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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의 즐거움

그게 세렌디피티의 과정이었구나

by 김혜정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작년 가을쯤부터였나 그즈음부터 확실한 변화의 조짐을 느꼈다. 코로나 시국이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는데 나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삶의 속도였다.




“빨리 좀 해라~”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 사람답게 어렸을 적부터 느려 터진 발걸음을 재촉해서 빨리빨리 걷던 게 습관이 되고 분주한 학교 생활, 빠르게 돌아가는 직장(학원) 생활에 발맞추기 위해 늘 뛰어다니다 보니 성격이 많이 급해졌다. 보폭은 좁은데 빨리 걸으려다 보니 돌부리에 걸려서 몸이 붕 뜨는 것은 예삿일이요, 집에서나 학교에서 뛰어다니다가 문이나 다른 사람과 부딪혀 민망한 적도 부지기수였다. 타고난 성격은 그리 빠릿빠릿하지 않고 두뇌 회전도 빠르지 않은데 빠르게 생각하고 빠르게 행동해야 도태되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에 일종의 처세술도 얻게 되었다. 행동만 빨랐던 것이 아니었다. 사실 말도 장난 아니게 빨랐다. 거의 래퍼 수준으로 말이다. 이렇게 말도 행동도 빠른 것이 나다운 것이 되어 갔다. 보통은 행동보다는 말이 더 빨랐지만 어떤 때는 말보다 행동이 더 빨랐다. 어떤 것이 더 빠른지 그 경중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말과 행동 중에 그래도 행동이 더 빠른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했었다. 그만큼 나는 빠른 것 자체를 나쁘다 생각지 않으며 살아왔다. 왜냐하면 신속함은 가속으로 이어지고 가속은 일의 처리를 신속하게 해 주며 정신을 바짝 차리는 만큼 오류도 적을뿐더러 같은 시간에 많은 일을 처리함으로써 일의 능률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되었기 때문이다.


30대 중반쯤이던가 그때부터 내가 열렬히 좋아했던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바로 <세바시>였다.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 브런치>만큼이나 <세상을 바꾸는 시간 - 세바시 - 15분의 기적>이라는 타이틀 자체가 매력적이기도 했고 그 강연에서 얻는 깨달음은 그 후로 내 인생의 상당 부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강연의 내용도 하나하나 소중했지만 15분이라는 이 짧은 시간 안에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마력이 있다는 것 자체도 놀라웠다. 이렇게 15분만으로도 사람의 생각에 스위치를 켤 수 있는데 나의 하루 중 15분 안에 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나는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독서 모임에 나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은 15분의 효용성에 대한 깨달음을 피력하기도 했다. 15분이면 일기를 한 편 쓸 수도 있고 대부분의 집안일은 한 가지 해치울 수 있으며 샤워를 할 수도 있고 중요한 사람과 통화를 할 수도, 중대한 결정을 내릴 수도 있는 귀한 시간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런 신념을 갖다 보니 ‘빠른 것은 곧 옳음’이라는 진리에 이르게 되었고 ‘빠름’의 속성처럼 내 인생도 빠름의 연속으로 흘러갔다.


그런데 이렇게 바쁘게 살던 나에게 갑자기 띠로링~~ 쉼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서 대면 수업이 줌 수업으로 바뀌기도 하고 일부 수업은 휴강 처리가 되면서 뜻하지 않는 휴식 시간이 생겼다. 처음엔 너무 생경했다. 물론 수입이 주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이렇게 놀아도 되는 건가 싶으면서 책임을 다하지 않는 데서 오는 가책 같은 것이 일었다.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에 교회로부터 받았던 구역장이라는 사명도 유명무실한 상태가 되고 코로나 확산으로 교회 봉사도 내려놓게 되면서 긴장이 풀어지니 몸에서는 휴식을 더 취하라는 신호가 왔다. 안면 근육 경련이 생긴 것이다. 아직 다 나은 것은 아니지만 몸의 이상 신호를 받은 그때가 결국은 삶의 태도를 바꾼 시발점이 되었다. 그게 1년 전의 일이다. 그 후로부터 난 몸을 아껴 쓰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들에게 나의 몸 상태를 알리고 집안일은 분담하기로 했다. 나의 거의 모든 에너지를 쏟는 수업도 최선을 다하되 확장하지 않기로 하고 휴일에는 진짜 거나하게 쉼에 취하기로 했다. 진정한 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쉰다는 행위 안에 정신적인 휴식은 없었다. 몸은 쉬어도 머릿속은 복잡했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산재해 있다는 의식 때문에 육신은 늘어져 있어도 해야 할 일로 달려갈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쉬어야 한다는 명분이 생기니 나의 휴일은 진정한 안식일이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떤 결과를 내지 않아도 평화로웠다. 그렇게 쉬는 시간을 꽉 채워 육신과 정신의 평화와 자유를 만끽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정신이 맑아졌다. 쉬는 시간에 책을 읽으니 오롯이 정신이 집중되면서 빠져들고 바쁜 일상 속에서도 상쾌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어떤 고민이 있어도 짜증을 내기보다는 원만한 해결책을 찾게 되고 내면의 생각에 몰입하다 보니 간혹 좋은 아이디어가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샤워를 할 때 경쾌한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얼른 적고 싶었다는 것도 바로 이런 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튜브를 보던 중 오랜만에 <세바시>를 보게 되었다. 강연자는 황농문 교수. 예전에 읽었던 <몰입>이라는 책의 저자였다. 하도 오래전에 읽었던 책이라 책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강연의 내용이 어찌나 가슴에 와닿는지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압도했고 10여 년만에 다시금 이 책을 꺼내 읽어보게 되었다.


