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다 다카시라는 일본 작가가 쓴 책,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최근 2년 전부터 혼자 있는 게 편하고 좋아졌다. 예전엔 혼자 있으면 외로운 줄 알았는데 지금은 혼자 있는 시간이 가장 평온하다. 물론 가끔씩 친척들이나 지인들, 교인들, 친구들, 원장님들을 만나는 시간에도 활력과 안정감을 느낀다. 하지만 예전처럼 바깥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혼자 있는 시간보다 우선인 것은 아니다.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이유는 혼자 있는 시간에는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고 오로지 날 위해 관심을 써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나를 더 들여다 보고 소중히 여기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예전에는 내가 나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 힘들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혼자 있으면 쓸데없는 잡생각이 많아지고 그렇게 안으로 파고들다 보면 부정적인 생각들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러면 거미줄에 걸린 벌레마냥 옴짝달싹도 못하고 불현듯 구원자가 나타나 날 건져주길 바라다가 아무도 날 구원해 주지 못함을 깨달으면 허공을 휘젓는 가녀린 손가락을 부여잡고 책상으로 달려가 일기를 쓰곤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사람들 속에 내가 머물게 되면 그것이 구원인 듯, 집안에서 외로웠던 시간에 대한 보상인 듯 그렇게 흡족하게 행복하고 신이 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바랐던 안정감과 소속감이라는 것은 시간이 조금 흐르고 보니 집안에서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제 스스로 몸과 마음을 챙길 수 있게 되니 외부로 향했던 욕구들을 집안에서도 채우게 되었다. 굳이 밖으로 떠돌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은 이제 고요와 화평의 시간이 되고 기도의 시간이 되고 여유와 풍요를 불러오는 시간이 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람 좋아하고 타인에게 관심이 많았던 내가 이렇게 집순이로 변하게 된 이유에 대해 궁금해졌다. 내 본연의 성격이 이제야 뿜어져 나온 것인지, 아니면 환경이나 상황의 변화에 따라 내 성격이 바뀐 것인지.
인간은 사회적 혹은 정치적 동물(원래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의 기원은 사실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데서 유래하였음)인 고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고 또 피할 수도 없는 일인데 왜 요즘엔 혼자가 더 편한 걸까. 나뿐 아니라 인간 관계가 힘들다는 사람들이 왜 많은 걸까. SNS와 인공지능이 발달한 시대에 살고 있어서일까. 대면보다 비대면이 편해지고 사람보다 기계가 편해져서 종국엔 인간이 소외되는 까닭일까.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소속감을 SNS에서도 자유롭게 얻을 수 있는 환경 때문일까. 서구의 지나친 개인주의적 경향을 닮아 우리도 개인주의화된 까닭일까. 의문점 투성이었다.
그러던 차에 3월 8일에 방문했던 북카페 <채그로>에서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책은 <회피형 인간>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나도 <회피형 인간>일까? 들어가는 말에 보면 이 유형은 이렇게 설명된다.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싫어한다. 혼자 있는 편이 더 마음 편하다. 결혼을 하거나 자녀를 갖는 일에 소극적이다. 책임이나 속박을 싫어한다. 상처받는 일에 민감하다. 실패가 두렵다.......
이런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심리학 용어로는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회피형 인격 장애'라 지칭한다. 이런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거리를 둘 뿐만 아니라, 실패할 것 같은 일, 상처받을 만한 일을 최대한 피해 가려고 애쓰기 때문에 인생 자체가 위축되기 쉽다. 자신의 능력보다 질적으로 낮은 삶에 만족해 버리는 것이다.
(중략)
이것이 사회에 적응하는 데 지장이 되는 수준에 이르면 ‘회피성 인격 장애’라고 부르는 것이다. 일반 수준의 애착 성향은 ‘회피형’이라는 표현을, 장애 수준의 애착 성향은 ‘회피성’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영어로 표현하자면 두 가지 모두 ‘어보이던트(avoidant)’이다. 두 단계 모두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고 현대인들 사이에서 이런 현상은 점점 늘어만 가고 있다. 그리고 이는 환경오염이나 지구 온난화 못지않을 만큼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부록에 있는 테스트를 해 본 결과 나는 ‘안정–회피형’이었다. 기본적으로는 안정적인데 상처받을 일에 대해서는 회피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나도 일부 회피적인 성향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약간은 놀랐다. 한편 아래에 요약한 <회피형 인간>의 특징들 대다수는 남편의 성향과 많은 부분 부합하여 더욱 놀라웠다. 남편의 테스트 결과는 100% ‘회피형’으로 나왔고 우리는 서로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다. 누가 ‘회피형 인간’으로 불리는 것을 기뻐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 남에게 무관심하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고 /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려 하며 / 무기력하고 지레 자포자기하고 / 남이 시키는 것만 순응적으로 처리하려고 하는... 회피형 인간을.
