 추며 인사하고 있었으며, 따사로운 햇살이 어서 일어나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라고 찬란하게 빛을 비 추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오타와에 생활에 점점 스며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