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느낀 영국 대학 동아리(society)의 특징
10월부터 요크 곳곳에 호박과 유령 장식으로 할로윈을 준비하는 분위기다. 내가 사는 기숙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10월 10일, World Porridge Day(세계 포리지의 날)을 맞아 즉석 포리지 컵을 주는 이벤트를 했다.
Porridge(포리지)는 주로 귀리를 물·우유에 끓여 만든 따뜻한 죽인데 취향에 따라 꿀·설탕·과일·시나몬·견과류 등을 넣어 먹을 수 있다. 한편, 한국의 빼빼로 데이(11월 11일)처럼 기업 마케팅 차원의 기념일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찾아보니 스코틀랜드의 자선단체 Mary’s Meals가 주도하여 영양 부족을 겪는 개발도상국 아동들에 대한 인식 제고와 모금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시작된 매우 의미 있는 날이었다.
나는 아몬드 버터&솔티드 캐러멜 즉석 포리지 컵을 골랐다. 마침 리셉션에 지난주 Coffee Morning 이벤트에서 이야기 나눈 매니저 조이가 보였다. 그녀가 할로윈 기념 이벤트의 첫 번째 참가를 제안했다. 바구니 안에 있는 간식의 개수를 맞추는 사람에게 10월 31일, 할로윈에 간식 바구니를 통째로 주는 이벤트였다. 조이가 첫 번째 쓴 사람의 숫자가 기준이 될 거라고 했다. 크고 작은 초콜릿, 사탕으로 가득 찬 간식들을 보니 그냥 찍는 수밖에 없었다. 100점 만점의 100(?)을 적었다. 아무런 감도 없이 찍었지만, 이미 마음은 김칫국을 시원하게 마시고, 받아서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나눠줄 생각에 신이 났다.
요크대 동아리 활동은 보통 저녁 7시부터 시작된다. 아마 가장 늦게 끝나는 수업이 6시고, 저녁 먹고 모이자는 의미인거 같다. 한편, 금요일 오전 9시부터 1시간짜리 세미나 수업이 끝난 뒤 집에 돌아와 혼자 하루를 보내는 게 아깝고 아쉬웠다. 정기적으로 하는 활동이 있으면 좋을 거 같아 찾아보던 중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모이는 브릿지 동아리(Bridge Society)가 눈에 들어왔다.
브릿지(Bridge)는 4명이 2명씩 팀을 이루어, 협력과 전략을 통해 트릭(trick)을 따내는 카드 게임이다. 올림픽 정식 종목은 아니지만, 세계 브릿지 연맹(WBF)이 운영하는 국제 대회가 열리며 2018년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동아리 소개글에 처음 온 사람에게는 게임 시작 전 룰을 다 알려준다고 했지만, 도저히 영어로 이해할 자신이 없어 유튜브 영상을 찾아 보며 속성으로 익히고 갔다.
동아리 방에 브릿지 카드게임을 위한 테이블들이 만들어졌다. 유튜브 영상만 봤고, 실제 게임을 해보는 건 처음이라니까 기존 회원들이 경기 메이트가 되어주기로 하고, 수학 박사 과정의 친구가 내 옆에 앉아 나의 플레이를 도와주었다. 그녀가 내 카드 패를 보면서 내면 좋을 카드와 전략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는데, 유튜브 영상을 보고 간 덕에 기초적인 것을 그나마 이해했다. 한편 몇 게임해보니까 감은 잡혔는데 전략이나 요령 없이 하니까 지는 게 보였다. 그리고 나는 카드 내기 급급한데 친구들은 수다를 떨며 여유가 있었다. 영어 실력 탓도 있지만, 따로 게임 연습을 더 해서 익숙해져야 대화를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2시간 가까이 꼬박 브릿지 경기를 하고 해가 진 학교를 걸어 나오며 나 때(라떼) 대학 동아리 친목 문화와 비교를 하게 되었다. 이제는 Z세대 대학생들이라 국내도 문화가 많이 바뀌었을 거 같지만, 여하간 영국에서 동아리 활동(social)은 "내 기준 정말 Cool"하다.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 번째는 "진지하다"는 거다. (속된 말로 찐이다.) 마치 한국과 미국의 드라마 비교 밈(meme)*을 보는 느낌이다. 예컨대 브릿지 동아리는 2시간 내내 브릿지 경기를 하고, 해리포터 머글 동아리는 매주 테마에 맞춰 피피티까지 만들어 체계적인 2시간짜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3주 차 해리포터 머글 동아리에서는 Magical Teachers(마법 교수들)이 테마였는데, 우선 교수들을 평가하는 진지한 토론 시간으로 워밍업을 했다. (스네이프는 나쁜 사람인가? 가장 좋아하는 교수는? 가장 싫어하는 교수는? 자기 기숙사를 가장 편애하는 교수는? 등등) 이후, 1편에서 덤블도어가 해리 병문안을 가, 세상 모든 맛이 다 들어 있는 젤리인 'Bertie Bott’s Every Flavour Beans'을 먹었던 것에 착안해 간식 맞추기 게임을 했다. 이어서 같은 기숙사 팀끼리 창의적인 마법 주문(spell) 만들어 발표를 하고 투표로 우승 팀을 뽑았다. 한편, 이날 나의 그리핀도르 팀은 나 포함 3명이었는데, 수줍음 많은 해리포터 덕후 원어민이 발표를 거부 (그 와중에 A4용지를 돌돌 말아 마법 지팡이 만들어 줌)하고, 차마 오늘 처음 온 일본인 교환학생에게 시킬 수 없어 내가 굴욕(humiliation)을 감수했다. 끝으로 해리포터 테마의 Werewolf(마피아) 게임을 했다. 마피아 게임답게 열심히 자기 변론을 하고, 상대방에게 캐물어야 하는데 영어로 잘 못한 게 너무 아쉬웠다. 여기에 우리 팀 덕후가 악당 역할인 Death Eater(죽음을 먹는 자)를 맡았는데 나를 깜쪽같이 속였다. (I trust you! How dare you!)
* 미국 드라마는 '형사가 나오면 수사를 하고, 의사가 나오면 진료'를 하는데, 한국 드라마는 '형사가 나오면 형사가 연애하고, 의사가 나오면 의사가 연애'한다는 밈
이어서 두 번째 특징은 "알아서 한다"는 거다. 올 때, 갈 때를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십 년도 더 전에 한국에서 몇 개 해 본 동아리 경험을 일반화하자면, "제시간에 딱 모이고, 끝날 무렵에 다 같이 한 번에 일어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30분, 1시간 뒤에도 참여하러 온다. 그리고 갈 때도 구구절절 설명하는 법 없이 간다. 특히, 뒷정리가 필요한 경우에도 그냥 눈치 보지도, 주지도 않고 가는 게 제일 신기하다. 초청한 사람(Host) 역할인 운영진이 도맡아 준비하고 뒷정리를 하는 게 디폴트인 거 같다. 그래도 한국 같으면 뭐라도 거들어야 할 거 같은 분위기인데 전혀 다르다. 왜냐하면 내가 한국에서 동아리 활동이든 MT를 가서 친목을 할 때든, 급한 일이 없는 한 마칠 때 뒷정리를 돕고 같이 일어나는 문화였다.
여하간 매주 월수금은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서로 다른 소셜을 정기적으로 할 예정인데, 갈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할 거 같아 기대된다. 그리고 영어도 쑥쑥 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