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대표 디저트 '애플 크럼블' 만들기와 한 달간의 나의 식사 탐구
매주 월요일은 전날 피로를 다 풀지 못한 채, 10시부터 12시까지, 13시부터 14시 30분까지 강의가 연달아 있는 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요병이 오지 않는 이유는 월요일 저녁 19시부터 21시까지 매주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Friends International York 동호회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주제는 "Autumn Traditions(가을의 전통)"이었다. 정규 모임 시간보다 30분 일찍 가면 오늘 우리가 먹을 애플 크럼블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고 해서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도착해서 준비된 사과를 씻어서 깎는 것부터 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계량하는 방법과 오븐에 넣는 시간까지 섭렵한 건 아니지만, 재료는 사과, 밀가루(Plain Flour), 흑설탕(Light brown soft sugar), 버터(British unsalted butter), 가늘게 빻은 오트밀(Porridge oatmeal)만 있으면 되었다. 오븐 용기에 편 썰기한 사과를 흑설탕에 버무려 평평하게 깔아 둔 뒤에 밀가루와 버터를 섞어 포슬포슬하게 만든 가루 (수제비 만들 듯 찐득한 반죽이 되면 안 된다! 이게 크럼블이 될 예정!)를 얹고, 그 위에 오트밀을 살짝 뿌려준 뒤 오븐에 넣음 된다.
애플 크럼블(apple crumble)은 영국인에게 단순한 디저트 그 이상인 ‘소울푸드(soul food)’ 같은 존재라고 한다. 사과 수확철인 9~10월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먹는데 겨울까지 따뜻한 디저트로 즐긴다고 한다. 우리가 만든 애플 크럼블을 소분해서 한 접시씩 나눠 받았다. 한 입 먹자마자 너무 맛있었다. 한편, 한국에서 먹던 달짝지근한 핫초코가 아니라, 다크 초콜릿을 끓여 만든 핫초코가 달달한 애플 크럼블과 잘 어울렸다. 요크 토박이나 다름없는 할머니가 나에게 애플 크럼블을 먹어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홈메이드 애플 크럼블을 먹어보는 건 처음'인데 카페나 슈퍼마켓에서 파는 것보다 너무 맛있다고 했다.
요크에 오래 거주하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언어학 석사 중인 우간다인과 박사 과정으로 왔다 눌러앉은 중국인과 함께, 각자 나라에서 주로 먹는 과일과 기르는 채소에 대해 얘기를 했다. 놀랐던 게 우간다 친구가 여기 바나나를 먹어 봤냐며 바나나가 너무 맛없다고 심각하게 말해서 충격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먹던 것보다 달달해서 여기 사람들이 바나나를 자주 먹나 보다 했는데 말이다.
한편, 영국의 가을 전통 놀이로 9~10월 경에 익어서 떨어진 말밤(horse chestnut)을 실에 꿰어 서로 부딪혀 먼저 깨뜨리는 사람이 이기는 ‘Conkers (콩커즈)’ 게임에 대해 알게 되었다. 마침 밤(Chestnut)에 대해 궁금해서 콩커즈 게임에 쓰는 말밤을 먹어도 되는지, 밤을 주로 언제, 어떻게 먹는지 물어봤다. 요크 할아버지는 말밤은 독성이 있어 먹을 수 없고, 영국의 밤 맛은 sour 하다고 평가했다. 먹는다면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군밤(Hot roasted chestnuts)으로 먹는데 본인은 즐기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의 밤은 sweet 하며, 밤으로 만든 케이크나 빵 등 디저트도 인기 있고, 밥이나 요리에 넣기도 한다고 했더니 신기해하셨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한국에 있을 때 요리를 한 적도 없고 장을 본 적도 없다. 요리에 취미가 없어 그냥 손 놓고 있어도 바깥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는데, 엄마가 거의 매주 소분해서 냉장고에 넣어주는 밥과 국, 반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에서 한 달간 지내는 동안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잘 먹고 잘 자라"인 거 같다. 덕분에 한국에서와 달리 아침 식사를 꼬박꼬박 챙겨 먹으며 인증샷을 보내는 게 일상이 되었다. 잘 먹고 있다는 인증 목적도 있지만, 나날이 발전하는 플레이팅에 나홀로 뿌듯해하고 있다.
한편, 영국의 장바구니 물가는 나쁘지 않다. 대형 마트인 Lidl, Morrisons, TESCO 같은 곳을 가면 말이다. (간혹 시내 곳곳에 보이는 TESCO express나 Sainsbury's local은 소매점이라 비쌀 수 있다!) 덕분에 매 끼 부족하지 않게 단백질을 먹고 있다. 간장이나 Piri Piri 소스(아프리카식 매콤 소스)로 양념된 고등어구이 또는 Basa 생선(대구 같은 흰살 생선), 스테이크용 소고기, 삼겹살/목살, 고추장 양념 돼지고기, 블랙 푸딩 등등 입맛대로 골라 먹는 중이다. 밥으로는 쌀 대신 오트밀에 물을 잘박하게 붓고 계란을 풀어, 전자렌지에 3분 돌린 꾸덕한 Porridge(포리지), 이른바 ‘오트밀 죽'을 먹는다. 기분에 따라 한국에서 가져온 김과 들깨 가루를 곁들인다. 그 외 내가 좋아하는 토마토케첩 베이스의 베이크드 빈(Baked Beans)과 올리브를 매끼 먹는 편이다. 여하간 기숙사 근처에 대형 체인 마켓도 있고 개인 주방이 있는 스튜디오(studio, 원룸)에 사는 덕에, 나름 장보기와 조리 (요리라 하기엔 민망해서!)의 재미도 찾고,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