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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정 Feb 02. 2022

그 몫은 받은 자의 것

너의 길을 가라


이번 설 연휴에 형님댁에 가게 되었다. 얼마만의 외출이었는지 모른다.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부터는 식당이나 카페도 이용하지 않던 나에게는 신선하고 달콤한 휴식이었다. 교통수단은 지하철. 집 앞에서 타고 세 번의 환승을 거쳐 도착지에 1시간 4분 만에 도착 예정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서울에서 30분 정도 걸리는 근교인데도 별일 없는데 나서기엔 서울은 부담스럽고 먼 곳이다. 서울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부자이고 멋들어지게 사는 것이 아닌데도 왠지 서울이라는 땅을 밟으면 우쭐해지는 것 같고 특별해지는 것 같다. 내가 만약 서울에 거주하게 된다면 금방 튕겨 나올 것 같은 느낌이다. 마치 원을 그려 놓고 원의 밖에 있는 사람을 안으로 끌어당겨서 자기네 편으로 만드는 놀이처럼, 그 원 안에 발을 들여놓으면 그들과 한 편이 되고 유대감이 생겨서 무엇이라도 해낼 수 있는 파워가 생길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느낌이랄까. (써 놓고 보니 정치적으로도 풀이할 수 있고 또 학교폭력으로도 비유될 수 있는 확장성 있는 문장이다. 삼천포로 빠지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선 하나의 구획으로 소유와 무소유의 경계가 생기고 이권에 탑승하냐 못하냐의 기준이 되는 것만 같다.  기득권자들이 그어놓은 동그란 원은 점점 그 층위가 높아져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초고속으로 상승하고 원 밖에 있는 사람들은 높아져가는 원반과 그 원반 위에 놓인 사람들을 목이 빠져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그림이 상상이 된다.

서울에 살다가 온 사람은 여유가 되면 다시 서울 가서 살고 싶다고 한다. 생활의 편리를 담보해주는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고 가고 싶은 곳은 지하철 하나로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우리 동네에는 하나도 없는 백화점이 서울에는 수십 점이 있고 다채로운 문화 체험도 가능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백화점 하나가 없는 우리 동네가 백배 좋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드넓은 논밭 뷰를 매일 감상할 수 있다는 것과 체증이 없어서 운전자들이 성질부리지 않는 이런 부도심이야말로 사람이 넉넉한 인심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니런가. 나로선 오히려 서울의 세련되고 화려한 문화는 불필요한 사치일 뿐이다. 물론 나에게 백화점 자유이용권 주어진다면 혹시 모르겠다. 가방 하나 정도는 받을지도. 하지만 물질보다는 정신이다. 서울에서 아등바등 사는 것보다는 논밭에서 안락하게 살기를 택하겠다. 문턱이 너무 높아서 고꾸라질 뻔하는 곳보다는 문지방이 없어서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그런 집이 더 좋다.


서울을 굳이 차별된 시선으로 봐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은근히 나에겐 높은 문턱 같다. 가 본 곳도 더러 있긴 하지만 그래도 대학 때 고시원 빼고는 살아본 경험이 없으니 젊은 시절에 향유하지 못했던 문화가 나이 들어서도 낯선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오랜만에 서울 한복판 지하철 승강장에서 느낀 삶의 다양성이란!


마스크를 끼고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정장 차림으로 바쁘게 걷는 남자, 전화기를 들고 큰소리로 수다 떠는 아주머니, 세련된 코트를 입은 키 큰 여자, 의자에 엉거주춤 엉덩이만 걸치고 앉은 젊은이. 책 한 권 들고 서 있는 자그마한 여자, 바로 나.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하늘에서 내려다보았다. 사람들은 제각기 갈 곳으로 분주하게 또는 여유 있게 혹은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친구와 동행하는 사람은 몇 안 되었다. 대부분이 혼자였고 고독한 인간들이었다. 고독하지만 내심 행복한 사람도 있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사람도 있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자기 몸을 먼저 챙기는 사람도 있었고 남을 먼저 배려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이 서로 피해를 주지 않고 예의를 지켰다. 하늘에서 바라보면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어떻게 보일까 궁금했다. 개개인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행동을 지켜보면 어떨까, 신의 입장에서 자신이 만든 사람들을 지켜보는 건 어떤 마음일까.


내가 종교를 가진 후에 펑펑 울었던 적이 있다. 임신한 상태에서 중창단으로 무대에 서게 되었는데 그 큰 무대에 오른다는 것이 어찌나 감격스럽던지, 아, 이렇게 큰 감격을 주시려고 하나님이 나를 초대하고 세워 주셨구나 하는 감동이 물밀 듯 밀려왔다. 그게 첫 번째 감동이자 은혜였다. 그때부터 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걸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신과 나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늘 그 장면이 떠오른다. 나를 인생의 무대에 바로 세워주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고 느꼈으니까. 지하철역에서도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우릴 사랑으로 빚어서 거대한 인생을 선물로 주셨고 우리는 그 선물을 대가 없이 받았지만 누구는 그 선물을 귀하게, 누구는 하찮게 대한다. 하지만 선물을 준 장본인은 선물을 받은 사람이 선물을 어떻게 사용할지 알지 못한다. 그저 가치 있게 쓰기만을 바랄 뿐이다. 가치 없게 써도 어쩔 수 없다. 그 몫은 받은 자의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가치 없게 쓰더라도 하나님은 실망하지 않으신다. 그저 사랑으로 보듬어주기만을 원하신다. 우리가 자식을 이런 마음으로 키우는 것도 하나님의 성품을 닮았기 때문리라.