그동안 남편과 19년을 살아오면서 이러한 부정적인 면들은 때때로 나를 힘들게 했다. 답답함에 몸서리치게 했다. 그래서 조금 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 주길 바랐고 나에게 관심을 보여주길 바랐으며 앞으로의 일에 조금 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희망을 가지고 행동하길 바랐다. 남의 시선을 너무 많이 의식하지 말고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며 시키는 것만 하기보다는 스스로 알아서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랐다. 시댁 일에 대해서도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뒷짐 지고 있지 말고 앞장을 서볼 것을 권했다.
특히 대화를 할 때는 대답을 회피하지 말고 즉각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나의 지나친 요구였다. 남편도 스스로 이것들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힘들었는데, 힘든 것을 알면서도 나는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답답함을 호소했고 남편도 대화 방식에 대해서는 미안해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까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나도 어쩌지 못하는 내가 힘들다.”는 거였다. 이러한 소통의 답답함은 반복적으로 일어났고 결론은 더 노력해 보겠다로 끝났다. 그러고 나면 한동안은 남편의 태도가 전보다 적극적으로 변했다. 하지만 시간이 또 흘러가면 어느샌가 다시 원점으로 가 있었다.
사람의 성격은 보통 10살 때 결정된다고 한다. 성격이나 기질은 쉽게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이것 말고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삶에 대한 태도’이다.
부정적인 태도 버리고 긍정적 마인드로 바꾸기!!
매사에 감사하고 주어진 모든 환경에 감사하기!!
가족에게 관심을 갖고 진심 어린 감정을 표현해 주기!!
불평이나 험담은 지양하고 타인의 생각이나 행동 칭찬하고 인정하기!!
대인 관계를 많이 불편해하는 남편 탓에 부부동반 모임이나 가족동반 모임에 나갈 기회가 없었다. 나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데 남편이 불편해하니 인간 관계가 더 확장되지 못하고 삶의 재미 요소들이 너무 없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도 따지고 보면 남 탓이고 불평불만이다. 나는 너무 많은 불평불만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불편했고 돌아오지 않는 화살, 대답 없는 너에게 조금씩 지쳐갔다. 이대로 가다가는 지쳐 주저앉을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도 있었다. 아이들을 얼른 독립시켜서 내보내고 싶은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아이들이 모두 출가를 하면 집안이 얼마나 썰렁해질까, 남편과의 대화는 어느 정도 자연스러워져 있을까, 걱정도 들었다. 그전에 서서히 간극을 좁혀나가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다. 부모와의 대화도 불편하고 남편과의 대화도 불편하면 나는 누구랑 얘기해야 되니? 혼자서 끙끙 앓았다. 물론 교회도 있고 친구도 있고 브런치도 있고 혼자 있는 시간도 외롭지 않고 일도 잘하고 있고 모든 게 화평한데 남편과의 소통은 나에게 이다지도 중요한 것잇가!! 남편과 나의 성격차를 인정하고 대답이 늦더라도 혹은 안 하더라도 나는 그걸 그의 성격으로 인정해 주어야 하는 것인가!!
이건 100세 시대가 나에게 주는 하나의 숙제로 주어졌다. 남편과 잘 지내기. 평생을 의지하고 살아갈 남편 이해하고 서로 즐겁게 대화하기. 이 숙제를 스스로 지어놓고 나는 책도 읽고 고민도 하고 이해도 하고 타협도 하고 남편에게 책도 읽히고 대화도 하고 산책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해 뜰 날이 오겠지. 착하고 성실하고 자기 분야에 전문성 있고 밖에 나가면 인정받는 모범생 남편을 내가 너무 몰아붙이지 말아야지. 제발 회피하지 말아 달라는 나에게 어쩌면 남편도 하고 싶은 말이 있을 텐데 아직 용기가 없어서 말 못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기도, 약간은 회피형이야~” 그래, 자기를 닮아가면서 회피형 성향을 얻게 된 게 아니라 나도 원래 회피형이었던 건지도 모르지. 누가 누굴 탓해.
