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새로운 시간을 만드는 방법

라즈베리와 1도 상관없는 로즈베리(Roseberry) 토핑 하이킹

by 세런 Seren

영국에 온 지 딱 한 달이 지났다. 시간이 언제 이렇게 갔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일상이 단조로워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내가 그리 어리지는 않지만, 매일 새로운 이벤트와 새 친구들을 만들어 가느라 바쁜 나에게 가혹하다. 너무 즐겁고 행복해서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상대성 이론 탓으로 돌려본다.


하이킹의 시작, 저멀리 보이는 로즈베리 토핑

The Outdoor Society와 3주 차 일요일에 간 곳은 노스요크셔(North Yorkshire)에 위치한 Roseberry Topping(로즈베리 토핑)이다. 이름을 들으면 라즈베리, 블루베리 같은 열매가 토핑 된(올라간) 느낌인데 지명의 유래와 전혀 상관없다. 우선 Roseberry는 고대 노르드어 “Óðins bjarg” 또는 “Othenesberg”라는 '오딘의 바위'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오딘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토르와 로키의 아버지이며, 오딘이 대체 어쩌다 시간이 지나면서 로즈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하간 그렇다고 한다. 한편, Topping은 한국에서 통상 쓰는 피자 치즈 토핑이 아니라, 산이나 언덕의 꼭대기를 의미하는 요크셔 방언이라고 한다.


시작부터 가파른 코스에 엄청나게 강한 바람

로즈베리 토핑으로 올라가는 길은 시작부터 꽤 가팔랐다. 게다가 바람까지 엄청 강하게 불어서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균형 잡기 힘들 정도로 불었다. 사실상 바람에 떠밀려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한편 전날 요크에 태풍이 왔던 여파인가 했는데, North York Moors 평원과 Cleveland 언덕 사이에 위치해 있어 원래 바람이 강하게 부는 지역이라고 한다.


정상에 도착,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바람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로즈베리 토핑 아래 푸른 평원

오늘도 새 하이킹 친구를 사귀었다. 폴란드에서 한 학기 간 교환학생으로 온 친구였는데 놀라운 건 작년에는 서울대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했다는 것이었다. 말이 잘 통해서 진로, 동아리, 언어, 여행 계획, 근로 문화 등 정말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가파른 내리막길, 아래에서 본 로즈베리 토핑
이어지는 길은 평평한 평야

폴란드 친구는 나와 반대로 내리막길을 잘 탔다. 경사가 가파르고 거의 흙길이라 집중하지 않으면 미끄러지기 쉬운 길이었는데 그녀는 순식간에 내려갔다. 끝나는 지점에서 나를 기다려 준 그녀에게 정말 잘 내려간다고 했더니, 내가 오르막길에서 먼저 올라가 기다려 준 게 생각났는지 잘 올라간다고 말해주었다. 이어서 우리는 점심을 먹을 식당이 있는 Great Ayton 마을로 향했다.


오늘 점심 장소인 "Royal Oak" 펍
2층 홀 연회용 테이블에서 다함께 여유롭게 즐기는 점심

우리는 무려 1827년부터 운영해 200년 가까이 된 Royal Oak라는 펍(Pub)에 도착했다. 주중에 메뉴를 미리 주문받고 펍에 보낸 덕에 식사가 빠르게 준비되었다. 내가 선주문한 메뉴는 chicken parmesan(치킨 팔마잔)이었는데 바로 지난주에 메튜가 자기 지역 음식이고, 'lovely'라며 추천 했던 메뉴였다. 가게 메뉴판에는 "닭가슴살 커틀릿 위에 베샤멜소스(화이트 크림소스)와 세 가지 치즈 블렌드를 얹어 오븐에 구운 메뉴"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한편 Half로 시켰는데 양이 엄청 많아 놀라고 (서버에게 Half가 맞냐고 물어봤다!), '앞으로 어딜 가든 치킨 팔마잔을 시키면 실패하지 않겠다'라고 생각했다.


제임스 쿡 선장이 어린 시절 다닌 학교를 기념관으로 조성
지구본에서 한국 찾아보기

점심을 잘 먹고 나와 친구들과 30분의 자유시간 동안 식당 주변을 한 바퀴 돌기로 했다. "The Captain Cook Schoolroom Museum"이 나왔는데 무료 전시라고 적혀 있고, 그리 커 보이지 않아 같이 있던 친구들과 들어가 보기로 했다. Great Ayton 마을 출신인 제임스 쿡(James Cook)은 해군 장교이자 항해가로서 수많은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대표적인 업적으로 우리가 중학교 때 비타민 C 결핍 시 걸리는 '괴혈병'을 예방하는 방법을 발견한 거였는데, 제임스 쿡이 바로 선원들에게 신선한 과일을 공급하면 예방할 수 있다는 걸 발견한 일화의 주인공이었다.


Great Ayton의 평화로운 풍경
다시 로즈베리 토핑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똑똑한 강아지

박물관을 나와 로즈베리 토핑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다 같이 오솔길을 걸어 이동했다. 가는 길에 달마시안처럼 하얀 털 곳곳에 검은 얼룩이 있는 강아지를 만났다. 그런데 이 강아지가 갑자기 토막 같은 나무 조각을 내 앞에 딱 내려놓았다. 나 가지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별로 갖고 싶지 않은 선물(?)이 부담스러워 몇 발자국 더 걸어갔는데 다시 물어다 내려놓았다. 옆에 있던 친구들이 던져달라는 뜻 같다고 했다. 그제야 김칫국 마신 걸 깨닫고 던져 주었더니 기가 막히게 잘 물어다 갖다 놓았다. 날 민망하게 만들었지만 똑똑한 강아지였다.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로즈베리 토핑

medium trail 표 티켓팅에 실패해, 어쩔 수 없이 오늘 long trail로 다녀온 싱가포르 언니를 다시 만났다. 언니와 함께 long trail을 동행한 친구들까지 모여 수다를 떨다 돌아가는 코치(Coach)에 탑승했다. 점심으로 먹은 치킨 팔마잔 후기와 함께, 언니가 준 영국 감자칩을 한 조각 먹고 너무 짜서 한국에서 좋아하는 과자와 생각나는 한국 음식 얘기를 하다 다른 친구들처럼 곯아떨어졌다. 아마 나는 정상에 올라가는 길에 정신없이 불었던 바람을 맞았던 탓에, 언니는 진짜 엄청 걸어서 기절하듯 잠이 들었던 거 같다.

언니와 지난 2주간 함께 하이킹을 하다 오늘은 떨어져 간 게 아쉬웠다. 하지만 처음 가보는 장소에서, 새 친구들을 만나고, 한 번도 말해 보지 않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 하루도 모두 새로운 걸로 채워 뿌듯했다. 앞으로도 매일매일 나의 일상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살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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