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J의 코펜하겐 카드 200% 활용-8
코펜하겐 카드 2일 차는 근교 여행으로 잡았다. 프레데릭스보르 성, 루이지애나 미술관, 오르드럽드(Ordrupgaard) 미술관을 거쳐 코펜하겐으로 돌아와 글립토테크 미술관을 보는 걸로 계획했다. 우선 셸란 섬 북부의 힐레뢰드(Hillerød) 시에 위치한 프레데릭스보르 성(Frederiksborg Slot)으로 향했다.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샌드위치를 샀다. 기차에서 먹을 생각으로 산 건데 지하철이었다. 지상으로 달리니 엄밀히 말해 지하철은 아니고, 여하간 통근 열차처럼 사람이 많이 탄 기차였다. 힐레뢰드(Hillerød St.)에 도착하니 오픈하기까지 1시간 가까이 남았다. 오전이라 좀 춥기도 해서 역사 내 Lagkagehuset 베이커리 카페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휴대폰 충전을 했다. (한국처럼 카페 내에 콘센트가 잘 되어 있는 편 같다!) 몸도 녹이고 휴대폰도 완충해서 힘이 났다. 오픈런을 위해 20분 정도 여유를 두고 역 앞에서 버스를 탔다.
프레데릭스보르 성(Frederiksborg Slot)은 덴마크 왕국에서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르네상스 양식의 성으로 꼽히며, 흔히 “덴마크의 베르사유”라고 불린다고 한다. 슬롯쇠른(Slotssøen)이라는 작은 호수 위 섬에 세워져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물이 보였다. 호수를 건너는 다리를 지나 중세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한 길을 따라 성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성문을 통과해서 나온 풍경을 보니 벅찼다.
10시 개장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성 안뜰에 있는 분수와 전경을 감상했다. 바다의 신 넵튠(포세이돈)의 이름을 딴 이 분수는 덴마크 왕의 해상 지배권과 해군력을 드러내기 위해 만든 거라고 한다. 하지만 현재 이 자리에 있는 건 복제품이라고 한다. 원본은 스웨덴 스톡홀름의 드로트닝홀름(Drottningholm) 궁전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10시에 바로 입장했다. 코펜하겐 카드로 티켓을 받고, 가져온 배낭을 보관함에 넣은 뒤 관람 동선에 따라 이동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정교한 금빛 장식과 바로크 시대에 만들어진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대예배당(Chapel of Orders, Slotskirken)이었다. 들어서니 예배를 보는 곳이 한눈에 보였다. 덴마크 왕들의 대관식, 왕실 결혼식, 그리고 기사단 훈장 수여식이 이곳에서 열렸다고 한다. 중요한 행사, 의식들이 이루어지는 공간인만큼 화려함이 정점에 달한 곳이었다.
예배당에 이어 방문한 곳은 국왕이 대신들과 국정을 논의하거나, 외국 사절을 접견하던 장소였다. 한 명씩 지나다닐 법한 긴 복도를 지나면 중앙에 책상과 의자 두 개가 놓인 공간이 나온다. 이곳은 왕의 권력을 과시하기에 최적화된 장소 같았다. (다시 말해 기선제압하는 곳!) 천장의 화려한 조각과 '왕실의 권위와 고귀함을 상징하는 사슴' 금상을 얹은 샹들리에, 어두운 색채의 전쟁, 의례 그림들이 의도적으로 느껴졌다.
이어지는 방에는 왕실 가계도를 시작으로 초상화들이 걸려있다. 그래서인지 천장화에 눈이 갔다. 특히 바로 아래에 대형 거울까지 설치되어 있었던 덴마크 버전 '단군' 신화의 주인공 게피온(Gefion) 여신 천장화가 인상적이었다. 북유럽 신화에 따르면, 게피온은 스웨덴 왕으로부터 땅을 약속받자, 자신의 네 아들을 황소로 변신시켜 땅을 갈아냈고, 그 땅이 바다로 떨어져 덴마크의 셸란 섬(코펜하겐이 있는 섬)이 되었다고 한다. 다채로운 색으로 그려낸 천장화도 멋있지만 이를 둘러싼 조각 장식들도 엄청났다.
