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매일마다 야금야금 먹는 간식처럼 하루도 빼먹지 말고 꾸준히 습관처럼 해야 하는 것인데 우리 아들은 간식은 매일 먹지만 자기 공부는 매일 하는 법이 없다. 영어, 수학 공부방에서 두세 시간 공부하면 그걸로 지쳐 떨어진다. 공부는 학원에서만 하는 걸로 그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라고, 절대적으로 자기 공부 시간이 있어야만 발전할 수 있는 거라고 누누이 얘기해 봤자 여전히 소용이 없다. 그러나 아무리 귓등으로만 들어도 내가 꾸준히 주장하는 것은, 하루에 일정 시간 자기 공부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과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펑펑 남아도는 주말 시간 중 서너 시간은 공부하는 데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평소에 공든 탑을 쌓아 놔야 시험 기간의 공부가 빛을 발할 수 있고 공부에 대한 자존감이 올라갈 수 있는 거라고 엄마인 나는 같은 말을 씨앗처럼 뿌린다. 아들의 귓속에 뿌려진 씨앗이 언젠가 싹을 틔우는 날이 있겠지 하면서 말이다.
이번 시험도 공부량은 턱없이 부족했다.
100미터 달리기라 치면 내가 볼 땐 10미터 정도 뛰었다고 할까? 2, 3학년에 비하면 참 배려 깊은 과목 수, 7과목만 공부하면 되는데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한 바퀴는 돌려놨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냥 벼락치기다. 고등학교 때 벼락치기가 웬말인가? 나는 우리 아들의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놀라 자빠진다. 이미 중학교 때 마음을 놓았고 고등 때는 그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그래도 시험을 보고 오자마자 채점을 하고 자기 점수에 희비를 느끼는 모습을 보면 그러니까 평소 공부가 중요한 거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엄마가 도와줄 테니까 국어랑 영어 공부는 주말에 좀 해보자고 했다. 내신 과목이 모두 수능형으로 출제되니 학평 모의고사를 꾸준히 공부하지 않으면 내신 성적도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다. 공부를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아이였다면 중등 때부터 모의고사는 풀어 주었을 텐데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그런 우리 아들, 앞으로 변할 수 있을까?
첫 중간고사를 망친 후 본인의 공부량이 부족했음을 자체 분석하길래 아, 이제부터 공부를 좀 시작하는 건가 기대했건만, 좀처럼 평소 공부는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역시 시험이 코앞에 닥치니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혀 관심 없던 인강도 조금 찾아서 듣고 문제집도 풀고 저번 시험 직전에 사준 아이패드에도 끄적끄적 핵심정리도 했다. 족보 문제도 풀고 해설도 읽어가며 조금씩 뭔가를 한다.
자정이 됐는데 공부하다 말고 갑자기 폰을 들여다본다.
“엄마, 나 몇 시에 태어났지?” “어~ 오후 4시 40분에 태어났지.” 엄마가 너 낳느라 유도분만주사 맞고 엄청 아팠다가 결국 수술해 달라고 울면서 의사쌤 찾았다는 얘긴 생략했다. 요즘 운세는 항목별로 분류가 되어 있었다. 학업 관련 운세는 간단히 요약하면 이랬다. ‘그동안 노력을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험 결과가 좋지 않아서 실망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실망스럽다고 해서 포기해 버린다면 발전할 수가 없다. 따라서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공부를 해야 하고 노력해야 한다. 지금 당장은 결과가 좋지 않겠지만 공부에 시간을 쌓는 만큼 점점 나아질 것이다.’ 아주 정확한 설명이었다. 내가 평소에 누누이 하는 말. 그 말을 오늘의 운세가 콕 집어서 강조해 주고 있었다.
캬~~ 오늘의 운세가 아들을 공부하게 하다니!
