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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정 Aug 17. 2023

《오펜하이머》  관람 후기


문경에서 돌아온 후 글을 쓰고 휴식을 취할 겨를도 없이 수업을 했다. 그러나 수업이 끝났다고 하루가 끝난 것이 아니었으니, 바로 영화 <오펜하이머>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8월 15일 광복절을 기념하는 의미로 광복절에 개봉한 듯한 영화 <오펜하이머>, 기대를 아주 많이 하고 밤 9시 50분부터 3시간 관람에 들어갔다. 배도 많이 고팠으므로 라지 사이즈 팝콘도 넉넉하게 준비했다. 같이 관람한 사람은 남편과 작은아들.



지식백과나 위키백과에 들어가면 쉽게 알 수 있으니 오펜하이머에 관한 설명은 조금 간단하게 해 보자. 뉴욕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오펜하이머는 어려서부터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이 아니었고 물리학, 화학, 문학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혼자 있는 것을 즐겼다. 그 후, 타고난 천재성으로 하버드 대 화학과를 우등생으로 조기에 졸업하고 영국 캠브리지를 거쳐 독일 괴팅겐 대학에서 양자역학을 바탕으로 한 이론 물리학에 깊이 빠지게 된다. 미국으로 다시 건너와 교수가 된 그는 양자역학을 화학에 응용한 스펙트럼 양자론을 발전시켜 나가며 인류에 공헌하길 원했다. 한편 당시 나치를 반대하던 유대인들과 깊이 교류하고 교직원들을 위한 노조에 적극 참여한다.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약혼녀, 그의 동생, 그의 배우자가 공산당 당원이었던 것을 빌미로 그의 좌파적인 성향이 발목을 잡히게 된다. 여기에 원자폭탄의 위력을 실감한 후 수소폭탄 개발을 반대한 것까지 더해져 훗날 원자력 에너지 위원회의 청문회에서 정신적 고문을 받게 된다.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의 아버지가 된 발점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1941년, 독일의 히틀러가 원자폭탄을 제조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언을 듣고 이에 질세라 미국이 급하게 착수한 "맨해튼 프로젝트"에 있었다. 많은 과학자와 20억 달러의 지원으로 시작된 이 핵개발 프로젝트 총괄하는 로스앨러모스의 소장으1943년 오펜하이머가 선택된다. 뉴멕시코 주의 광활한 무대에서 거행된 1945년 7월 16일 '트리니티 실험'의 날, 그간 쌓아 올린 빌드업은 1000개의 별이 폭발하는 것과 같다는 강렬한 빛과 심장을 터뜨릴 듯한 굉음과 함께 성공의 글라스 잔을 채우게 되고 오펜하우머는 핵무기의 아버지로 등극한다.



여기서부터 오펜하우머의 인생은 파멸로 향한다.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일념 하에 오로지 원자폭탄을 연구하고 실험까지도 성공한 그였지만 그것이 대량살상무기로 둔갑하여 1945년 8월 6일, 9일 두 차례에 일본의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일을 계기로 깊은 후회에 죄책감을 갖게 된다. 그가 그의 입으로 한 말처럼,


       '나는 이제 죽음이오,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오펜하이머-


물론 원자폭탄 투하를 결정한 것은 오펜하이머가 아니라 당시의 대통령인 트루먼이었지만 말이다.



순수한 열망으로 핵폭탄을 만들었지만 그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죄로 매일마다 독수리에게 을 쪼이게 된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처지가 되었다.



https://brunch.co.kr/@serendipity712/81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라서 내심 기대가 컸다. 내가 감명 깊이 봤던 영화는 <메멘토>, <인터스텔라>, <인셉션>이었고 이 영화의 공통적 특징은 시공간의 차원을 넘나든다는 데 있다. 특히 주인공의 의식을 따라가는 동안 내 머릿속도 뒤죽박죽되며 정신이 마구 없어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천재성이고 그 가운데 들어간 CG 영상미도 압권이었다.



비교하자면, 이 영화 <오펜하이머> 역시 시간의 구성이 쪼개져 있는 것은 비슷했다. 오펜하이머의 이야기, 스트로스의 청문회 장면, 오펜하이머의 청문회 장면이 3세트로 되어 있는 것이 그렇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여기에 큰 감흥이 없었다. 그 세 장면이 서로 얽히고설켰다기보다는 반전을 극대화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 느낌이었고 각 파트의 구획이 단편적이었다. 하나는 오펜하이머의 생애를 다루었고 나머지 둘은 오펜하이머와 스트로스(원자력 에너지 위원회 의장, 로다주 분)의 대립각을 표현했는데 후자의 러닝 타임이 너무 길었다. 물론 오펜하이머가 그의 업적에 맞지 않게 부당한 청문회를 당했던 것이 스트로스의 계략이었음을 드러낸 것은 반전이었지만 말다. 심리를 묘사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절절하거나 애잔한 느낌이 배제된 채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이 주를 이루었다. 그것이 오펜하이머의 내적 고뇌를 심도 있게 담아내려 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지만.



트리니티 실험 장면도 CG 없이 연출했다는 점에서는 훌륭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에 대한 믿음으로 솔직히 더 흥분되고 짜릿하게 하는, 좀 더 세밀하게 과장된 블록버스터 급 영상으로 압도되길 원했다. 이미 역사적인 사실이나 인물에 대한 배경지식은 깔려 있으므로 우리가 몰랐던 디테일을 좀 더 과감하고 긴박하고 속도감 있게 진행시키거나 아니면 인물의 심리를 좀 더 적나라하게 고발하거나 그도 아니면 적대국 간의 대립 구도나 갈등 관계를 리얼하게 표현해 주었으면 했다. 그러나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마지막 것은 좀 표현하기 어려웠을 테고, 그래도 너무 밋밋하고 평범하고 다소 답답한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보통은 뻥 뚫리거나 머릿속에 폭발물이 터진 것처럼 띵해야 하는데 이도 저도 아니었다. 꼭 봐야 할 영화로 추천하고 데리고 간 작은아들에게 미안하리만치.


1000페이지를 넘는 원저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의 방대함과 디테일을 3시간으로 압축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극히 차분하고 내면이 복잡한 오펜하이머를 표현하는 데 자극적이고 화려한 장면을 연출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감독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 제작에 성공한 것을 치하하는 것이 아니라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같은 핵폭탄이 개인 혹은 국가적 이익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의 위험성을 경계하고 경고하고자 하는 데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과학 기술은 그 자체로 중립성을 띤다. 그것은 '누가 고안하고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가'에 문제가 있다. 악용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고 긍정성만 바라본 과학자에게는 예상치 못한 비극이 된다. 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던 건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ps. 개인적으로는 맷 데이먼의 훌륭하고 귀여운 연기 변신에 심쿵하며 그를 다시 보게 된 영화였다. 맷 데이먼 영화로는 <굿윌헌팅>, <라이언 일병 구하기>, <리플리>, <컨테이젼>,<마션>,<인터스텔라>를 아주 재밌게 봤다. 곧 <다운사이징>이라는 지난 영화를 한 편 보면서 그의 연기에 다시 한번 푹 빠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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