넓은 복도를 한참 들어가다 마지막 방에 다다르면 좌측에 대연회장이 나온다. 이곳은 성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방으로, 국왕이 연회를 베풀거나 국가적 의식을 거행하는 곳이라고 한다. 천장과 샹들리에, 기둥과 왕실 가족들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초상화까지 화려함의 극치다.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눈으로 담기 바빴다. 정말 웅장해서 사진으로 다 담기지 않았다.
대연회장을 나와 이어지는 공간은 일종의 생활공간이었다. 복도의 유리 장식장에는 찻잔과 접시들이 들어 있고, 방마다 초상화가 사진처럼 걸려 있고, 도자기, 시계, 의자, 탁상, 촛대 등 온갖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편 복도에서 마주친 초상화가 특이했다. 오른편에서 볼 때와 왼편에서 볼 때 얼굴이 달라지는 초상화였다. 덴마크의 프레데릭 5세와 그의 왕비 루이즈 여왕을 각각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게 만든 거라는데 18세기 유럽 궁정에서 유행한 형식이라고 한다.
프레데릭스보르 성의 풍경화 액자가 걸린 곳을 끝으로 계단을 올라가면 현대관(1900 until today)이 나온다. 가장 먼저 마주하는 그림이 덴마크의 UN 평화유지군 파병에 관한 그림이었다. 한편, 눈길을 끄는 그림이 보여 혹시나 했는데 맞았다. 바로 최초의 덴마크 여성 총리 헬레 토르닝슈미트(Helle Thorning-Schmidt) 초상화였다. 사실 내가 덴마크에 관심을 갖고 올 생각을 한 건 넷플릭스 드라마 보르겐(Borgen)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2010년에 나왔는데 가상의 여성 총리 비르게테 뉘보르그(Birgitte Nyborg)를 주인공으로 한다. 드라마 방영 중인 2011년, 실제로 헬레 토르닝슈미트(Helle Thorning-Schmidt)가 덴마크 최초의 여성 총리로 선출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그녀는 리얼 보르겐이라 불렸다고 한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성이 더 좋아졌다. 이 기쁜 마음을 담아 '여기 온 나'를 사진으로 꼭 남기고 싶었다. 나처럼 여운이 남는지 관람 후에 전경을 찍고 있는 분에게 부탁드렸는데 인생 사진이 나왔다. 화창한 날씨와 함께 코펜하겐 근교 컨셉으로 챙겨 온 원피스가 프레데릭스보르 성과 너무 잘 어울렸다.
성에 오기 직전에 방문 후기를 읽다 성 앞 호수를 도는 페리(ferry)도 코펜하겐 카드로 탑승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보트 선착장은 처음 버스를 내린 곳에서 보이는 곳이었다. 표지판이 있긴 했지만 나 혼자 선착장에 서있어서 긴가민가 했는데 시간 맞춰 정말 보트가 왔다.
성문에서 페리를 타면 다음 선착장이 성의 정원(Frederiksborg Castle Gardens)이다. 페리에서 드넓은 정원을 구경하고, 다음 선착장에서 내렸다. 덴마크를 절대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바꾼 군주, 프레데릭 7세 국왕의 동상이 서 있는 광장이었다. 이곳에서 15분 정도 걸어가 처음 내렸던 힐레뢰드 역에 도착했다.
딱 맞게 도착한 930R 기차를 탔다. 이 기차를 20분쯤 타고 가다 내려서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다음 여정을 앞두고 오전에 중앙역에서 산 샌드위치를 야무지게 먹었다. 이제 루이지애나 근대 미술관으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