우린 서로 다른 성격과 성향을 지닌 부부다. 신혼 2년 간만 제외하고 아이를 낳은 후부터 이 문제는 주구장창 대화의 도마에 올랐던 뜨거운 감자다. 주로 내가 도마를 꺼내서 뜨거운 감자를 칼로 난도질하다 끝나곤 했다. 허공에 대고 추는 칼춤이었다고나 할까. 끝도 없는 난투극이었고 무대 위의 방백이었다. (남편은 관객). 우리 부부가 서로 다른 건 안다. 하지만 나는 그 차이를 철저하게 인정하고 앞으로 남은 53년(100세 죽을 예정)을 허수아비 남편과 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이 책도 권했고 남편도 끝까지 읽었으며 산책하며 이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앞으로는 홀로 칼춤을 추는 대신 남편과 함께 탱고를 출 나의 모습을 꿈꾸며.
아래는 혹시나 궁금해 하실 분들을 위해 이 책의 일부를 요약한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
p. 40~41
‘회피형 인간’은 책임감이나 구속, 즉 상처가 두려운 유형이다. 이들은 상처받는 것에 민감하여 조금이라도 실수하거나 책임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피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새로운 일에 뛰어들기보다는 위험을 회피하거나 소극적인 자세로 현상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 배경에는 원래 신경질적이고 불안감이 강하다는 유전적 특성도 있지만 부모의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양육 방식이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회피형 애착 성향이 강한 이들은 인간 관계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고, 타인에게 일체의 간섭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p. 93~94
회피형 인간이 부모가 되었을 때
실제 회피형 인간이 부모가 되었을 때 자녀의 기분에 둔감하며, 자신의 뜻대로 밀어붙이려는 경향이 강할 뿐 아니라 주로 자신이 부과한 과제를 처리했는지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기분은 어땠는지에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회피형 부모는 자녀가 곤란에 처하거나 허약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때일수록 무관심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자녀가 기뻐하거나 웃는 것에는 반응하지만 울거나 칭얼거릴 때는 오히려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즉, 자녀가 절실하게 부모를 필요로 할 때일수록 요구에 응해주지 않는 모순된 행동을 하기 쉽다는 것이다.
회피형 인간이 사랑을 할 때
- 회피형 인간이 자녀를 대하는 습성은 배우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무관심한 태도가 기본이며 뭔가 요구를 해도 반응하지 않는다. 신체적으로도 거리를 둔 채 잘 접촉하지 않는다. 그리고 비협조적인 구도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상대방을 자신의 뜻대로 하려는 한편 상대방의 기분에는 상관하지 않는 괴리도 보인다. 타인과 거리를 둠으로써 자신을 지키려 하는 것은 회피형 인간의 기본 전략이며, 이것은 자신의 안전이 위협받을 만한 상황일수록 강해진다. 실제로 배우자가 신상에 문제가 생겨 고통스러운 표정을 드러낼수록 회피형 인간은 분노를 느끼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Simpson et al., 1992; Rholes et al., 1999)
회피형 인간의 직장 생활
p.137
-감정을 배제하는 습관
원칙대로라면 화내도 될 상황에서도 그 마음을 드러내지 않은 채 담담히 문제 해결 단계로 진행해가다 보면 상대와의 협상에서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다. 대인 관계에서도 화를 내지도, 공격하지도 않다 보면 상대방이 우습게 여겨서 부당한 공격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
p.140
-냉정함과 전문성이 강점
회피형 인간은 인간 관계에서 득점을 쌓아 자신의 평가를 올림으로써 살아남는 전략을 쓸 수 없다. 일에서 성공하기 위해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전문적인 기능이나 실력뿐이다. 그래서 회피형 인간 중에 성공한 사람은 보통의 경우보다 훨씬 더 일에 엄격하고 높은 기술과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누구도 참견할 수 없을 만한 기능과 지식, 능력을 보이지 않으면 자신이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므로 타협하지 않고 실력을 키우는 사람이 많다.
p.141
-못하겠다고 말하기보다 조용히 사라진다
회피형 인간은 불평이나 불만도 늘어놓지 않고 묵묵히 일에 매달려 맡은 만큼 확실한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실은 계속해서 한계까지 겨우 버텨온 것에 불과한데 이를 여유롭다고 여긴 윗사람들은 그들에게 더 많은 업무나 관리직을 시킨다. 그러면 책임감이 강한 강박성 인격 장애와 회피형 애착 성향이 겹친 유형은 못하겠다는 말도 못 하고 이를 악문 채 그 일을 떠맡게 된다. 진지하지만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은 사람에게 많이 일어나는 일이다.
