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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연 May 23. 2023

나이를 먹을수록 왜 사귀자는 소리를 안 할까

나이를 먹을수록 왜 사귀자는 소리를 안 할까


우리가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 안에 있는 많은 것들이 바뀌곤 한다. 우선 나만 해도 식성부터도 달라졌다. 어릴 때는 먹지도 않던 당근을 생으로 술안주 삼아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으면서 달다,라고 말하는 내가 됐다. 이렇게 사람은 늘 변한다.


우리가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변하는 것을 쉽게 느낄 수가 있는데, 그중에서 유독 이건 '왜 이렇게 변했지?' 싶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나이를 먹을수록 사귀자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어릴 때는 수줍게 '나 너 좋아해. 우리 사귈래?', '우리 사귀자.' 이렇게 단판(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짓고 오늘부터 1일! 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썸이라는 단어가 생기고 썸을 타다가 자연스럽게 딱히 언제부터 1일인지 모르게 사귀게 되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였던 것 같다.


뭐 좋다! 자연스러운 거 좋지. 그런데 이런 만남은 또 자연스럽게 사귀다가 헤어지게 되니까 그게 문제인 것이다. 사귀자고 안 했으니 헤어지자고 하는 게 좀 이상하지 않은가. 사귀자고는 안 했는데 헤어지자고 말하는 모습이 너무 이상하게 그냥 그렇게 회피하고 자연스럽게 잠수 타는 경우가 많단 말이다.


왜냐, 우리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니까. 사귀자는 소리를 하지 않고 그저 만나는 사이였으니까. 우리는 그냥 만나는 사이잖아. 이게 말이야, 방귀야.


우리는 일할 때 자연스럽게 일하는 건 않는다. 계약서를 쓰고 연봉 협상을 하고 일을 한다. 프리랜서도 마찬가지다. 페이 계약을 하고서 일을 한다. 뭐든지 단판을 짓고 시작한다.


그런데 왜 좋아한다면서 사귀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일까.


이 나이에 뭘 사귀자는 이야기까지 굳이 하냐고? 새삼스럽게 부끄럽다고? 그럼 이 나이에 경력과 짬바가 있는데 굳이 계약서는 왜 쓰고 일하나요? 그냥 하면 되지.


답? 쉽다. 그만큼은 아니란 것이다. 그만큼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만큼 챙기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만큼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나이 먹을수록 책임질 것과 생각할 것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너까지? 이런 것이다.


그러니 내가 나를 소중하게 여긴다면 우리 사귀자는 이야기는 듣고! (우리 사귀자는 이야기를 하고!) 만납시다. 그게 예의고 그게 결국에는 둘에게도 편한 겁니다. 그래야지 당당하게 어디 가서 내 여자 친구, 내 남자 친구,라고 말할 수 있지. 사귀자는 소리는 없었지만, 지금 우리의 이 느낌으로는 사귀는 것 같은데,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했다가 바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이거 마시면 사귀는 거다,라는 올드한 장난이라도 치면서 말하세요. 굳이 진지하게 말할 필요까지도 없잖아요. 그저 가볍게 툭하고 던지는 말이라도 사귀자라는 말 자체가 참 좋은 겁니다.




글, 신세연.


인스타그램 @shin.writer

메일주소 shinseren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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