몰입은 다양한 영역에서 할 수 있지만 단순히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고 정리하는 데 그치는 것과는 다르다. 정보를 얻어서 그것을 정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몰입의 세계는 다양한 정보를 그대로 두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승화할 뿐만 아니라 창조적인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게 해 준다. 한 가지 생각에 빠져서 생각을 거듭하게 되면 과거에 있었던 일을 회상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이용하고 다른 생각과 합쳐서 새로운 결과물 내지는 새로운 방법을 창조해 낼 수 있다.


몰입은 한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그것이 해결될 때까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의도치 않아도 그냥 빠져들게 된다. 그것은 곧 사유가 된다. 그런 사유가 계속되면 뇌 안에서는 전류의 흐름처럼 뇌를 활성화시키는 신경전달물질들이 작용하게 되어 가벼운 흥분 상태가 지속된다. 그것은 꼭 행복한 느낌과도 비슷해서 별다른 일이 없다면 늘 행복한 상태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책 속에서 이론으로만 볼 법한 이러한 몰입의 과정이 신비롭게도 나의 현실 가운데서도 일어나고 있다니! 물론 나는 이렇다 할 이론을 도출하거나 학문적 성과를 낸 것은 아니지만 생활 속에서 작으나마 몰입의 과정을 경험했다는 것만으로도 격앙되는 일이었다. 책을 읽어도 글을 써도 수업을 해도 집안일을 해도 이제는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는 세로토닌이 내 몸에 흐르는 것 같고 근심 걱정 불안 강박도 어느새 내 일이 아닌 게 된 것 같았다.




‘빠름’보다는 ‘느림’을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빠름’보다는 ‘느림’을 선택하고 느리게 살아가는 과정에서 우연히 ‘몰입’의 즐거움을 알게 되어 이 글을 쓰지만 이미 ‘느림의 미학’이 시대의 아이콘이 된 것은 잘 알고 있다. 무조건 빨리, 빠르게 사는 것보다 느리게 걷고 느리게 생각하며 세상을 느리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삶의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시대로 이미 변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은 바쁘다. 성취해야 할 일도 처리하고 결정해야 할 일도 넘쳐난다. 그러니 시간 강박, 성취 강박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빠져나오려 해도 늪에 빠진 것처럼 쉽게 헤어 나올 수가 없을 것이다. 삶의 무게가 사람마다 다르고 현재 지나고 있는 길이 다 다르니 감히 건네기 어려운 말이지만 그래도 마음을 편히 갖고 무엇을 성취하려고 고군분투하기보다는 현재 시간과 현재를 살아가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몰입의 과정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러면 삶의 무게도 가벼워지고 삶의 의미도 달라지게 된다고.


세렌디피티


내 휴대폰 카톡 배경화면에 오래전부터 쓰여 있는 말이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

완전한 우연으로만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며 특히 과학연구의 분야에서 실험 도중에 실패해서 얻은 결과에서 중대한 발견 또는 발명을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인데, 이것이 몰입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몰입>이라는 책을 다시 읽고 알게 되었다. 단순한 우연은 없다. 위대한 발견은 위대한 노력의 부산물인 것이다. 누군가 무슨 일을 이루었다면 그 성공의 과정에는 숱한 고뇌와 도전과 실패와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주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도 세렌디피티를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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