새벽 몇 시까지 공부를 할까 고민하던 아들, 좀 더 빡세게 공부할 마음을 잡는다. 그리고 옆에 있어줄 테니 한 번 4시까지 해보지 않겠냐는 엄마 말에 한 번 해보겠다고 한다. 오늘은 국어와 기가 시험이 있었다. 외울 게 많은 기가는 포기했고 국어만 팠다. 낮에 기가 공부를 끝내 놓으라고 했지만 역시 해놓지 않았다. 시험 기간인데도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국어에서 유독 약한 문법 파트는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교과서 시 파트와 교과서 외 시 3편, 아들이 자신 있어하는 소설 파트, 현대시와 고전・현대소설 지문이 실린 6모(6월 학평 모의고사) 지문 3개, 이것만 하는데도 시간을 훌렁훌렁 잘만 흘러갔다. 난 3시 반에 작별을 고했고 아침 7시 20분에 일어나서 아들을 깨웠다. 깨워본 적 없는 아들인데 피곤할 만했다. 아들은 문법 파트를 공부하고 4시 10분에 잤다고 한다.
스쿼트도 10개가 목표였다면 2~3개를 더 해야 운동 효과가 있는 거라고 하는데 아들이 목표였던 4시를 넘겨 10분을 더했단다. 감격스러운 마음에 엄지척을 세워줬다. 엄마가 뿌려놓은 씨앗이 톡 하고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한계를 느낀다.
조금 더 하면 뭔가 될 것 같은데 더 하고 싶지가 않을 때가 있다. 노력해 봤지만 소용없었다는 경험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리 잘하려고 발버둥쳐 봤자 자기보다 날고 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이미 눈으로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다 핑계일 뿐이다. 더 많이 갈구하지 않았고 더 큰 목표가 없는 것이 문제다. 목표가 뚜렷하고 남과 비교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의 갈 길만 본다. 사실 우리 아들도 목표가 없다. 그러니 매일 꾸준히 공들여 탑을 쌓을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다. 공부라는 건 절대 성적의 결과물만 낳지 않는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법을 배우게 하고 자기를 관리하는 사람이 되게 한다. 그게 공부의 이로움이다. 우리 아들도 공부라는 게 단지 성적을 내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날이 오면 좋겠다. 공든 탑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진리를 알았음 좋겠다.
한계는 넘으라고 있는 것이다. 자기 방식으로 넘으면 된다.
공부를 잘 못했더라도 공부로 성공한 사람 이야기는 주변에 널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 비법과 노하우가 궁금해서 그런 영상을 많이 봤었다. 공부를 못했던 사람이 피 터지게 공부해서 공부 전도사가 된 경우도 있고 스타 강사가 되는 경우도 봤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수일 뿐이다. 요즘엔 학력이 성공한 인생을 보장하는 시대가 아니다. 자신의 적성을 찾아 활로를 찾아 나가면 된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아들이 되길 바라지는 않는다. 자기 인생을 주도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지금 주어진 일을 집중해서 해내고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는 힘이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인생을 살다 보면 생각대로 안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럴 때마다 좌절하고 포기하면 결국은 자기를 혐오하게 되고 우울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된다. 내적인 힘을 길러야 한다.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들에게 바라는 건 이것뿐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해 주며 내적인 힘을 키우는 것. 결국 인생은 자신과 싸우다가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나는 과정이다. 그러니 공부 자체에 목숨을 거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한다.
각자 자신의 인생 레일을 달리자!! GoGo!!
아들은 아들 인생의 레일을 달리고 나는 나의 레일을 달린다. 각자 자기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처음에 하나였던 레일은 언젠가 둘로 갈라져 헤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다 다시 만나게 되고 다시 헤어졌다가 또 만날 것이다. ‘만남-헤어짐-만남-헤어짐-만남’이 반복될 것이다. 아들이 자신의 레일을 열고 스스로 달릴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이다. 우리가 처음으로 헤어지는 날 나는 너무 많이 울어서 탈진(탈선)할지도 모르지만 그동안 그 레일이 튼튼해지도록 같이 수고했던 시간은 영원히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나의 기억에도 아들의 기억에도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