p.143
-자신의 인생에 대한 무관심
회피형 인간을 대표하는 특징이 무기력, 무관심, 자포자기이다. 자신의 문제인데 왠지 남 일처럼, 무덤덤한 태도를 취하거나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자포자기의 자세를 보인다. 살려고 하는 근본적인 의지가 없으므로 눈앞의 쾌락이나 흥미에서 임시방편적인 구원을 찾으려 한다.
p.148
-실패에 대한 두려움
회피형 인간의 마음에 에너지가 부족한 원인 중 하나로 자주 지목되는 것은 바로 실패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이다. 이들은 목적을 향해 노력하는 일에 소극적이다. 목적의 실현을 일찌감치 포기하는 경향도 있다. 도중에 어려움이나 장애물이 나타나면 더욱 포기가 빠르다. 실패했을 때 받을 마음의 손상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사고방식은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런 유형의 사람 대부분이 ‘부모로부터 그다지 칭찬을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 유형의 부모는 강박적으로 자신의 높은 기준을 아이에게 들이대고, 해내지 못한 것만 찾아내 지적하면서 키우는 경우가 많다. 이런 양육법을 쓰면 아이는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을 꺼리게 된다.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게 제일 안전하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짓을 했다가 지적질을 당하거나 실패할 기회만 늘어나기 때문이다.
p. 149
-성공의 기회에서 도망치기
회피형 인간에게는 출세나 성공의 기회조차도 책임과 부담이 늘어나는 짐으로 여긴다. 칭찬받거나 기대를 모으는 일이 중압감으로 다가와 모두가 자신의 무능함을 깨닫고 실망하기 전에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한다.
/융의 경우/
p.178~182
회피에서 벗어나기 위한 핵심 과제는 자신이 근본적인 문제로부터 도망치고 있다는 걸 깨닫고 더 이상 그러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일이다. 바로 앞에 있는 문제와 맞서야 한다.
정신의학의 세계적 대가인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은 불안형 어머니와 회피형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융은 부모 양쪽 모두와 안정적인 애착 관계를 형성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작은 마을의 목사였던 아버지 덕분에 집에는 오래된 책들이 가득해서 융은 문자나 책에 관심을 일찍부터 가졌다. 지방의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목사인 아버지를 둔 아들로서 특별 대우를 받았던 그였지만 10살에 부유하고 지위도 높은 가문의 자제들 위주로 가는 김나지움에 다니게 된 후에는 가난과 학업 성적 때문에 열등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12살에는 어떤 친구가 밀치는 바람에 인도에서 넘어지면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후에 발작을 반복하게 된다. 하지만 넘어지는 순간 ‘학교에 더 이상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스쳤는데 힘든 과제를 수행해야 할 때마다 발작이라는 신체적 증상을 일으켰다. 심적 스트레스로부터 도망치려는 ‘질병 이득’을 취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는 부모의 권유로 김나지움을 쉬게 되면서 융은 깨달은 점이 있었는데 그건 ‘나 자신에게서 도망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당시 의학으로 발작은 완치할 수 있는 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반년쯤 결석을 하던 어느 날, 아버지가 의사에게 털어놓는 말을 듣게 된다. “만약 의사가 말한 것 같은 병이라면 이 아이는 더 이상 혼자 살 수 없을 거야.” 융은 그 즉시 일어나 아버지의 서재로 들어가 라틴어 교과서를 꺼낸 후 열심히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몇 번의 발작이 더 일어났지만 융은 그 발작 증세를 무시하며 넘어갔고 결국 마법은 완전히 풀리게 되었다.
회피형 인간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
p.184~185
이 이야기는 결국 회피형 인간이 지닌 이중적인 심리구조 – 상처에 대한 두려움에서 회피하는 것과 회피를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을 때 나타나는 정신적 동요와 거부 반응 –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힘든 현실이나 불안과 마주하는 것이라는 걸 말해준다.
회피하고 있는 상황은 성안에 갇혀 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성안에 갇힌 것 같은 공포를 무너뜨리는 것은 그것이 실체 없는, 허울뿐인 공포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으로부터 해결될 수 있다. 너무 무섭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무서울 것 같았는데 실제로는 별것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요법을 ‘폭로 요법’이라고 한다. 불안이나 공포에 사로잡힌 마음을 극복하는 기법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