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타로는 그만 보기로 했다.
타로에 미친 날들
미쳤다. 미쳤어.
그래, 나는 약간 미쳐 있었다.
타로에.
맨 처음엔 호기심이 일어서 한번 찾아봤던 것 같다. 혹시 있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나!! 생각한 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생각하면 이미 세상에 있었다. 친절한 유튜브 씨는 늘 세상보다 훨씬 앞서 모든 걸 준비해 놓는 존재였다. 물론 세상에 뒤쳐진 채로 살아가는 건 바로 나지만 말이다.
내가 다니는 미용실과 소청과와 약국을 한 군데 모아놓은 건물에 들어가면 눈앞에 정면으로 바로 보이는 1.5층에 '타로&사주'라고 금빛으로 쓰여있는 간판이 있다. 대학생들도 그렇고 요즘 청소년들도 그렇고 타로 카페를 가서 타로점을 본다는 얘길 심심치 않게 들었다. 그런데 내가 지나다니는 곳에 간판이 똬악 있으니 호기심이 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난 100퍼센트 순수한 혈통은 아니지만 70퍼센트 정도는 크리스천이고 하나님을 믿는다. 그런 나를 타로가 유혹했다. 금빛 색깔로 날 불러들였다. 어쩌면 파스텔 톤으로 호숫가에 뿌려질 물감처럼, 내 인생에 우리 아들의 인생에, 어제와 오늘 저녁 하늘을 수놓았던 무지개처럼, 뭔가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호기심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으로부터 2년 전쯤 나는 그곳의 문을 두드렸었다. 문을 열면 카페가 눈앞에 펼쳐질 거라고 상상했다. 그 당시 좋아했던 바닐라 라떼를 한 잔 마시면서 남편이랑 같이 타로점을 한 번 보는 것이 아마 큰 죄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벌 받을 정도는 아니겠지 했다. 남편은 나의 순수한 호기심에 동행해 주겠다고 했고 난 그 문을 열었었다. 순간!! 너무 놀라 뒤로 자빠질 뻔했다. 카페는커녕 어떤 음료도 없었고 그저 테이블 하나가 놓여 있는 손바닥 만한 공간이 적막함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적막하다기보다는 고요에 가까웠지만. 마스크를 서둘러 쓰면서 "어서 오세요~" 하시는 분께 당황한 티를 내며 "타로 점을 보러 왔는데요~" 했다. 카페일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라고도 했던 것 같다. 그랬더니 그분은 타로보다는 사주를 보신다고 했다. 분명 사주와 타로라고 쓰여 있는 걸 보고 들어왔는데도 일언지하에 타로는 원래부터 없었던 셈이 되었다. 그러면 간판부터 바꾸시지,라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뒤늦게 남은 씁쓸함은 입술로 깨물면서.'
그렇게 타로는 물 건너갔고 진짜 원한다면 홍대나 어디 압구정동? 이런 데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울 어딘가로 가야만 할 것 같아 그냥 고만두었다. 그러고 나서 두세 달 후에 난 사주를 한 번 보러 갔었다. 교회 분들에겐 비밀이다. (아마 엄청 실망하실 거다.) 사주 내용은 엄청 재밌었다. 조심할 것은 문서라고 했고 나머지는 대체로 좋았다.
이게 2년 전의 일이고 아직까지 타로에 대한 호기심을 간직하고 있던 나는 8월에 유튜브를 검색했던 것이다. 영상으로 타로점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은 기상천외한 일이었다. 돈을 안 내고도 타로점을 집에서 볼 수 있는 시대라니! 내가 타로 카드 5개 중 하나를 눈으로 찍고 타임라인을 클릭하면 바로 그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모든 카드의 결과를 순서대로 듣는 게 아니어서 효율적이었다. 설거지할 때 재미로 한두 번 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추천 알고리즘에 의해 다른 유튜버의 영상이 뜨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카드를 갖고 타로점을 보여주었다. 각각 엎어두는 타로 카드의 개수도 다르고 설명하는 스타일이나 말투도 달랐지만 신기하게도 내가 고르는 카드의 설명은 거의 똑같았다. 완전히 서로 다른 얘기만 늘어놓았다면 아마 난 미치지 않았을 거였다. 그런데 이렇게 비슷하다고? 경우의 수가 이렇게 적을 수는 없을 텐데?
그리하여 나는 설거지를 할 때마다 고무장갑을 살짝 벗고 내가 고른 카드의 타임라인을 클릭하면서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그들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중요한 내용은, 아니 기억하고 싶은 내용은 일기장에도 적었다. 그렇게 나는 타로에 보름 정도 미쳐 있었고 나름 즐거움을 느꼈다.
타로로 미래를 예측해 보고 나의 성향을 파악해 보는 건 물론 미신을 믿는 행위와 같다. 정확한 것도 아니고 유튜버들이 말하듯 제너럴(일반적인) 상황이라 확실하게 단정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그 다섯 가지의 경우 수를 가지고 나를 말할 수도 내 미래를 점찍을 수도 없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내가 의미 있었다고 느낀 건 나의 불안을 확신으로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타로 점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불안 심리가 내면에 있었다는 것이다. 9월부터 바뀔 나의 상황이 내심 걱정이 되었다. 내가 새로운 상황을 잘 적응하고 버틸 수 있을까, 혹여나 몸이 너무 힘들어서 나자빠지거나 포기해야 하거나 보류해야 하는 상황으로 악화되지는 않을까 불안했다. 사실은 기우임에도 불구하고 96%가 쓸데없는 에너지로 허비된다는 걱정이라는 걸 하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8월에 교회 주일 예배를 두 번이나 빠지다 보니 마음이 허했다. 그리고 그걸 채우기 위해 난 타로를 선택했다.
첫 번째 타로 카드는 나에게 말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돈을 좇지 않고, 자기 만족감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고. 현재는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이어서 이게 맞나 하고 고민하다가도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나 하며 합리화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제부터 더 큰 물에서 놀면서 새로 가지치기를 하고 더 크게 나가라고 한다. 단, 숙면을 취하라고 한다. 수면의 질을 더 높이라고. 내가 요즘 잠이 부족한 걸 어떻게 알았는지.
두 번째 타로 카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현재 공부 or 학위 or 승진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고. 앞으로 직관력과 판단력이 올라가고 공부가 잘 흡수된다고. 나 개인적으로는 갈고닦아온 노력이 있었지만 어떤 것에 갇혀 고독했을 수 있고 주변 상황에 의해 내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앞으로 합격을 하거나 자격증을 얻은 후에는 굉장한 풍요가 온다고 한다. 그리고 일거리가 많아지고 입지를 굳히게 된다. 내가 바빠질 것이라는 건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한다. 과거엔 약간의 열등감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어려움이 없이 마음 편안하게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잘 잡아내고 잘 헤쳐 나갈 것이라고. 나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사람이며 나중에는 가치를 증명하게 된다고 한다.
이밖에도 많은 조언들이 있었지만 처음 두 번의 결과를 적어 보았다. 내가 나의 능력을 의심하는 건 나의 부족함을 잘 알기 때문이지만 정확하지 않은 조언이라 하더라도 나에겐 크나큰 위로와 희망이 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타로점을 찾는 것인가 보다 싶었다. 그만큼 불안하거나 힘든 사람들이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니 말이다. 난 이것으로 타로점은 그만 보기로 했다. 나 자신을 확신할 필요충분조건이 채워졌기 때문에. 하나님께는 조금 죄송하지만 그래도 이 에너지로 6개월은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하하.