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들이 잠들 때까지 밤마다 조금씩 읽어주다가 뒷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어느 날은 반 넘게 남은 나머지를 마저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초등학교 때 읽었던 이야기 속의 제제를 그 때 난 미처 몰랐었다. 그 아이의 얼굴에 장난기보다 슬픔이 더 크게 배었던 날이 많았다는 것을. 아빠한테 허구한 날 얻어터지면서도 아빠 담배를 사려고 아침 일찍부터 구두닦이 통을 어깨에 메고 나섰다가 기어이 담배를 사 갖고 와서 아빠 품에 안겼던 사랑이 넘치는 아이였다는 것을. 다섯 살 난 어린아이였지만 이미 너무 조숙해서, 세상과 바꿀 만큼 소중한 뽀르뚜가 아저씨가 진짜 세상을 떠났을 때조차 절대로 그와의 비밀을 누설하지 않고 간직할 만큼 마음속엔 큰 멍울이 들었다는 것을. 그 어린 나이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제제에게 필요한 건 근사한 자동차도 멋진 집도 아니었다. 구슬과 그림 딱지를 살 수 있는 돈도 크리스마스 선물도 아니었다. 제제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건 단지 뽀르뚜가 아저씨였다.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 그 무엇을 말해도 제제 자신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사랑한 유일한 어른, 뽀르뚜가. 그만이 제제의 깊은 마음속을 들여다 보아주었고 그의 상처를 아물게 해 주었다. 그와 있으면 사랑으로 터질 것만 같아 행여라도 어디론가 도망가 버리지 않을까 조바심치게 되는, 그래서 내 옆에 있어 줄 거냐고 몇 번이나 확인받고 싶어지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하늘이 선물한 고유한 사랑.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가슴 깊은 사랑. 아버지의 학대와 이웃의 조롱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던 그 작은 아이의 마음속에 더 이상 비집고 들어갈 수조차 없을 만큼 꽉 찬 사랑이 되어 옆에 있어 주겠다고 약속했던 그 사람. 그런 한 사람의 어른이 필요했던 것이다. 제제에게는. 제제와 같은 어린아이에게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중 누가 제제와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모두 제제처럼 여리지만 강해지길 원하고 실수투성이지만 늘 사랑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니던가. 우리 마음속에는 작은 어린아이가 숨 쉬고 있어서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인정받고 싶어 하고 일생토록 늘 사랑받고 싶어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래서 제제처럼 수많은 장애물 속에서도 용기를 가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을 시도해 보는 것이다. 유리에 찔려 다치고 넘어지면서도.
다치고 깨지고 넘어지지만 그래도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건 진실된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날 진심으로 이해해 주고 날 자나 깨나 걱정해 주고 날 자신처럼 아끼고 사랑해 주는 단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제제에게 그런 어른이 있었듯이 우리에게도 그런 사람이 한 명 있으면 족하다. 그러길 바란다.
그리고 지금 어린 유년시절을 사춘기를 겪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런 어른이 한 명 있으면 된다. 마음을 마주 보아주고 위로해 줄 그런 어른 한 명이.
이 책을 덮으면서 난 그런 어른일까 내 마음에 물었다. 많이는 모르겠지만 한 아이에게만큼은 내가 뽀르뚜가였을 거라는 걸 안다. 초1 학년 11월에 처음 만나 중3 때까지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었던 내 제자, 주원이. 많은 아이들이 떠나갈 동안 그 아이는 만 8년을 나와 대화했고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그 아이에게, 그 아이는 나에게 친구가 되어 주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재로 인정받았지만 자신은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던 아이, 유년 시절 때는 가슴이 답답해서 고릴라처럼 가슴을 퍽퍽 때렸던 아이였다. 가슴속에 응어리가 생길 때마다 원인 모를 불평불만과 억울함에 하소연을 하면 나는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듯 엉켜있는 그 아이의 마음을 한 올 한 올 풀어주고 근사한 제 자신의 모습을 마주 보게 해 주었다. 그러면 답답했던 마음이 어느새 해소되고 가벼운 발걸음이 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초3부터 그 어린 나이에도 혼자서 버스를 타고 내 수업에 와 주었던 고마운 녀석이 어느덧 훌쩍 커서 중학교 2~3학년쯤 되니 오히려 내가 고민을 얘기하는 경우도 더러 생겼었다. 이제는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를 가게 되어서 가끔씩 안부 전화나 주고받게 되었지만 가끔 거는 내 전화를 받을 때 “선생님?” 하면서 반가움이 묻어나는 목소리를 들으면 나는 그래도 한 아이에게는 뽀르뚜가 일 것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 생각난 김에 오늘 점심에 아들들 점심을 준비하면서 전화를 걸었다. 다른 친구 몇 명하고 와서 고등 진학 경험담 인터뷰도 좀 하고 얼굴도 보자고 했다. 시간이 되겠니? 하는 말에 웃으면서 “선생님이 오라면 가야지요~!!” 라고 하는데 마음이 뭉클했다. 내가 해 준 것도 없는데 늘 부족한 나를 손에 꼽는 선생님으로 알아주는 그 아이가 어쩌면 나를 더 성장시키지 않았을까.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깊은 인연들이 생기곤 하는데 대부분은 가슴에 묻지마는 주원이 녀석은 그의 어머니도 ‘학원은 끝이라도 우리 인연은 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하신 만큼 평생토록 만날 인연이지 않을까 싶다. 예전 바람이 많이 불던 어느 날, 살짝 취기 있는 상태에서 전화를 받으신 어머니가 선생님은 그냥 선생님이 아니라고, 우리 주원이도 단순히 공부만 하러 가는 건 아니라는 걸 안다고 하셨던 그 말씀도 내가 눈 감는 날까지 잊을 수 없는, 내 가슴에 새겨진 말이 되어 내가 걸어갈 길을 비춰줄 등불이되었다.
단 한 명의 그 누군가가 되어 하나의 희망을 심어주고 또 다른 희망을 받을 수 있다면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우리 인생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 선생님들과 의료진, 누군가에게 경제적으로 큰 힘이 될 수 있도록 크고 작은 기부를 하는 사람들, 독거노인분들이나 장애인들을 위해 젖 먹던 힘까지 바쳐 애쓰는 봉사자들에 비하면 나는 정말 보잘것없는 미물에 불과하지만 희망을 누군가에게 주고 또 받는다는 것, 그것의 가치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남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늘 뽀르뚜가가 되려고 노력하면 누군가의 마음에서 난 뽀르뚜가로 살겠지 싶다. 소설 속에서나마 제제를 위해 사랑을 베푼 뽀르뚜가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우리 모두가 진정한 뽀르뚜가가 되어 누군가의 상처를 사랑으로 바꿔주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