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대화하고 싶어! 뭐라 말하는지 들리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이번 주부터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대학원 수업이라 그런지 교수님들이 첫 강의라고 봐주는 법이 없으시다. 보통 2시간짜리 수업인데 중간에 5~10분 정도 쉬는 시간만 주셨다. 한편 첫 수업은 오리엔테이션, 'induction'이라 하는데 수업마다 reading list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졌다. 내가 이번 학기에 수강할 세 개 과목의 Lecture(수업)를 하나씩 다 수강했으니, 이제 각 과목별로 Seminar(세미나) 또는 Workshop(워크숍)이 있을 예정이다. 그리하여 매주 세 번의 수업과 세미나/워크숍으로 구성된다.
교수님이 첫 강의 전에 단체 메일로 reading list에 있는 책 중 한 권 이상을 읽어 오라 했다. 전날 온라인으로 읽은 책을 실물을 빌리려고 아침 일찍 도서관을 갔다. 처음으로 도서관에서 전공 필수 서적들을 빌려보았다. 대학생이던 시절로 돌아가 학문을 하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학교 기념품샵을 갔다. 요크대 마스코트 '오리' 열쇠고리와 오늘 빌린 책을 넣어 다닐 요크대 토트백을 샀다. 오리 인형이 나의 수호신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가방에 달았다. 한편 수업 스트레스 때문에 전날 초코바와 비스킷을 폭풍 흡입했었다. 덕분에 오늘 아침 생각이 없어 거르고 나왔더니 배가 고파졌다. 점심은 도서관 카페테리아에서 영국 음식인 Jacket Potato를 먹었다. 구운 감자 위에 치즈나 비프칠리, 참치 샐러드, 베이크 빈을 재킷처럼 얹어 먹는 음식이다. 이어서 내가 속한 컬리지인 Wentworth에서 홍차를 마시면서 예습을 했다.
사실 Wentworth에 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Wine & Cheese 이벤트가 여기서 열리기 때문이다. 대학원생들로만 구성된 컬리지인 Wentworth는 Free Food 이벤트를 정기적으로 한다. 화요일 점심에는 브런치, 목요일 저녁에는 수프를 주는데 덕분에 타 대학원생과 교류하기 좋다. 한편 오늘 와인 이벤트는 웰컴 주간에만 열리는 특별한 행사였다. 원래 행사명에 있던 '치즈'는 사라졌으나, 핑거푸드 종류가 꽤 많았다. 여기에 무알콜 스파클링도 있어서 좋았다. 멕시코, 칠레, 브라질, 페루 등 라틴 아메리카 그룹에 먼저 다가가 앉았다. 페루에서 K-pop, K-drama, 화장품이 인기 있다고 해서 신기했다. 한편 칠레 친구는 언어학 석사생이라길래 어떻게 영어를 잘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현지에 살면서 'Survival mode(생존 모드)'가 되면 잘하게 된다는 답을 듣고 희망을 얻었다. (결국 '닥치면 한다'는 거겠지!)
이어서 나의 두 번째 sociey, 'Harry Potter Muggle Society(해리포터 non-마법사 동아리)'의 첫 모임을 갔다. 매주 수요일 19시부터 열리는 모임인데 첫 주에는 'sorting ceremony', 즉 해리포터 세계관에 나오는 기숙사 배정식을 했다. 학부생들끼리 노는 곳에 눈치 없이 끼는 건가 싶었는데 대학원생들이 많이 참여해서 놀랐고, 동양인은 나 혼자에, 진짜 해리포터 찐 팬인 영어 원어민들만 있는 곳이었다. 뻘쭘하게 혼자 앉아 있다가 심리학 석사생 옆자리에 가 용기 내 앉았다. 독특한 영국 악센트지만 목소리가 좋고, 사 온 과자를 서슴없이 권할 정도로 성격도 좋았다. 학부는 화학을 전공했고 셀 수 없이 해리포터 소설과 영화를 본 레번클로 기숙사 지망생이었다. 학부 때도 해리포터 관련 society를 가입했었냐고 물어보니 그때는 'Doctor Who' society에서 활동했다고 해서 나도 닥터 후 팬이라고 알은체를 했다. (실제로는 많이 안 봤고 아는 게 맷닥과 테닥뿐이지만!)
기숙사 배정식을 마치고 같은 기숙사끼리 모여 앉았다. 해리포터 삼총사가 속한 그리핀도르 기숙사에 나 포함 세명뿐이라 소수자가 되었다. 셋이 나란히 앉아 서로의 해리포터 관심을 파악하는 질문들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질문 난이도가 높아지면서 점점 혼미해졌다.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나 누가 죽었을 때 가장 슬펐는지 등등) 말도 빠르고, 해리포터 세계관의 전문 용어들이 나오니까 정신이 없었다. 특히 헤르미온느를 '헐마이오니'라 부르는 것처럼 고유명사에 취약하니 심난했다. 점점 셋에서 둘의 대화로 바뀌어 갔다. 그러자 말은 못 해도 알아듣기만이라도 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답답한 하루였다. 그래도 나의 '존버는 승리한다' 정신으로 버텨 언젠가 이 시간을 추억하겠다는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