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교사의 극단적 선택으로 나라가 뒤집어졌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아닌가. 하... 이미 10년보다도 더 전부터 교권이 실추되어 왔고 학부모의 갑질도 예삿일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무고한 목숨이 한 줌의 재로 사라지고 난 후에야 분개하고 원통해하는 것이 너무나도 비통하다.
생각이 너무 복잡해서 이 사건에 관한 글을 쓰기 어려웠다. 지금도 그렇다.
여교사의 죽음은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인가. 업무상의 과로만도 아니고 한 학부모의 반복되는 항의 전화만도 아니고 버릇없는 초등학생의 학폭만도 아니고 제대로 된 소통이 부재하는 학교 현실만도 아닐 터. 이제 막 부임해서 병아리 같은 아이들을 담임하고 최선을 다해 일한 대가가 무엇이란 말인가. 앞에 열거한 것들을 다 합해 놓은 것도 모자라 불안과 우울과 무기력감을 똘똘 말아 숨통을 막은 비극이란 말인가.
맨 처음 사건이 보도되고 경찰에서 일기장을 가져갔다는 보도를 들었을 때, 유족들의 동의를 얻어 일기를 공개하게 되겠구나 예상했다. 진상을 규명하고 고인이 된 교사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려면 아파도 어쩔 수 없이 내 보여야 할 상처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고서 어제 저녁, 그 일기는 공개되었다.
7월 3일에 쓴 일기였다. 벌써 20일도 지난 어느 날이다.
제법 오랜만에 펜을 잡는다고. 가족들과 있는데도 평소 성격처럼 텐션이 오르지 않고 마음이 힘들다고 했다. 밥을 먹는데 손이 떨리고 눈물이 흐를 뻔했다고. 모든 게 다 버겁고 숨이 막힌다고. 놓고 싶은 생각이 마구 든다고 했다.
서울교사노동조합이 제공한 고인의 일기 일부/ 한겨레 2023. 7.24일 자
고인의 희생에 애도를 표한다. 학생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조차 교사의 아동 학대행위에 해당될까 봐 목소리조차도 내지 못한 젊은 여교사의 애끓던 심정을 어떻게 짐작할 수 있을까. 얼마나 답답하고 참담했을까. 차마 집으로도 못 가고 학교창고에서 생을 마감한 것은 부모님을 향한 죄스러움이자 자기 인생의 마지막 절규가 아니었을까. 무너진 교권에 대한 뼈아픈 슬픔이고 응징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는 그의 슬픈 넋을 위로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잘못된 것들은 응징해야 한다.
학교 안에서 교육의 주체가 되고 아이들의 멘토가 되어야 할 교사들이 학부모의 등쌀에 시달리고 아이들의 폭력에 휘말리는 피해자로 전락하는 상황은 앞으로 더 가시화될 것 같다. 24일, 어제 서울시 교육청에서 열린 긴급 공동 기자회견에서 또 다른 유가족(아버지)이 자신의 딸도 그렇게 교권 침해를 당했지만 꽃송이 하나 받지 못하고 죽었다며 오열했다.
- 세계일보 / 2023. 7. 25일 자
아픔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분들의 억울함은 세상에 남아 숨 쉬고 있는 유족분들 가슴에 납덩이로 남는다. 짓눌리고 쪼개져 더 이상 펼 수조차 없는 납작한 납조각이 되고 만다. 그분들의 억울함을 누가 풀어줄 수 있을까. 이것이 과연 개인의 몫인가.
여전히 깊은 상처에 시달리면서도 버티고 있을 많은 교사분들이 계실 거라 생각한다. 교사로서의 사명감으로 시작했고 아이들을 사랑했지만 고된 일상과 정신노동에 직업의식만 남아 정년퇴직을 기다리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른다.그러나 교육의 현장은 그래서는 안 된다. 교과서로만 존중과 배려를 배워서는 안 된다. 교권은 바로 서야 하고, 학부모의 지나친 간섭은 자제해야 한다.
이렇게 희생을 치른 후에야 돌아보고 법적인 제재와 조항을 추가하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