이런 생각을 하니 어린 시절에 하던 개미 놀이가 떠올랐다. 우리 안방에는 개미가 줄줄이 방구석을 기어가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특히 우리가 먹던 새우깡이나 양파링 같은 과자 부스러기가 많은 날은 훨씬 긴 줄이 섰다. 개미들은 줄지어 열심히 기어갔다. 어떤 개미는 큰 부스러기를, 어떤 개미는 작은 부스러기를 이고 가고 어떤 녀석은 인 것이 없었다. 그냥 부지런히 갈 뿐이다. 소득격차가 많기도 하고 큰 개미, 작은 개미 몸집도 다양했지만 모두들 열심히 살았다. 나는 그런 개미들이 이뻐 보였다. 길을 잃고 거꾸로 가는 녀석이 있으면 안쓰러워 내 검지 손가락으로 그 녀석의 가는 방향을 돌려주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도 그렇지 않을까, 큰 사람작은 사람 부자인 사람 가난한 사람 이쁜 사람 못난 사람 재능 있는 사람 재능 없는 사람 의미 있게 사는 사람 의미 없게 사는 사람, 각계각층 다양한 개인들이 모여 살지만 모든 사람들을 이뻐하지 않으실까. 물론 남의 먹을 일용할 양식을 뺏는 나쁜 놈들은 빼고 말이다.


그렇게 보면 서울이든 수도권이든 지방이든, 유럽이든 미국이든 내가 사는 곳이 어디든 중요한 것이 아닌데 괜한 나의 자격지심에서, 서울 살면 행여라도 기죽을까 봐바리케이드를 친 것이 아니었을까. 아니, 내 평생엔 구경조차 못할 수십억 아파트에서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보며 아침을 맞이할 일은 없을 걸 알기에 지금의 내 위치에서 만족하라고 스스로를 세뇌시켜 온 것이 아닐까. 여태껏 쌓아온 내 삶이 만족스럽고 복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해 왔지만 욕심부리지 않으려고 아래만 바라보며 살았던 것도 어찌 보면 교만이 아니었을까. 겸손하려고 배려하려고 노력했지만 어쩌면 위를 바라보면 따라가고 싶을까 봐 그것조차 억누르고 애써 태연한 척 아래를 보며 겸손한 척 한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런 행위도 내가 슬프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는지도.




세상에는 구역을 가르고 계층을 나누는 어떤 원반 없다. 당연히 엘리베이터가 있는 원반도 없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타고난 재력의 힘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직 상승하는 건 거스를 수 없는 부의 법칙이다. 부의 잉여가 더 큰 부를 잉여시키고 부의 지배 구조는 더 탄탄해지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가난을 타고 난 상황은 많이 다르다. 가난은 더 가지기도 힘들지만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으므로 사람을 궁색하게 한다. 궁색함을 벗어나려면 더 악바리같이 살아야만 한다. 그 억척같은 삶이 사회에 적응하도록 사람을 단련시킨다. 자신과 타인을 구별 지음으로써 그들과 다른 자신을 용납한다. 그러면 편안해지니까 말이다.


이렇게 세상의 경제 구도를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어떤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한다. 그런데도 빈부를 구별 지어서 생각하는 건 이유가 뭘까. 가난에서 벗어나라는 내적ㆍ외적 요구 때문일까. 가난에서 벗어나는 일은 개인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일까. 왜 경제적 지위 때문에 고통을 겪는 사람들만 화가 나 있는 걸까.




형님댁 아파트에서 바라보는 풍경에는 온갖 계층이 다 섞여 있었다. 삐까번쩍한 고층빌딩에 20~30년 된 일반 아파트들이 중심에 서 있고 그 주변에는 산을 깎은 자리에 층층이 늘어선 주택들이 즐비했다. 그 주택들 외관에 원색의 형형색색 페인트를 칠한다면 이탈리아 주택의 오마주가 될 것 같다는 상상이 들었다. 알록달록한 무늬가 그들을 더 돋보이고 아름답게 할 것이다. 겉으로만이 아니라 마음속까지도 화려하게 채색한다면.


사는 풍경이 제각기 다르듯 사람 마음의 색깔도 얼마나 제각각일까. 이토록 다양한 색깔로 살아가는 세상인데 구획을 지을 필요가 어디 있을까.

이곳은 이탈리아의 한 주택가이다. 이런 풍경은 사진으로만 감상해도 너무 즐거워진다. 그런데 이곳도 서울의 달동네와 비슷한 곳일까. 즐거움만으로 바라보는 건 무책임한 행동일까.


오래전부터 이탈리아에 가보고 싶었다. 고대 유적지도 관광하고 싶지만 영혼의 자유로움을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무엇보다 낯설고 새로운 곳에서 내 삶의 뒷면을 채색해 보고 싶어서.

자유로움을 향한 갈망으로 내 환경을 깨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 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욕망을 가져보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내 틀을 깨고 전보다 더 큰 세상을 경험해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인생에 한계가 는 건 알지만 세상보는 다양한 눈을 더 가지는 것은 인생의 후반기엔 더없이 소중한 일이다. 인생에조차 구획을 지을 필요는 없다.


개미처럼 더듬거리며 제 갈 길을 가다 보면 내게 주어진 인생의 다채로운 면을 여러 가지 색깔로 채색하게 될 것이다. 언젠가 뒤돌아보면 저 이탈리아 집들처럼 알록달록한 지어진 집을 보게 될 것이다.

꼭 이탈리아에 가지는 못하더라도. 내 마음속에서라도.

세상에도 내 맘속에도 어떤 구획도 없는 자유로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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